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음이 녹으며 ‘기회의 땅’ 된 북극
중국 북극굴기 빨라지자 미국 맞대응
기후위기에 잠수함전 등 전쟁 우려
영국 런던자연사박물관에서 ‘2023년 올해의 야생 사진’으로 선정한 작품 ‘얼음 침대(Ice Bed)’. /런던자연사박물관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이 니콜라스 마두로 베네수엘라 대통령 축출 이후 그린란드에 대한 야욕을 더욱 노골적으로 드러내며 국제적 긴장이 높아지고 있다.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북극 안보를 위해 미국이 그린란드를 소유해야 한다고 말한다.
녹아내리는 빙하 위에서 오도 가도 못한 채 있는 북극곰의 모습은 기후 위기를 상징하는 장면이다. 누군가에게 위기는 기회였다. 북극권에 매장된 천연자원이 관심의 대상으로 떠올랐다. 미국과 러시아는 지난 20년간 북극에서 군사적 활동을 늘려 왔다. 중국도 경쟁에 뛰어들었으며 최근에는 북극항로 개척을 눈앞에 뒀다.
트럼프 대통령의 그린란드 소유 선언은 중국의 북극 실크로드 전략에 맞불을 놓은 것으로 평가된다. 그린란드 위기의 배경에는 강대국들의 뜨거운 북극 경쟁이 있다.
북극은 냉전 시대 군사적 긴장의 최전선이었다. 1959년 3월 미국의 핵 추진 잠수함 USS 노틸러스가 세계 일주 완주 끝에 북극점에서 얼음을 깨고 수면으로 올라오면서 힘을 과시했다. 1962년 소련은 핵잠수함 K-3로 똑같은 ‘북극 부상’으로 응수했다. 서로의 턱밑에 칼을 겨눌 수 있다는 것을 보여준 것이다. 미국과 러시아는 현재까지 북극에서 잠수함 훈련을 시행하고 있다.
탈냉전 이후 완화됐던 북극 경쟁은 2000년대 중반 기후변화로 인한 북극 해빙이 빨라지면서 가열되기 시작했다. 북극해에 인접한 러시아, 캐나다, 미국, 덴마크, 노르웨이, 스웨덴, 핀란드, 아이슬란드 등 북극권 8개국은 북극 위원회(Arctic Council)를 구성하고 개발과 환경보호 등에 관한 연구와 논의를 진행했다.
중국이 도전장을 내밀었다. 중국은 2015년 국가안보법을 개정해 극지방에서의 이익을 수호해야 할 국가 안보에 포함했다. 중국이 일대일로 프로젝트를 추진하던 시기와 맞물린다. 중국은 2010년대 초반 남중국해에서 동남아 국가들과 영유권 분쟁을 벌이며 인공기지 건설과 해양 활동의 노하우를 쌓은 상태였다.
중국의 시선을 끈 것은 북극항로다. 믈라카 해협과 수에즈 운하를 이용하는 기존 항로보다 노선이 단축돼 물류비 등을 줄일 수 있다. 중국은 2018년 북극백서를 발간하고 스스로 ‘준북극국가’라고 규정했다. 북극항로 개척과 자원 개발 등을 연결하는 빙상 실크로드 계획도 발표했다. 중국은 2019년 처음으로 자체 쇄빙선을 건조해 투입했다.
북극 최강자는 러시아로 평가된다. 국의 북극 활동 증대는 우방인 러시아도 경계했던 것으로 전해진다. 러시아는 2020년 중국에 북극 관련 스파이 행위를 한 행위로 북극 전문가를 체포한 적 있다.
하지만 2022년 2월 우크라이나 전쟁이 침공 이후 러시아의 중국 의존도가 높아지면서 양국의 북극 협력도 활발해졌다. 중국과 러시아는 2023년 북극항로 개발을 위한 실무그룹을 구성하고 합동 순찰 등을 해 오고 있다. 북극 해양 법 집행을 공조하기로 합의했다.
지난해는 중국의 북극 활동에 기념비적 해였다. 2025년 9월 중국 저장성 닝보·저우산항에서 출발한 컨테이너선이 북극해를 거치며 18일 만에 영국 펠릭스토우항에 도착했다. 세계 최초로 북극항로의 상업 운항에 성공한 것이다. 기존 항로보다 운송 시간이 대폭 단축돼 물류비가 줄어들 것으로 파악된다.
중국은 지난해 10월에는 독자 설계한 심해 잠수함을 통해 세계에서 처음으로 북극 심해 5277m까지 유인 심해 잠수에 성공했다. 북극 지역에서의 데이터 수집을 위한 기술 경쟁에 가장 앞서나간 것이다. 북극 심해는 낮은 수온과 얼음으로 인한 염도 변화 때문에 일반적 바다보다 음파 탐지 등이 어렵다.
이 때문에 안보 전문가들이 가장 우려하는 시나리오는 북극해에서 잠수함 전쟁이 벌어지는 것이다. 서방 안보 전문가들은 중국이 북극에서 데이터를 수집해 서태평양을 포함한 전 세계의 바다에서 잠수함전에 유용한 항로를 선도적으로 개척할 것이라고 우려한다.
중국의 빠른 속도의 북극 굴기는 미국의 경계심을 강화했다. 그레고리 길로트 북미항공우주방위사령부 사령관은 중국의 북극 능력 신장과 중·러 협력은 중국에게 북미를 공격할 새로운 능력을 제공할 수 있다고 말했다. 중·러 군용기는 2024년 7월 알래스카 인근에서 첫 합동 순찰을 벌인 바 있다.
미국의 불안에는 북극에서 뒤처졌다는 긴장감이 깔려 있다. 월스트리트저널(WSJ)에 따르면 중국의 쇄빙선은 현재 5척으로 증가했으며 미국은 단 2척만 운용할 수 있다. 러시아는 40척이 넘는다. 다만 알자지라는 항공·선박 추적 플랫폼을 인용해 “그린란드에서 중국 선박이 가득하다”는 트럼프 대통령의 주장은 사실이 아니라고 전했다.
중국은 북극에 10차례 이상 탐사대를 파견했다. 세계에서 북극 연구를 가장 활발히 하는 중국 과학자들은 북극 항로에 신중해지길 요구하고 있다. 중국 과학자들은 지난해 6월 학술지 사이언스에 실린 논문에서 북극 항로 활동으로 인해 탄소 배출량이 증가하면 해빙 속도가 더욱 빨라지고 기후 재앙 가능성이 있다며 유엔에서 이 문제를 다룰 것을 촉구했다.
반면 중국의 군사적·경제적 이유의 북극 탐사 활동은 더욱 가열하게 진행되고 있다. 북극곰 연구에 참여한 신경과학자인 마이클 벵거 박사는 폴라 저널에서 중국 선박의 북극 활동 증가를 두고 ‘차이나 패러독스(중국 역설)’이라고 표현했다.
긴장의 키는 미국으로 넘어갔다. 마코 루비오 미국 국무부 장관은 7일(현지시간) 그린란드 문제와 관련해 덴마크 측과 조만간 논의할 계획이며 “군사적 수단도 배제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얼음이 녹아내리고 있는 북극은 자원 개발·군비 경쟁과 영토 쟁탈전의 한복판으로 끌려들어 가고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