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후위기비상행동, 탈핵시민행동 등 시민단체가 지난해 11월 14일 서울 광화문광장 이순신 동상 앞에서 ‘고리 원전 2호기 원안위 수명연장 승인 규탄’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정지윤 선임기자
이념과 지지 정당에 따라 각종 정책에 대한 의견이 극명하게 갈리는 것으로 나타났다. 에너지 정책과 같은 영역에서도 정치적 이념에 따라 의견이 양분화하는 현상이 두드러졌다. 양극화한 정치 세력이 여러 정책을 두고 대립과 정쟁을 반복한 결과 지지층과 시민사회에서도 극단적 여론이 형성되고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7일 서울대 국가미래전략원·경향신문·중앙일보가 공동으로 기획, 한국리서치에 의뢰해 지난해 12월 29일~31일 전국 성인 3000명을 대상으로 웹조사한 결과를 보면, 원전 가동 중지 및 원자력 발전 축소에 대한 찬성은 17%, 반대는 51%로 나타났다. 진보층은 찬성 30%, 반대 35%로 각각 비슷한 비중을 보인 반면, 보수층은 찬성 9%, 반대 73%로 반대가 압도적으로 많았다. 중도층은 찬성 12%, 반대 46%였다.
신재생 에너지 확대에 대해서는 찬성 60%, 반대 14%로 나타났는데, 이 역시 정치 성향에 따라 의견 차가 컸다. 진보층의 80%는 신재생 에너지 확대에 찬성하고 6%가 반대한 반면, 보수층에서는 44%가 찬성하고 27%가 반대했다. 중도층은 56%가 찬성, 12%가 반대했다. 4대강 보 유지 및 활용에 대해서는 38%가 찬성, 반대가 24%로 집계됐다. 진보층의 25%가 찬성, 36%가 반대한 반면, 보수층의 55%가 찬성, 17%가 반대하며 차이를 나타냈다. 중도층은 34%가 찬성, 18%가 반대 의견이었다.
강원택 서울대 국가미래전략원장은 “재생에너지, 원전, 4대강 이슈는 일반인이 자세히 알기 어려운 전문 영역인데 이런 정책까지 정파색을 띠고 정쟁의 대상이 됐다”고 말했다. 현 정부는 재생에너지를 늘리고 원전도 활용하는 에너지믹스 정책을 추진하지만, 야권은 원전 유지 및 확대를 주장하며 재생에너지에 대해서는 상대적으로 소극적이다.
북한을 어떤 대상으로 보는지를 묻는 응답에는 경계대상이라는 의견이 40%로 가장 많았는데, 이 역시 이념별로 의견이 나뉘었다. 진보층은 북한을 협력대상(48%), 경계대상(37%)으로 인식한 반면, 보수층은 경계대상(42%), 적대대상(36%)으로 보다 부정적으로 인식했다. 중도층은 북한을 경계대상(41%), 협력대상(25%)으로 평가했다. 여권이 대북 유화책을 추구하는 반면 야권은 강력한 안보 태세를 중시하는 게 영향을 미친 것으로 풀이된다.
여권이 추진 중인 검찰개혁·사법개혁에 대해서도 이념적 양극화가 두드러졌다. 검찰개혁에 대한 평가를 묻는 응답의 전체 평균 점수는 5.0점(10점 만점)이었으나, 이념별로 진보층은 6.8점을 주며 긍정적 평가를, 보수층은 3.3점으로 부정적 평가를 보였다. 중도층은 4.9점을 매겼다. 정당 지지별로 보면, 검찰개혁에 대해 더불어민주당 지지자는 7.2점, 국민의힘은 2.2점, 무당층은 4.5점을 준 것으로 나타났다. 조국혁신당 지지자는 7.7점으로 가장 긍정적으로 평가했다.
사법개혁에 관한 평가도 비슷한 흐름을 보였다. 전체 점수는 5.0점였으나, 진보층은 6.7점, 보수층 3.1점으로 격차를 보였다. 중도층은 5.0점을 매겼다. 민주당 지지자는 7.2점으로 긍정적 평가를, 국민의힘 지지자는 2.1점으로 부정적 평가를 보였다. 조국혁신당 지지자는 7.6점으로 검찰개혁에 이어 사법개혁도 가장 긍정적으로 인식했다. 여권의 검찰개혁·사법개혁 드라이브에 야권이 강하게 반발하는 상황에서 범여권 지지자는 지지 입장을, 야권 지지자는 반대 입장을 보이는 것으로 해석된다.
한국의 민주주의를 두고도 정치 성향과 정당 지지, 세대에 따라 의견이 나뉘었다. 한국의 정치 체제가 민주적인지에 대해서는 5.1점(10점 만점)으로, 한국의 민주주의에 만족하는지에 대해서는 5.1점(10점 만점)으로 집계됐다. 민주당 지지자는 한국의 민주주의 수준에 대해 6.6점으로 높은 점수를 줬고, 만족(6.6점)도 높았다. 반면 국민의힘 지지자는 한국의 민주주의 수준에 대해 3.4점, 만족 여부에 대해 3.5점으로 낮게 평가했다. 세대별로는 70세 이상이 한국의 민주주의 수준에 대해 4.5점으로 가장 부정적으로 평가했고, 40대가 5.7점으로 가장 긍정적인 평가를 했다. 만족 역시 40대가 5.6점으로 가장 높았고, 70세 이상이 4.6점으로 가장 낮았다.
강 원장은 주요 정당 지지 여부, 이념에 따라 의견이 갈리는 양상에 대해 “정치 세력 양극화 때문”이라며 “한쪽 진영에서 어떤 정책에 대해 부정하면 (해당 지지층은) 정파적으로 이런 주장에 설득된다”고 말했다. 강 원장은 “정책은 미래 방향을 고민하며 가야 할 방향을 제시하는 것인데 정치가 둘 중 하나를 선택해야 하는 것처럼 끌고 가는 것은 건강하지 않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