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읽히지 않는 미술책

입력 2026.01.07 20:00

노트북 자판 하나가 떨어진 지 오래되었다. 사용할 수가 없어서 별도의 키보드를 연결해서 사용하고 있다. 불편함은 없지만 조금 번거롭다는 생각은 든다. 그렇다고 사방 1㎝ 크기의 작은 조각 하나 때문에 노트북을 새로 살 필요는 없다고 본다. 하여간 불구가 된 노트북으로 글을 쓰고 있다.

언제부터 이 노트북을 사용했는지 기억이 없다. 흡사 나는 지난 시간에 대한 기억이 서서히 소멸되고 있는 질병을 앓고 있는 것도 같다. 기억이 없는 자는 현재만을 사는 유령과도 같은 존재다. 하여간 이전에 비해 기억이 가물가물해지고 쇠약해지는 것만은 사실이다. 내 몸은 나의 의지와 무관하게 작동하는 차가운, 낯선 기계와도 같다. 그러나 그 몸의 변화에 순응하는 수밖에 도리가 없다. 몸을 이길 수는 없으니까 말이다.

하여간 나는 이 노트북으로 여러 권의 책을 썼다. 미술책은 초판으로 대략 2000권을 찍는다. 그런데 초판이 팔리기란 쉬운 일은 아니어서 책을 출간하고 나면 이내 허망함이 든다. 자책감과 무능력에 대한 분노, 헛짓을 하고 있는 것은 아닌가 하는 회한 등이 쌓인다. 그래도 다시 다음 책을 더 열심히 써야 하지 않을까 하는 각오 같은 것도 조금 고개를 쳐들지만 이내 시들해지기도 한다.

오늘날은 점차 극소수의 다독가와 거의 책을 읽지 않는 다수로 확연히 구분되고 있는 것 같다. 책을 읽어도 소설이나 에세이 혹은 자기계발서 같은 책이 주류를 이룬다. 인문학이나 예술 책은 약간의 전공자를 제외하고는 거의 읽지 않는 것 같다.

미술을 이해하기 위해, 아니 보다 더 깊이 향유하기 위해 작품만 감상하는 것으로는 턱없이 부족하다. 반드시 좋은 책을 읽으면서 미술의 역사와 흐름, 개별 작가와 작품에 대한 설명, 그리고 현대미술에 대한 까다로운 논리를 습득해야 비로소 보는 눈이 열린다. 한없이 가벼운 감성으로 채워지거나 뻔한 상식으로 가득한 책은 도움이 되지 않는다. 깊이 있는 책 없이 미술작품을 보는 안목이 저절로 생겨날 수는 없는 노릇이다.

책을 열심히 읽고 전시를 보면서 서서히 미술을 보는 자신의 눈을 높여가는, 정확히 분별하는 시각을 만들어가는 여정이 불가피하게 요구된다. 그 시간을 압축하거나 우회할 방도는 없다. 모든 것을 온전히 익히는 데는 그만한 물리적 시간과 공력이 반드시 요구된다.

더러 미술사가나 평론가들이 대중들을 향해 전시를 많이 보면 자연스레 알게 된다거나 자신의 취향에 따라 작품을 선택해서 보는 것이 좋다는 얘기를 하는 경우가 있다. 아니면 도슨트의 해설이나 전시장 벽에 걸린 작품 해설에 의지하는 것도 도움이 된다고 말한다. 그러나 그것은 좋은 방법이 아닐뿐더러 충분하지도 않다. 전시를 무조건 많이 본다고 해서 작품 보는 눈이 생기지는 않는다. 보는 방법을 익혀야 한다. 도슨트의 간추린 해설은 작품 자체를 심도 있게 분석하거나 작품의 질을 판단하는 것에 영향을 주지 못한다. 그러니 책을 공들여 읽고 배워야 한다.

그래서 책은 여전히 필요하다. 앞으로 책은 끊임없이 출판될 것이다. 책이 소멸되리라고는 결코 생각지 않는다. 사람들이 다들 고개를 처박고 휴대폰 화면만을 들여다본다 해도, 디지털 이미지의 범람이 우리의 시각과 인식을 통제하고 변형하고 지배한다 해도, 모든 것을 휩쓸어버리는 정보의 홍수가 우리의 감각을 잠식하고 지워버린다 해도 종이책을 공들여 읽어가며 밑줄을 긋고 메모를 하고 포스트잇을 붙이는 행위가 주는 희열을 억압할 수는 없다.

박영택 미술평론가

박영택 미술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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