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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해, 다시 미생의 마음으로

입력 2026.01.06 19:53

“내 삶은 아직 미완성이다. 그래서 미생이다.”

웹툰에 이어 드라마로 제작돼 큰 사랑을 받았던 <미생>의 명대사이다. 바둑에서 미생(未生)은 아직 완전히 살아 있지 않은 돌을 뜻한다. 아직 완성되지는 않았지만, 거꾸로 말하면 가능성은 열려 있는 상태다. 주인공 장그래는 완생을 꿈꾸지만, 현실 앞에서 자주 흔들리고 좌절한다. 그럼에도 많은 사람들이 장그래에게 마음을 내주며 공감한 이유는 그의 삶이 특별해서라기보다, 실패와 불안, 망설임이 우리 일상과 너무도 닮아 있었기 때문일 것이다.

새해가 되면 우리는 습관처럼 자신을 돌아본다. 지난해보다 더 나은 사람이 되어야 할 것 같고, 어제의 부족함을 만회해야 할 것만 같다. 젊을 때는 새해에 이루고자 하는 목표가 비교적 분명했지만, 나이가 들수록 해가 바뀌는 경계가 흐릿해진다. 무엇을 더 이루겠다는 다짐보다 이제는 어떤 마음으로 이 시간을 건너갈 것인가가 더 중요해진다. 아직 완벽하지 않아도 삶을 포기하지 않는 태도, 불확실한 오늘 속에서도 내일을 향해 한 수를 두려는 마음가짐. 바로 ‘미생의 마음’이다.

흔히 나이가 들면 삶에 능숙해질 거라 기대하지만, 우리는 여전히 서툴다. 머리가 희끗해진 나이에도 새로운 환경 앞에서는 늘 망설이고, 인간관계 속에서는 “그땐 왜 그랬을까”라는 후회를 반복한다. 안타깝게도 나이가 든다고 해서 흔들리지 않는 사람이 되는 것은 아니다. 우리는 끝까지 미생으로 살아간다. 다만 그 미생의 모습이 달라질 뿐이다.

‘노년의 미생’이라는 말은 자칫 쓸쓸하게 들릴 수도 있다. 그러나 내가 만나온 많은 노년의 삶에서 이 표현은 오히려 강한 생명력을 떠올리게 한다. 신문 기사에 소개된, 은퇴 후 다시 인턴이라는 이름으로 일터에 선 시니어들은 수십년간 현장을 누빈 베테랑들이었다. 익숙한 자리에서 내려와 인턴으로 서는 일은 쉽지 않지만, 이들은 “경험은 늙지 않는다”고 말하며 젊은 동료들과 소통하고 자신이 가진 노하우를 기꺼이 나눈다.

“아직 할 게 많아서 완생이라고 하긴 멀었어요.” 70대 후반의 한 어르신은 이렇게 말했다. 자식들에게 짐이 되지 않기 위해 부지런히 건강을 챙기고, 늦깎이로 시작한 난화 연습에 정성을 쏟고 계셨다. 초기 치매 진단을 받고도 하루도 빠짐없이 일기를 쓰며 “오늘 쓴 문장이 내일도 기억났으면 좋겠다”고 말하던 어르신, 팔순에 스마트폰을 배워 손주에게 이모티콘을 보내면서 “아직도 새로 배울 게 있네”라며 기뻐하던 어르신 역시 자신이 선 자리에서 한 수를 더 두는 노년기의 미생들이었다.

독일 심리학자 폴 발테스가 제시한 전 생애 발달 관점에서는 인간의 성장이 어느 한 시점에서 끝나는 것이 아니라 계속된다고 본다. 나이가 들수록 잃는 것은 많아지지만, 사람들은 남아 있는 능력을 선택하고, 자신에게 맞는 방식으로 삶을 다시 구성한다. 노년기는 마무리만 하는 시간이 아니라, 다른 속도로 다시 살아보는 시간이다.

노년심리 연구에 따르면 삶의 목적이 강한 노인일수록 우울감이 낮고 인지 기능을 오래 유지하며, 삶에 대한 만족도 또한 높다. 또한 삶의 목적이 강한 사람은 더 오래 산다. 그 목적은 거창할 필요가 없다. 오늘을 흘려보내지 않으려는 마음, 누군가에게 한 번 더 안부를 묻는 선택, 내일을 덜 두렵게 만드는 생각이면 충분하다. 이런 마음은 이미 모든 것을 완성한 사람에게서가 아니라, 여전히 삶의 길 위에서 흔들리고 고민하는 미생에게서 나온다.

그래서 이제 ‘미생’이라는 말은 더 이상 슬프지 않다. 완성되지 않았다는 것은 아직 가능성이 남아 있다는 뜻이기 때문이다. 인생은 살아 있는 한 끝내 완생이 되지 않는다. 그래서 우리는 새해에도 서툴지만 포기하지 않고, 각자의 자리에서 조심스럽게 한 수를 더 두는 미생으로 살아간다.

김기연 중앙대 심리학과 교수

김기연 중앙대 심리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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