2025년 1월, 친트럼프 매체인 뉴욕포스트는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서반구 지도를 펼쳐 보이며 씩 웃는 사진을 1면에 크게 실었다. 헤드라인은 ‘돈로 독트린’이었다. 트럼프 대통령은 지도에서 캐나다를 ‘51번째 주’로, 그린란드를 ‘우리 땅’으로 고쳐 썼다. 멕시코만은 ‘아메리카만’으로, 파나마 운하는 ‘파나-마가(MAGA·미국을 다시 위대하게)’ 운하로 바꿨다.
당시만 하더라도 트럼프 대통령의 그 같은 주장은 모두 비현실적인 허세이자 허풍으로 여겨졌다. 하지만 지난 1년간 착실히 빌드업 돼 온 트럼프 대통령의 서반구 지배 계획이 니콜라스 마두로 베네수엘라 대통령 생포로 정점을 찍으면서, 그가 자신의 야심을 모두 실행에 옮기려 할지 모른다는 우려가 커지고 있다.
2026년 ‘돈로 독트린의 해’ 되나
돈로 독트린은 19세기 먼로 독트린을 트럼프 대통령의 이니셜과 합성한 용어다. 트럼프 대통령은 지난 3일(현지시간) 마두로 대통령 생포 작전이 성공한 후 열린 기자회견에서 “먼로 독트린은 너무 중요하지만 오랫동안 잊혀져 왔다”며 “우리는 그것을 더 뛰어난 것으로 대체했는데, 사람들은 그걸 돈로 독트린이라 부른다”고 말했다.
먼로 독트린은 1823년 제임스 먼로 대통령이 주창한 것으로 유럽 열강이 아메리카 대륙을 식민지로 만들려 하거나 간섭하지 않으면, 미국도 그 대가로 유럽 식민지를 인정하고 내정 간섭하지 않겠다고 약속한 것이 주요 골자다. 1904년 시어도어 루스벨트 대통령은 먼로 독트린에 미국은 자국의 이익을 위해 라틴아메리카 국가들에 개입할 권리가 있다는 부칙을 추가했다. 이후 먼로 독트린은 수십 년 동안 미국이 파나마·아이티·니카라과 등 중남미 국가 내정에 개입하는 것을 정당화하는 수단으로 쓰여왔다.
지난 1년 동안 라틴아메리카에 친미 정권이 들어서도록 힘써 온 트럼프 대통령은 지난해 11월 내놓은 2기 행정부 국가안보전략(NSS) 보고서에서 서반구를 최우선 전략지역으로 명시함으로써 올해는 ‘돈로 독트린의 해’가 될 것을 예고했다. 이는 중국과의 경쟁에서 에너지·광물 등 공급망 문제가 핵심 쟁점이 되면서, 단거리 공급망을 구축할 수 있는 라틴아메리카의 중요성이 더욱 커지고 있는 것과도 무관치 않다.
트럼프 대통령은 지난 한 해 동안 자신의 요구에 순응한 지도자에겐 보상을 주고, 그렇지 않은 지도자에겐 처벌을 내리는 방식으로 서반구에 대한 지배권을 강화해왔다. 우파 정권인 아르헨티나와 엘살바도르에겐 재정적 지원을 약속한 반면, 좌파 정권인 콜롬비아와 베네수엘라는 본보기로 선박 격침 등 군사적 압박에 나선 것이 그 예다. 지난 1년 동안 남미에선 핑크타이드가 저물고 온두라스·칠레 등에서 잇따라 우파 정권이 들어섰다.
“트럼프에게 ‘뒷마당’ 중남미는 미국우선주의 연장선”
그럼에도 트럼프 대통령이 마두로 대통령을 생포한 후 베네수엘라를 직접 ‘운영’하겠다고 선언하리라 예측한 사람은 많지 않았다. ‘고립주의’로 마가의 지지를 얻은 트럼프 대통령이 올해 중간선거를 앞두고 국내 여론을 의식해서라도 지나친 개입은 피할 것이란 예상이었다.
그러나 마약·이민자의 유입을 막고, 천연자원을 확보해 경제적 이득까지 취할 수 있는 서반구는 트럼프 행정부와 마가에게 중동·유럽과 달리 ‘미국우선주의’의 연장선이었다. 마코 루비오 미 국무장관은 이날 NBC·CBS 인터뷰에서 서반구를 “우리의 반구”라고 부르며 “사람들이 자꾸 리비아·이라크·아프가니스탄을 떠올리는데, 베네수엘라는 중동이 아니다. 이곳은 서반구”라고 말했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 AP연합뉴스
영국 싱크탱크 채텀하우스의 중남미 담당 선임 연구원인 크리스토퍼 사바티니는 “돈로 독트린은 라틴아메리카의 민주주의나 자유시장 등에 관한 것이 아니라, 소유권에 관한 것”이라며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이 인접국을 바라보는 방식과 매우 유사하다”고 워싱턴포스트에 말했다.
문제는 앞으로 트럼프 대통령이 서반구 지배권을 얼마나, 어디까지 공격적으로 확대해 나갈 것이냐다. 트럼프 대통령은 이틀 연속으로 중남미의 반미 정권을 향해 경고 메시지를 날렸다. 콜롬비아를 향해서는 “코카인을 만들어 미국으로 보내고 있다. 오래 가지 못할 것”이라고 위협하면서, 군사 작전 가능성을 묻는 질문에 “좋은 생각”이라고 답했다.
쿠바에 대해서는 “결국 우리가 논의하게 될 대상”이라며 “스스로 무너질 것”이라고 말했다. 멕시코를 향해선 미군이 멕시코 영토 안에서 마약 카르텔 소탕 작전을 펼치도록 허용하라고 재차 압박했다. 앞서 루비오 장관은 기자회견에서 “우리 대통령은 말만 하는 사람이 아니다. 무엇을 하겠다고 하면 실제로 실행하는 사람”이라고 목소리를 높인 바 있다.
라틴아메리카 국가들은 미국의 경제적·군사적 보복 우려로 강경한 대응을 하지 못하고 있다. 뉴욕타임스는 “이러한 상황은 베네수엘라 작전 성공으로 자신감을 얻은 트럼프 대통령의 대담함을 더욱 부추길 가능성이 있다”고 지적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4일 그린란드에 대해서도 또다시 야욕을 드러냈다. 그는 디애틀랜틱과의 인터뷰에서 “우리는 국가 방위를 위해 그린란드가 절대적으로 필요하다. 그들이 스스로 판단해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마가 인플루언서인 케이티 밀러도 소셜미디어에 성조기로 된 그린란드 지도와 함께 “곧”이라는 문구를 올렸다. 밀러는 트럼프 대통령의 최측근인 스티븐 밀러 백악관 부비서실장의 아내이다.
메테 프레데릭센 덴마크 총리는 성명을 내 “역사적 동맹국을 위협하는 행위를 중단하라”고 반발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