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일 제58회 졸업식 및 폐교식을 진행한 충남 부여 용당초 5학년 교실. 김송이 기자
충남 부여군 구룡면에 사는 윤옥희씨(65)는 지난 9일 자신이 51년 전 졸업한 용당초등학교에 마지막으로 방문했다. 윤씨의 초등학교 5학년 큰 손녀도 이 학교를 다니고 있다. 7회 졸업생인 윤씨는 손녀가 59회 졸업생이 되는 것까진 보지 못한다. 용당초가 올해 3월1일자로 폐교하면서 손녀를 포함한 재학생 10명이 인근 다른 초등학교로 전학을 가기 때문이다.
이날 용당초에선 6학년 1명이 ‘최후의 졸업생’으로 학교를 졸업했다. 졸업식과 같이 열린 폐교식에는 경기 남양주, 서울, 전북 익산 등 전국 각지에 살던 동문들이 찾아왔다. 4회 졸업생인 노연래씨는 “불과 5일 전 소식을 듣고 놀라서 아침 5시부터 준비해 내려왔다”며 “폐교 소식에 학교에 와서 50년 만에 동문들을 본다”고 말했다.
멀리 살던 동문들에겐 폐교 소식이 갑작스러웠을지 모르지만 주민들에겐 오래 전부터 예정된 미래였다. 지난해 용당초에 부임한 임순옥 교장도 “100% 통폐합 되는 학교라고 생각하고 왔던 것”이라고 했다. 용당초에는 최근 2년 동안 신입생이 없었다. 교직원은 17명으로, 학생 수 11명보다 많았다. 충남교육청이 세운 통폐합 요건에 해당했다. 교육청은 ‘적정규모 학교’를 육성한다는 명목으로 2년 연속 신입생이 없어야 한다는 통폐합 요건을 2년 연속이 아니어도 되도록 완화했다.
9일 제58회 졸업식 및 폐교식을 진행한 충남 부여 용당초. 김송이 기자
지역 인구 감소로 폐교가 늘어나는 건 막을 수 없는 흐름이다. 그러나 같은 인구 소멸지역이라도 학생 수가 유독 가파르게 줄어드는 학교엔 일종의 맥락이 있다. 지역 사회 내 ‘약한 고리’ 학교일수록 통폐합의 대상이 되기 쉽다.
용당초 재학생 10명 중 3명은 같은 면에 위치한 구룡초로 전학간다. 7명은 11km 떨어진 규암초를 선택했다. 부여군 안에서도 극명하게 차이나는 학생 수가 전학지 선택에 영향을 미쳤다. 구룡초는 학생 수가 14명이지만 규암초는 전교생이 436명으로, 부여 소재 초중고 중 두 번째로 큰 학교다. 학부모들은 아이들이 두 번 다시 통폐합을 겪지 않길 바라는 마음이라고 했다.
규모의 차이는 어디서 올까. 규암초 학생 수가 늘어난 건 2018년 전후로 학교 인근에 대단지 아파트가 들어서면서다. 중학교도 소규모 학교로 배정받는 다른 초교보다 지역 내 유명 사립중인 백제중에 배정받을 수 있다는 점도 학부모들이 규암초를 택하는 이유다.
다만 학생이 유입되는 학교 입장에서도 안심할 수는 없다. 송운석 규암초 교장은 “부여군 내 올해 초등학교 입학생이 159명인데 같은 해 태어난 아이들이 186명이다. 매년 20~30명의 아이들이 외부로 이동하는 것”이라며 “통폐합을 하더라도 결국 학부모들이 읍내로 중·고등학교를 보내지 않고 밖으로 나간다”고 했다. 그는 “5년 내로 학교가 10개도 못 있을 것 같아 두렵다”고 말했다.
지난 5일 폐교식을 진행한 대구 달서구 월곡초의 과학실에 지구본이 모아져있다. 김송이 기자
부여 같은 농촌 지역만의 문제가 아니다. 도심에서도 학생 수 감소가 집중되는 학교들이 문을 닫고 있다. 지난 5일 대구 달서구 월곡초에서도 제33회 졸업식 겸 폐교식이 열렸다. 이날 6학년 학생 23명이 졸업했지만 지난해 1학년 입학생은 3명에 불과했다. 월곡초는 도보 15분 거리 월촌초와 통폐합하기로 했다. 인근의 월촌초와 상인초는 모두 학생 수 400명대를 유지하고 있다.
주민들은 월곡초만 학생 수가 줄어든 이유에 대해 조심스레 “영세민 아파트가 있다”고 말했다. 1994년 지어진 인근 영구임대주택 주민들이 월곡초에 배정받기 때문에 학교 입학을 기피하는 분위기가 생겨났다는 것이다. 이 학교에서 9년간 학교 보안관으로 일한 A씨는 “아이 수가 없는 것도 맞지만 임대아파트 문제도 있다”며 “우리 며느리도 그런 이유 때문에 이 학교에 손주를 보내지 않겠다고 해서 놀랐었다. 학부모 마음이 그런가 보다”라고 했다.
지난해 서울에서 통폐합 논란이 일었던 서울 강남구 대청초도 비슷한 이유로 학생 수가 인근 학교보다 급격히 줄었던 것으로 알려졌다. 재건축 아파트단지에 안팎에 있는 일원초, 영희초에는 학생이 몰리는 반면 임대아파트 단지 옆에 위치한 대청초는 학생 수가 감소했고, 인근에서 통학 구역 변경도 원치 않는 분위기가 있었다.
지난 5일 대구 달서구 월곡초에서 제33회 졸업식 및 폐교식이 진행되고 있다. 김송이 기자
이미 ‘인구 소멸’이란 딱지가 붙은 지역에선 폐교를 앞두고 이러한 맥락이 가려지곤 한다. 폐교 원인을 두고 ‘학생 수가 줄어서’ ‘동네가 낙후해서’ 같이 지역의 탓이라며 자책하기도 한다. 월곡초 앞에서 18년간 문방구를 운영해 온 B씨도 “어쩔 수 없는 일”이라고 했다. 그는 “영세민 아파트의 12평, 18평 소형 평수를 보면 장애인이랑 새터민, 외국에서 온 사람들이 모여산다”며 “분위기가 그런 게 있고, 아이가 없는데 문을 닫아야지 어떡하나. 당장은 아니어도 앞에 있는 중학교, 고등학교도 모두 없어질 것”이라고 했다.
소멸이 예견된 곳이라고 해도 실제 폐교는 갑작스럽게 벌어지기도 한다. 한 학기 전에서야 폐교가 확정되는 경우도 있다. 용당초 구성원들도 지난해 초부터 ‘통폐합 예정 학교’라고 불리며 각종 주민 설명회와 폐교 안내를 준비했다. 그러던 중 여름방학을 맞은 지난해 7월 말엔 ‘통폐합 유예 신청을 할 수도 있다’는 교육청 공지를 받았다. 용당초를 비롯해 폐교가 예정됐던 4개 학교는 폐교 예정 한 학기를 앞두고 모든 것이 번복될 수도 있다는 혼란을 겪어야 했다. 임 교장은 “이미 주민들이 폐교를 위해 마음의 준비를 다한 상태태였는데 갑자기 유예가 가능하다고 한 이유도 알 수 없었다”며 “교육 당국이 당장 눈에 보이는 숫자 보단 장기적 안목을 갖고 소규모 학교 정책을 펴나가면 좋겠다”고 말했다.
경기·부산·충남·전남 등 4개 교육청은 내년 3월 폐교 예정 학교에 대해서도 “아직 학부모와 지역주민 의견을 수렴하는 중”이라며 “내년도 폐교 예정 학교가 확정되지 않았고 추가될 수도 있다”고 밝혔다. 진선미 더불어민주당 의원실이 17개 시도교육청에서 받은 자료를 보면 2027년 3월 폐교가 예정된 곳은 최소 10개 학교다. 숫자는 더 늘어날 수도 있다.
청소년들은 폐교 영향이 지역에 번질까 우려했다. 월곡초 폐교식에 참석했던 인근 중학교 3학년 이준수군(16)은 “이 학교에서 원래 우리 학교에 많이 입학했는데 폐교 하고나면 우리 학교 학생 수도 줄어들고 결국 폐교할까 걱정”이라고 했다.
올해 3월1일자로 폐교하는 충남 부여 충화초 정문 인근에 9일 지진 안내 대피장소 표지판에 세워져있다. 김송이 기자
폐교 부지가 문 닫힌 학교로만 남지 않도록 관리도 필요하다. 폐교식을 마친 학교 교직원들은 오는 2월 말까지 학교에서 이사 준비를 마쳐야 한다. 학교 재산 중 지역 내 다른 학교가 필요로 하는 물건은 넘겨줘야 한다. 월곡초는 지난해 하반기부터 폐교 준비 작업에 나섰다고 했다. 졸업식날에도 과학실과 정보실에는 지구본이나 각종 전자기기에 인수해 갈 학교의 이름표가 붙어있었다.
지난 8일 100회 졸업식을 끝으로 폐교하는 부여 충화초 부지는 지역 주민 자치 공간이나 요양병원·애견센터 등으로 임대할지 논의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지역 주민 반대나 매각 어려움 등의 이유로 5년 이상 방치된 부지도 많다. 진선미 의원실 자료에 따르면 2016년부터 2025년까지 전국 폐교 수는 412곳에 달하는데 이 중 최근 5년 이상 부치가 미활용 상태로 지속된 곳은 156곳으로 파악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