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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려주세요”

입력 2026.01.06 20:05

“살려주세요.” 한마디에 정국이 얼어붙었다. 민주화를 이뤘다는 대명천지에 돈 공천이라니, 도대체 누가 의원 강선우를 살려줬는가. 흔히 보수는 부패로, 진보는 분열로 망한다고 했다. 하지만 이런 속설이 이 땅에서는 멀리서 개가 짖는 소리에 불과하다. 돈 앞에서는 진보도 보수도 없다. 그 당이 저 당이고, 그자가 저자이다. “수사 중이니 결과를 지켜보자” “개인의 일탈이다” “억울할 테니 소명할 기회를 주자”. 윤석열 정부에서 지겹게 들었던 말들이 요즘 더불어민주당에서 튀어나온다.

새 정부의 장관이 될 뻔했던 강선우, 대통령의 후광으로 집권당 원내대표직을 움켜쥔 김병기. 대통령이 믿고 챙긴 이들이 저토록 망가졌는데 다른 의원이라고 멀쩡할까. 다른 공복이라고 깨끗할까. 단언컨대 우리 정치는 낡았고, 정치인은 부패했다. 1987년의 헌법체제로는 거대 양당의 적대적 공생을 막을 수 없고, 그래서 정치판에는 그들만의 비리가 속출하고 있다. 거기에 여야 의원들은 불법을 저지르고도 자기들만의 잣대로 죄의 경중을 따지고 있다. 불법 앞에서 자기들끼리 평등을 요구하며 국민들을 능멸하고 있다.

선거에서 공천은 시작이자 끝이다. 정당정치에서 공천이 손을 타면 민주주의 근간이 흔들린다. 공당의 후보는 당의 비전과 추구하는 가치를 공유하고 이를 실천할 수 있는 자질과 품격을 지녀야 한다. 그렇기에 정당이 내세운 인물들의 면면만을 보고도 당의 정체성과 노선을 가늠해볼 수 있다. 적어도 3김(김영삼·김대중·김종필)시대는 인재 영입에 당의 사활을 걸었다. 그렇게 공들여 모셔온 젊고 참신한 인물들은 고루한 정치판에 활력을 불어넣었다. 지금은 신인들이 용을 써도 도저히 뚫고 들어갈 수 없다. 공천이 오염되었기 때문이다.

공천이 오염되면 국민의 선택이 왜곡되고, 결국은 나라가 혼탁해진다. 이번에 들통난 공천비리를 보면서 풀뿌리 민주주의가 뿌리째 썩어가고 있음을 확인했다. 후보 자체의 경쟁력은 쓸모가 없다. 양당의 공천만 받으면 막대기만 꽂아도 당선된다. 그런 뒤틀린 선거제도에서는 부정부패가 생겨날 수밖에 없다. 우리 마을에도 ‘막대기 시의원’이 있다. 그는 지역의 현안에 대해서는 관심이 없고, 주민들에게는 거만하고, 민원은 아예 외면해버린다. 오직 지역위원장만을 섬긴다. 주민들은 그의 무능과 게으름에 혀를 찼지만 보란 듯이 공천을 받았다. 공천이 곧 당선인지라 오늘도 완장을 차고 있다. 그런 일은 전국 도처에서 일어나고 있다. 지난 지방선거에서 이미 이러한 문제점이 드러났다.

“전국에서 무투표 당선자가 늘어나고, 공천을 둘러싼 추문과 비리가 터져 나오고 있다. 중앙당과 지역위원장들이 공천을 미끼로 예비후보들을 줄 세우고 갑질을 하고 있음은 이미 알려진 사실이다. 공천이 곧 당선이니 온갖 수단을 동원하여 충성경쟁을 했을 것이다. 앞으로 공정과 상식이 무너진 곳에서는 일찍이 보지 못한 독버섯들이 피어날 것이다. 중앙당이 하부조직까지 장악하고 있으니 민심에 대한 두려움은 엷어지고, 오히려 민초들을 관리하려들 것이다.”(경향신문 2022년 6월11일 ‘풀뿌리 민주주의 뿌리가 썩어가고 있다’)

이렇듯 공천 참사는 예고되어 있었다. 그럼에도 거대 양당은 선거제도를 혁파하라는 요구를 깔아뭉갰다. 기초의회를 장악하고, 의원들을 맘대로 부리고, 이들 조직과 인력을 아무 때나 활용할 수 있으니 그저 좋을 뿐이다. 특히 영호남의 기초의회는 언제나 동원할 수 있는 중앙당의 하부조직과 다름없다. 6월 지방선거를 앞두고 벌써 은밀한 거래가 이뤄지고 있을 것이다. 누군가는 컴컴한 지하주차장, 외진 철교 밑에서 공천헌금을 바칠 것이다. 누군가는 질펀한 술자리 또는 밀실에서 충성서약을 할 것이다.

야당대표 장동혁의 도저히 납득할 수 없는 ‘내란 옹호’가 없다면 민주당은 대혼란에 빠졌을 것이다. 그럼에도 민주당은 공천비리를 개인 일탈이라며 꼬리만 자르고 있다. 시스템에는 문제없다고 강변하고 있다. 하지만 현행 제도로는 이러한 일탈이 언제든 일어날 수 있다. 그 정도 했으면 됐다. 이제 기초의회와 의원을 주민들에게 돌려주라. 풀뿌리 민주주의 일꾼들을 풀어주라. 이미 답은 나와 있다. 양당이 기득권을 내려놓는 결단을 하면 된다. 정청래 대표가 밝힌 ‘환부를 도려내겠다’는 선언도 정치개혁 없이는 구두선에 불과할 뿐이다. 언 땅에서 떨고 있는 풀뿌리 민주주의가 호소한다. “살려주세요.”

김택근 시인

김택근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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