범생 공화국, 대만
안문석 지음
인물과사상사 | 308쪽 | 1만9000원
한국과 함께 ‘아시아의 네 마리 용’으로 꼽혀온 대만은 한국처럼 근대화와 민주화를 동시에 겪은 나라이자, 여행지로도 친숙한 곳이다. 기자 출신 정치외교학자인 저자는 대만에서 연구자로 지낸 경험을 바탕으로 대만의 사회, 경제, 그리고 국제적 처지를 입체적으로 들여다본다.
저자가 주목한 대만의 힘은 ‘범생 문화’다. 대만 사회는 성실과 절약, 질서와 실용을 미덕으로 삼는 시민들에 의해 움직인다. 조용하지만 치밀하고, 권위보다 실용을 중시하는 사회 시스템이 낮은 실업률과 안정된 복지, 그리고 아시아 최상위권의 행복지수를 가능하게 한다는 것이다. 이른바 ‘범생 기질’은 첨단산업에서도 빛을 발한다. 세계 최대 반도체 위탁생산 기업 TSMC를 비롯한 대만의 제조업은 묵묵히 실력을 쌓는 범생들의 근면함 위에 서 있다. 저자는 산책하듯 도시를 걷고, 지하철을 타고, 시장을 둘러보며 대만 사회의 작동 방식을 관찰한다. 질서와 배려가 생활 규범으로 체화된 시민의식은 대만 사회의 미학이자 또 다른 형태의 공동체 정신으로 읽힌다. 신호등의 숫자 표시, 지하철 손잡이의 배치와 화장실 접근 동선 등 시민 편의를 세심하게 고려한 풍경들은 대만 사회가 권위보다 합리와 효율을 택해왔음을 보여준다.
하지만 대만의 현실이 마냥 평온한 것은 아니다. ‘일국양제’를 주장하는 중국의 군사적 압박과 미국의 방위비 증액 요구 속에서 대만은 늘 긴장 상태에 놓여 있다. 대만은 감정보다 실리를 중시하는 ‘실용 외교’로 현상 유지를 이어가고 있다.
책은 이 같은 대만의 모습을 통해 조용하고 합리적인 사회가 불안한 국제질서 속에서 어떻게 자신만의 균형을 유지해 왔는지 보여주며 우리에게도 적지 않은 시사점을 남긴다.
대만 지하철에는 양쪽 출입문 사이에 여러 사람이 잡을 수 있는 손잡이가 마련되어 있다. 인물과사상사 제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