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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방준비제도 의장 열전

입력 2026.01.08 20:05

[김학균의 쓰고 달콤한 경제]연방준비제도 의장 열전

중앙은행은 현대 자본주의의 핵심 제도이지만, 기준금리와 통화량을 조정해 경기와 물가를 관리하고, 금융위기 국면에서 최종 대부자로 나서 경제 시스템의 붕괴를 막는다는 개념이 정착된 것은 채 100년도 되지 않은 비교적 최근의 일이다.

미국의 중앙은행인 연방준비제도(연준)가 설립된 해는 1913년이었지만 초기 연준은 지금과 같은 역할을 하지 못했다. 당시 미국의 화폐제도가 금본위제에 묶여 있었기 때문이다.

시중에 풀 수 있는 돈의 규모가 국가가 보유한 금의 양에 묶여 있었기 때문에 그 결과 중앙은행의 활동은 큰 제약을 받았고, 금본위제는 대공황 국면에서 오히려 미국 경제의 붕괴를 불러온 결정적 요인이 되었다.

1933년 미국이 내국인을 대상으로 한 금본위제를 폐기한 이후에야 연준은 비로소 경제 시스템의 붕괴를 막는 소방수 역할을 수행할 수 있게 됐다.

연준 100년사에서 큰 족적을 남긴 수장들이 있었는데, 첫 번째로 꼽을 수 있는 인물은 대공황과 2차 세계대전 시기에 연준 의장을 지냈던 매리너 에클스이다.

스코틀랜드 이민자 출신인 에클스는 고졸 학력으로 미국 서부에서 은행업을 통해 부를 일군 입지전적 인물이었다. 그는 ‘정부의 은행’에 불과했던 연준을 ‘국가의 중앙은행’으로 격상시킨 설계자였다.

초기 연준은 재무부의 자금 조달 창구에 가까웠다. 특히 전시에는 국채를 의무 매입하며 행정부의 하위기관 노릇을 해야 했다. 그러나 에클스는 전쟁 이후에도 이어진 재무부의 간섭과 인플레이션을 유발하는 정책에 정면으로 반기를 들었다.

연준 의장 인선 다시 정치 그늘로

권력의 압박에 저항하며 통화 정책의 독립성을 사수한 그의 투쟁은 현대 중앙은행 제도의 근간이 되었다. 현재 워싱턴에 있는 연준 건물은 ‘에클스 빌딩’으로 명명돼 있다.

1970년대에 8년간 연준 의장으로 재임했던 아서 번스는 정치 권력에 굴종해 중앙은행의 독립성을 훼손함으로써, 오늘날까지 연준의 오욕을 상징하는 인물로 기록돼 있다.

그는 1972년 대선을 앞둔 닉슨 대통령으로부터 경기 부양을 위한 금리 인하 압박을 받자, 인플레이션 조짐에도 불구하고 확장적 통화 정책을 강행해 물가 폭등의 빌미를 제공했다.

또한 물가 상승 원인을 통화량 과잉이 아닌 유가 등 외부 요인 탓으로 돌리며, 소비자물가지수에서 변동성이 큰 항목을 임의로 제외함으로써 지표를 왜곡시켰다. 여기에 금리를 올리다 실업률이 조금만 오르면 즉시 낮춰버리는 ‘스톱 앤드 고(Stop-and-Go)’ 정책을 반복한 결과, 시장의 신뢰를 완전히 잃고 인플레이션 기대심리를 고착화해 미국 경제를 장기적인 스태그플레이션에 빠뜨렸다.

이 암흑기를 끝낸 이는 1979년 취임한 폴 볼커였다. 미국 경제가 하이퍼 인플레이션에 신음하던 시절, 그는 기준금리를 20%까지 올리는 파격적인 결단을 내렸다. 급격한 긴축으로 경기는 추락했고, 기업과 농민들의 반발도 거셌지만 그는 뚝심 있게 고금리를 유지해 인플레이션 기대심리를 꺾어놓았다.

볼커의 ‘인플레이션 파이터’적 면모는 이후 1980~1990년대 미국 경제 장기 호황의 초석이 되었다.

볼커의 뒤를 이은 앨런 그린스펀은 경제위기에 대처하는 ‘최종 대부자’로서 연준의 역할을 정립한 인물이다. 취임 직후 맞닥뜨린 1987년 ‘블랙 먼데이’를 시작으로 헤지펀드 LTCM 파산, IT버블 붕괴 등 위기 때마다 전격적인 금리 인하로 시장의 패닉을 진화하며 ‘마에스트로’라는 찬사를 받았다.

그러나 그린스펀의 영광은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로 추락했다. 규제 완화와 시장의 자율성을 맹신한 그의 원리주의가 오히려 위기의 씨앗이 된 것이다. 그는 금융위기 직후 열린 청문회에서 “민간의 이기적 동기가 최선의 결과를 가져올 것이라는 믿음이 잘못되었다”고 밝히며 한 시대의 종말을 알렸다.

2008년 금융위기가 터졌던 시기에 연준의 수장이 벤 버냉키였다는 점은 글로벌 경제에 천운이었다. 당시 금융위기는 대공황 이후 최악의 경제위기로 평가받는데, 버냉키는 대공황을 깊이 있게 연구한 학자였기 때문이다.

아서 번스 실패 반복해서는 안 돼

버냉키는 금융위기 국면에서는 시장의 기대보다 한발 더 나간 정책만이 패닉을 잠재울 수 있다는 확신을 가지고 있었다. 그는 제로금리와 양적완화 등 비전통적인 통화 정책을 쓰는 데 주저함이 없었고, 결과적으로 금융위기의 수렁에서 글로벌 경제를 건져낼 수 있었다.

후임 의장인 재닛 옐런은 버냉키와 비슷한 성향의 경제학자였다. 옐런은 양적완화의 종결과 기준금리 인상이라는 출구전략을 성공적으로 수행해냈다.

볼커 이후 연준 의장은 연임되는 게 관례였지만 2017년 당시 트럼프 대통령은 깐깐한 경제학자이자 민주당원인 옐런 대신 월가의 사모펀드에서 일했던 공화당원 제롬 파월을 신임 의장으로 임명한다. 파월은 기준금리를 더 파격적으로 인하하라는 트럼프의 공세에 시달리면서도 무난히 연준 수장으로서 역할을 수행했다.

파월의 임기는 올해 5월에 끝난다. 그의 임기 종료가 다가오며 연준 의장 인선이 다시 정치의 그늘로 들어가고 있다. 중앙은행을 자신에게 복속시키고자 하는 의도를 노골적으로 드러내온 트럼프 정권하에서의 인선이기 때문에 더 그렇다.

지난해 8월 트럼프의 지명으로 연준 이사회에 입성한 스티븐 마이런은 이미 공격적인 금리 인하를 잇달아 주장하면서 연준위원들의 의견 스펙트럼에서 가장 극단의 위치에 서 있다. 1970년대 아서 번스 시대를 떠올리지 않을 수 없다.

중앙은행의 독립성이 흔들리면서 인플레이션 파이터 역할을 의심받게 되면 시장은 가장 먼저 등을 돌린다.

시장의 반란은 채권시장에서 장기금리가 상승하는 모습으로 나타날 것이다. 자본시장은 바보가 아니다. ‘무조건’ 금리를 내리는 중앙은행 편에 서기보다는 인플레이션을 적절히 관리하는 쪽의 손을 들어줄 것이다.

김학균 신영증권 리서치센터장

김학균 신영증권 리서치센터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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