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마포구 서울경찰청 광역수사단 형사기동대에 참고인으로 출석하는 고 장덕준씨의 어머니 박미숙씨(왼쪽에서 세 번째)가 6일 쿠팡Inc 김범석 의장의 산업안전보건법 위반 및 증거인멸 교사 혐의에 대한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한수빈 기자
쿠팡이 물류센터 노동자 고 장덕준씨의 사망 경위를 은폐했다는 의혹을 수사하는 서울경찰청 형사기동대가 6일 전국택배노동조합 관계자들을 고발인 신분으로 불러 조사했다. 장씨의 어머니 박미숙씨도 참고인으로 출석해 조사를 받았다. 박씨와 노조 측은 “쿠팡이 과로사 정황을 감추기 위해 CC(폐쇄회로)TV 영상을 선별·조작했다”며 관련 자료를 경찰에 제출하겠다고 밝혔다.
전국택배노조는 지난해 12월23일 쿠팡 창업자인 김법석 쿠팡Inc 의장을 증거인멸 교사와 산업안전보건법 위반 혐의로 경찰에 고발했다. 장씨는 2020년 10월 쿠팡 경북 칠곡 물류센터에서 야간 근무를 하다 급성 심근경색으로 쓰러져 숨졌다. 당시 쿠팡 대표이사였던 김 의장은 전직 임원에게 “장씨가 열심히 일했다는 기록이 남지 않도록 확실히 하라”, “휴게시간을 부풀려라”는 취지의 지시를 내린 것으로 전해졌다.
노조와 유족 측은 쿠팡이 장씨의 과로사 정황을 조직적으로 은폐·축소했다고 주장했다. 쿠팡 측은 장씨의 사망 전 일주일간 근무 기록이 담긴 CCTV 8대를 분석해 엑셀 파일로 정리했는데, 초기에는 작업 장면 위주였던 자료가 김 의장 지시 이후 휴식·비작업 장면 중심으로 재정리됐다고 했다.
CCTV 제출 과정에서도 선별·누락이 있었다는 게 노조 측 주장이다. 쿠팡은 자체 분석에서는 장씨의 근무 시간을 오후 6시30분부터 다음날 새벽 4시30분까지로 설정했지만, 고용노동부와 근로복지공단에는 오후 7시부터 새벽 4시까지의 영상만 제출했다고 한다. 노조는 이 과정에서 장씨의 연장 근무와 실제 출퇴근 시간을 확인할 수 있는 통근버스 입·출문 기록도 제외됐다고 주장했다. 장씨의 어머니 박씨는 “덕준이가 가장 힘들게 일하던 메인 CCTV 영상은 공개하지 않고, 복도를 지나는 장면 위주로 제출됐다”고 말했다.
쿠팡은 자체적으로 ‘산재 대응 매뉴얼’을 마련해 조직적으로 은폐를 시도하고, 김 의장의 책임을 최소화하기 위해 수사기관이나 국회 출석 요구를 회피하려 한 의혹도 받는다. 박씨는 “쿠팡은 아들의 죽음이 업무와 무관하다고 주장하며 국회를 찾아다니며 로비하고, 언론에는 고소·고발로 압박했다”며 “산재 신청에 협조하겠다고 발표해 놓고 정작 급여명세서조차 제공하지 않았다”고 했다. 이어 “자료를 요청하면 ‘본사에 전달하겠다’며 시간을 끌었고, 내부적으로는 치밀한 산재 은폐가 진행됐다”고 말했다.
박씨는 “돌이켜보면 산재 승인은 기적에 가까웠다”고 했다. 지금까지 쿠팡 노동자 29명이 숨졌지만, 산재 인정 사례는 장씨와 지난해 11월 제주에서 새벽배송 택배기사로 일하다 숨진 고 오승용씨 등 2건뿐이다.
김 의장은 ‘해외 체류 및 기존 일정’ 등을 이유로 국회 청문회에 계속 불참하고 있다. 김 의장 대신 청문회 증인으로 출석한 미국 국적의 헤럴드 로저스 쿠팡 최고관리책임자는 “정부 조사에 전적으로 협조했다”, “야간 근무가 주간 근무보다 더 힘들다는 점을 입증할 자료는 알지 못한다”는 입장을 유지했다.
노조는 김 의장이 장씨의 업무 모습이 담긴 CCTV 영상을 산재 은폐에 활용했다고 보고, 개인정보보호법 위반 혐의로 김 의장과 가담자들을 추가 고발하겠다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