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땅이 된 바다, 나비의 숲, 고요와 사색…남도 ‘겨울 정원’

입력 2026.01.10 06:00

수정 2026.01.10 06: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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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글·사진 정은주 여행작가

이토록 따뜻한, 冬화

겨울에도 초록이 머무는 남도의 정원들을 따라 걷다 보면 마음마저 회복될 것이다. 사진 속 4est수목원은 ‘걷는 경험’을 중심에 둔 수목원으로, 곳곳에 배치된 철학적 메시지를 따라 천천히 걸으며 사유하게 만드는 정원들로 구성돼 있다.

겨울에도 초록이 머무는 남도의 정원들을 따라 걷다 보면 마음마저 회복될 것이다. 사진 속 4est수목원은 ‘걷는 경험’을 중심에 둔 수목원으로, 곳곳에 배치된 철학적 메시지를 따라 천천히 걸으며 사유하게 만드는 정원들로 구성돼 있다.

겨울에도 남도는 푸릇한 기운이 감돈다. 소나무와 분재로 풍경을 다듬은 공간과 사색에 잠기게 하는 수목원, 가족들의 꿈을 담은 가든 등 다채로운 빛깔을 품은 정원들이 무채색 겨울을 따뜻하게 밝혀준다. 걷고 사유하고, 체험하는 공간. 신안과 해남, 진도, 완도까지 남도를 잇는 여러 정원을 소개한다. 나만의 취향 저격 정원을 찾아 색다른 남도 여행을 떠나보자.

섬의 겨울, 두 정원 이야기

뺨에 와닿는 기운은 분명 겨울바람인데 눈에 보이는 건 초록빛 휘장을 두른 꽃길이다. 잎사귀들이 무성한 나무마다 새빨간 루비들이 가득 박혀 있다. 함지박만 한 꽃 보석. 무채색 겨울을 화려한 붉은빛으로 물들인 애기동백꽃이다. 신안 압해도에 있는 1004섬 분재정원은 지금 동백꽃이 한창이다. 이달 18일까지 ‘섬 겨울꽃 축제’도 연다. 오솔길과 주변 부지에 동백나무 약 2만그루가 식재되어 있는데 겨울 동안 4000만송이가 넘는 동백꽃들이 피고 진다고. 꽃잎이 떨어져 내린 자리엔 시상식만큼 훌륭한 레드카펫이 만들어진다. 올해엔 꽃길만 걷기를. 한 발 한 발 내딛는 발걸음에 설렘이 묻어난다.

건너편 암태도에는 또 다른 섬 정원이 있다. 섬과 섬을 잇는, 바다에 일직선으로 곧게 뻗은 천사대교를 건너면 신안군 1호 민간정원인 파인클라우드가 나타난다. 정원주 최용일 회장은 처음엔 별장을 지을 생각이었다고 한다. 하지만 앞쪽엔 바다가, 뒤쪽은 산이 감싸안은 천혜의 자연환경을 혼자만 누리기 아까운 데다 분재에 관심이 많았던 터라 고민 끝에 결국 정원을 만들었다. 너른 부지에 소나무와 암석을 더하고, 인공폭포를 만들고, 유리 온실과 카페를 얹혔다. 도톰하게 흙을 돋워 동산처럼 만든 곳엔 분재처럼 수형을 잘 잡은 수목들을 심었다. 연못이 얼지 않은 때에는 분수도 뿜어져 나온다.

열대 우림을 옮겨놓은 듯한 유리 온실과 카페가 있는 파인클라우드.

열대 우림을 옮겨놓은 듯한 유리 온실과 카페가 있는 파인클라우드.

온실은 한층 더 극적이다. 마치 열대우림 같은 싱그러움이 가득하다. 키 큰 야자나무와 소철류, 갖가지 고사리들과 덩굴식물, 난들이 푸릇푸릇 자라고 있다. 유리 벽을 사이로 두고 겨울과 여름, 두 계절이 공존하는 느낌이다. 정원을 산책하고 나면 수제 소금빵과 진한 커피가 기다리고 있다. 카페에 앉아 따끈한 온기에 몸을 맡기면 여행에 쌓인 피로마저 사르르 녹아버린다. 파인클라우드는 먼 거리임에도 여러 번씩 찾아오는 사람들이 많다. ‘소나무’의 푸른 기운이 감돌고, ‘구름’처럼 흘러가는 여유로움이 자꾸만 이곳을 오게 만드는 건 아닐까. 길 건너편에 펜션도 함께 운영하고 있다.

정원이 된 바다, 숲이 된 고전

2만그루 동백이 겨울 숲을 붉게 물들이는 1004분재정원.

2만그루 동백이 겨울 숲을 붉게 물들이는 1004분재정원.

해남으로 발걸음을 돌리면 더 많은 정원을 만날 수 있다. 솔라시도 기업도시에 위치한 산이정원은 경기도 가평 아침고요수목원을 이끌어온 이병철 대표가 만든 미래세대를 위한 정원이다. 산이면 일대 경관을 살린, 자연이 함께하는 건강하고 지속 가능한 정원을 그리고 있다. 놀랍게도 5만여평에 달하는 부지는 원래 바다였다. 섬 사이 바다를 메워 만든 땅에 이처럼 광활한 정원을 만든 것이다. 입구 격인 맞이정원은 ‘땅이 된 바다’를 잊지 않으려는 듯 물길을 따라 걷는 느낌을 주도록 설계했다.

정원은 여러 테마로 나뉘어 있다. 낮은 구릉들이 입체감을 주는 노리정원에는 지역 주민이 기증한 동백나무가 심겨 있다. 마을 터줏대감이던 고목을 오래도록 지켜주기를 바라는 마음이 배어 나온다. 동화정원에는 거친 바람에도 꿋꿋이 서 있는 어린왕자가 있고, 약속의 정원에는 탄소 흡수력이 뛰어난 나무들이 자라고 있다. 이외에도 자연 호숫가에 꾸며진 물이정원과 계속 피고 지는 다년생 화초들을 심은 흐름원, 청띠제비나비 서식처인 후박나무 군락지를 보존해 만든 나비의 숲 등 둘러볼 곳이 많다.

구름 언덕, 빗물 언덕, 안개 구역처럼 언제나 날씨를 살펴야 하는 정원사의 마음을 표현한 날씨사냥꾼의 정원도 산이정원 내에 흥미로운 공간이다. 재치 넘치는 조형물들이 웃음을 터뜨리게 한다. 자연 속에 배치된 작품들을 감상하는 재미도 있다. 특히 두 팔을 벌린 채 무릎 꿇고 있는 사람을 형상화한 유영호 작가의 브릿지 오브 휴먼(Bridge of Human)이 눈길을 끈다. 복합문화공간인 가든 뮤지엄에도 여러 작품과 공예품들이 전시되어 있다.

조금 더 깊은 사색에 잠기고 싶다면 4est수목원(포레스트 수목원)이 제격이다. ‘2025년 꼭 가봐야 할 10대 수목원’에 선정되었을 만큼 전국적으로 이름난 명소다. 숲을 걷는 경험, 그 자체를 중심에 둔 공간으로 이름 속에 별(Star)과 돌(Stone), 이야기(Story), 배움(Study) 4가지 의미가 깃들어 있다. 일년 내내 꽃 축제가 열리는 곳이지만 겨울만큼은 숲도 쉬어간다. 고요한 겨울 숲. 수목원을 제대로 즐기려면 곳곳에 붙은 푯말을 지나치지 말아야 한다. 오랫동안 고전을 탐독해온 정원주(김건영 대표)의 철학적인 사유를 엿볼 수 있다. 걷고, 쉬고, 생각하는 동안 정원은 여행자의 일부가 된다.

정원이 삶이 되고, 꿈이 되고

비원

비원

가족들과 운명처럼 연결된 특별한 정원도 있다. 해남군 1호 민간정원이자 전라남도 예쁜 정원 콘테스트(2021년)에서 최우수상을 받은 문가든이 주인공이다. 지금은 화초와 수목이 자라지만 50여년 전만 해도 이곳은 저수지 제방에 토사가 넘쳐 황폐해진 버려진 땅이나 다름없었다. 그곳을 정원주인 문홍식 대표 부친이 과수원으로 경작하다 사정상 팔게 되었고, 이후 우연한 기회에 그 땅을 다시 사들이면서 정원으로 꾸민 것이다. 여기에 집을 짓고 나무와 꽃을 심어 가꿔온 것이 십수년. 저수지 너머 흑석산이 바라보이는 정원은 경치 좋은 포인트들이 많아 한참을 돌아다니게 된다. 구석구석 가족들과 보낸 시간이 차곡차곡 쌓여 있다.

한기가 느껴질 땐 카페에서 여운을 즐겨보도록 하자. 문가든에서는 커피보다 차를 추천한다. 특히 직접 재배해 진액을 낸 황칠차는 쉽게 맛볼 수 있는 차가 아니기에 한번쯤 맛보기를 권한다. 쌉싸름하면서도 은은한 단맛과 흙내음이 어우러진 독특한 풍미를 느낄 수 있다.

비밀스러운 정원도 있다. 어릴 적 떠나 어른이 되어 돌아온 고향 땅, 산이 품고 밭이 내려다보이는 내 집 앞 한 뼘 정원을 가꾸며 시작한 것이 폭포가 흐르고, 연못이 있고 동백과 수국 꽃길이 이름난 명소가 되었다. 나무에 매단 풍경 소리가 청아하게 퍼지는 비밀 정원, 비원이다. 풀 뽑고, 꽃 심는 시간이 가장 행복하다는 김미정 대표는 지금도 온종일 정원에서 산다. 어디든 구석구석 그녀의 손을 거치지 않은 곳이 없다. 겨울에도 비원은 따스함이 가득하다. 조물조물 흙을 만지고 식물을 심는 일이 재미있다면 다육이 심기 체험에 참여해보자. 1월 한 달간 매주 토요일 오후 2시 온실 체험장에서 진행된다. 허브차와 해남 꿀고구마까지 맛볼 수 있는, 정원에서 즐기는 소소한 행복을 놓치면 아쉽다.

이보다 특별한 정원이 있을까

운림산방

운림산방

진도로 건너가면 아버지와 딸이 만들어가는 특별한 정원을 경험할 수 있다. 요리연구가 박민영 대표가 이끄는 진도휴식은 쉼과 쿠킹클래스를 접목한 색다른 공간이다. 바다가 내려다보이는 곳에서 제철 식재료로 만든 음식을 즐기고 하룻밤 묵으며 쉬어갈 수 있다. 숙소 뒤편에는 수십년 동안 정성껏 가꿔온 동백숲 미로가 보물처럼 숨겨져 있다. 소치 허련 선생이 기거했던 전통 정원미를 품은 진도 운림산방을 함께 둘러보면 좋다.

완도의 바하정원도 독특한 체험과 머묾이 있는 보석 같은 장소다. 들녘 한복판에 세워진 이국적인 펜션 건물과 아기자기하게 가꿔진 정원이 다른 세계에 빠져든 듯 매혹적인 풍경을 펼쳐낸다. 유려한 곡선미가 돋보이는 산책 코스와 모래 한 줌, 바위 하나까지 고심하며 배치한 김시욱 대표의 배려가 엿보인다. 카페에서는 작은 소품을 만들어보는 바느질 체험도 마련돼 있다. 소박한 풍경을 바라보며 한 땀씩 채워가다 보면 마음이 편안하고 느긋해진다.

이곳에서 멀지 않은 곳에 또 다른 정원이 있다. 2025년 전라남도 예쁜 정원 콘테스트에서 우수상을 받은 아내의정원이다. 꽃을 좋아하는 플로리스트 아내를 위해 남편이 만든 유럽형 숲속 정원으로 동화에서 튀어나온 듯한 근사한 트리 하우스가 랜드마크다. 하나부터 열까지 모두 남편의 손에서 탄생한 것이다. 맛있는 요리를 하기 위한 화덕도 뚝딱, 말들이 포근하게 잠들 수 있는 마구간도 뚝딱. 로맨티시스트와 맥가이버, 그 어려운 미션들을 김현희 대표의 남편은 모두 해낸다. 아내는 남편이 만든 정원에서 플리마켓도 열고, 클래식 음악회, 버스킹 밴드 공연, 피크닉 등 다양한 행사를 개최한다. 아이들이 좋아하는 동물도 많아 가족 여행객에게 인기가 높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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