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해, 신춘문예, 새롭게, 시작. 시원한 시옷들의 행진이다. 시옷 자로 횡대를 이루어 날아가는 기러기처럼 또 한 해가 출발했다. 잘록한 반지를 끼우듯 연말연시는 막혔던 곳에서 툭 트인 곳으로 나아가는 느낌이 물씬하다. 좁은 조선을 빠져나와 드넓은 요동 벌판 앞에서 그저 한바탕 울기 좋은 곳이라고만 할 수밖에 없었던 박지원의 마음도 이와 같지 않았을까.
병오년 첫날의 압도적인 감흥과 또 한편으로 울적한 심사에 실려 대관령 아래 자작마을에 웅크리고 있는 친구를 찾았다. 집 뒤로 돌아들면 바로 선자령으로 이어진다. 몇 발짝 만에 벌써 문명과의 연결이 끊어지고 풀과 나무와 잔설이 제공하는 풍경이다. 감쪽같이 휘어져 돌아가는 호젓한 길. 사람의 손이 아니라 발로 다듬은 작품인 산길. 그 끝은 아늑하고 둥근 둥지 같다. 멀리 새 한 마리 나뭇가지에서 통통 걷다가 어디로 휙 날아간다. 제 이름도 가르쳐주지 않고 산을 접었다가 공중을 활짝 펼쳐주는 새. 이참에 새에 대한 오래된 생각 하나를 끄집어내 본다.
새라는 말은 어디에서 왔을까. 저 날렵한 물체를 직접 못 보고 사전에서 그 단어를 먼저 알게 되었다면 새를 사이의 준말이라고 생각할지도 모르겠다. 얼른 이 세상을 빠져나가려 끊임없이 돌아다니며 공중의 빈틈을 집요하게 노리는 기이한 녀석이라 할 수도 있겠다. 어쩌면 이승과 저승의 사이를 연결하는 척후병 같은 새.
거의 수준급으로 거문고를 뜯는 친구가 이희완 명창의 창부타령을 흥얼거린다. 나도 잘 아는 노래, 들을 때마다 거의 기절 직전까지 나를 몰고 가는 이 대목. “우연히 길을 갈 적에 이상한 새가 울음을 운다. 무슨 새가 울랴마는 (…)”
오늘의 내 인생에 잠깐 등장하였다가 비스듬히 사라진 저 새가 아무 까닭 없는 건 아닐 것이다. 저 새를 아무렇지 않게 여기기엔 나도 나이를 너무 많이 먹었다. 어디를 가든 나를 혼자 내버려 두지 않고 찾아오는 새. 응급실의 의사처럼 찾아와 내 기색을 살피며 누군가에게 건강 상태를 보고하는가. 나의 동태를 공중에 부리로 적던 새는 지울 수 없는 난해한 표정으로 푸른 하늘로 떠났다. 어쩌면 올 한 해를 요약한 메시지를 남긴 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