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 춘추시대의 역사를 전하는 고전 <춘추좌전>에는 이런 일화가 실려 있다. 서기전 484년에 있었던 일이다. 위나라의 대부 공문자는 자신에게 잘못한 태숙질을 치고자 했다. 하여 자기 문하에 와 있던 공자에게 자문을 구했다.
평소 의롭지 못한 공격을 반대했던 공자는 “예법은 익혔지만 군사에 대해서는 모릅니다”라고 답한 후 물러나왔다. 그러고는 공문자에게서 떠날 채비를 갖추면서 말했다. “새가 나무를 고르지 나무가 어찌 새를 고르랴?” 여기서 새는 섬기는 이, 나무는 섬김을 받는 이를 가리킨다.
나무와 새를 각각 신하와 군주로 이해해도 무방하다. 그러니까 공자는 신하가 군주를 고를 수는 있어도 군주가 신하를 고를 수는 없다고 말한 셈이다. 당시는 역량 있는 신하일수록 괜찮은 군주를 가려 섬기던 때였다. 그러니 공자처럼 생각하는 것은 지극히 당연했다. 그런데 나무가 새를 선택하고자 한다면 어떤 일이 벌어질까?
새는 자유롭게 이동한다. 이 나무 저 나무를 옮겨 다니면서 자기에게 가장 적합한 나무를 고를 수 있다. 반면 나무는 움직이지 못한다. 자신에게 날아와 앉은 새를 거부할 길이 없다. 여기까지가 자연의 법칙이다. 그러나 비유의 세계는 한층 열려 있다. 나무가 군주의 비유라면, 군주는 주체적으로 움직일 수 있으므로 능히 새, 그러니까 신하를 고를 수 있다. 그렇다면 군주는 무엇을 기준으로 새를 골라야 할까?
<장자>에는 정고보란 인물에 대한 증언이 실려 있다. 그는 “사(士)로 신분이 상승되자 허리를 굽혔고, 그보다 높은 대부로 임명되자 온몸을 굽혔으며, 더 높은 경으로 승진되자 길거리의 담장보다 몸을 낮춘 채로 다녔다”고 한다. 장자는 이를 본받아야 한다면서, “사가 되면 몸을 뻣뻣이 하며 거만하게 굴고, 대부가 되면 수레 위에서 춤이라도 출 듯 멋대로 행동하며, 경에 임명되면 집안 어르신들께도 그 이름을 불러대는” 세태를 한탄했다.
이를 감안하면 나무가 새를 고를 때 적어도 높은 자리에 올랐다고 하여 거들먹거리기나 하고 위아래도 못 가리는, 그런 스스로를 낮출 줄 모르는 새는 단호히 쫓아내야 한다. 사람이 자리보다 늘 우선한다는 진리를 모르는 사람은 높은 자리에 앉을 자격이 도무지 없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