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동혁 국민의힘 대표가 지난 7일 서울 여의도 당사에서 당명 변경을 포함한 당 쇄신안을 발표하고 있다. 박민규 선임기자
1990년 2월 민주정의당·통일민주당·신민주공화당이 합당한 민주자유당은 보수 정당의 뿌리였다. 그러나 1992년 집권한 김영삼 정부는 하나회 철폐 등으로 3당 합당의 과오를 딛고 1995년 12월 민자당에서 신한국당으로 당명을 바꿨다. 신한국당은 1996년 15대 총선에서 139석을 차지해 당명 변경 효과를 톡톡히 봤다. 하지만 1997년 대선 한달 전인 11월 이회창 후보 아들 병역 문제, 이인제 후보 탈당으로 위기에 몰린 신한국당은 한나라당으로 탈바꿈했다. 비록 1997년 대선 패배로 사상 처음 야당의 길을 걷게 됐지만, 이회창 총재의 ‘강력한 야당’ 선언에 힘입어 한나라당은 15년간 장수했다.
2012년 4월 총선을 앞두고 디도스 사건과 돈봉투 사태가 터진 한나라당은 새누리당으로 변신했다. ‘2004년 천막당사 정신’을 외친 새누리당은 그해 대선에서 박근혜 후보가 당선돼 보수의 재탄생을 알렸다. 하지만 친박·비박 내분, 최순실 국정농단 후 국회 탄핵소추안 통과로 당 지지율이 급락하자 2017년 2월 새누리당은 자유한국당으로 새옷을 갈아입었다. 자유한국당은 2020년 2월 새 문패 미래통합당을 달았지만, 그해 총선 참패로 6개월 만에 단명했다. 당시 김종인 비상대책위원회는 2020년 9월 ‘국민의힘’으로 당명을 변경했다. 낡은 이념, 특정 지역에 묶이지 않겠다며 ‘당’(黨)을 뺀 이름으로 당명을 교체한 것이다. 2021년 6월 헌정사 처음으로 36세 ‘0선 정치인’ 이준석을 초대 대표로 선출하고 2022년 대선에서 윤석열이 당선될 때만 해도 국민의힘은 탄탄대로를 자신했을 법하다. 내란 우두머리 윤석열이 보수의 재앙이 될 것이라곤 상상조차 하지 못했을 게다. 그렇게 외피만 바꾼 변화는 보수 정치를 한발 더 늪에 빠뜨렸던 것이 보수의 당명 개정사에 담긴 교훈이다.
장동혁 국민의힘 대표가 “당의 가치와 방향 재정립”을 위해 5년 만에 당명을 바꾸겠다고 한다. 반쪽짜리 사과 하루만에 내란 옹호 인사를 최고위원·정책위의장으로 지명하더니, 당명만 바꾸면 헌정 파괴를 옹호한 원죄를 덮을 수 있다고 믿는 것인가. 극우의 손을 잡은 윤석열과의 절연 없이, 제대로 된 반성과 인적 쇄신 없는 ‘간판 교체’는 사상누각이다. 보수의 위기만 더 키울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