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일 좋지
저녁이 되면 자신이 적어도
하루를 더 견뎠다는 걸 알게 되니까)
재난들, 믿기지 않지만
승인된 결정들이
마음에 스며들게 해.
나라들 이름을 댈 필요도 없지,
그중에 미국도 있으니까.
우리가 수치스럽고, 수치스러워
땅에 얼굴을 박고 쓰러지지 않게 해주는 건 무엇일까?
- 메리 올리버(1935~2019)
유려한 언어로 자연의 충만한 생명력을 노래해온 시인 메리 올리버가 이런 시도 썼다니, 다소 뜻밖이다. 이 시가 실린 시집 <천 개의 아침>은 이라크 전쟁이 끝날 무렵인 2012년에 출간됐다. 매일 아침 조간신문에 실린 재난과 전쟁의 소식을 접하며, 시인은 자신의 나라 미국에 대한 분노와 부끄러움을 느낀다. 나의(자국의) 평화가 타자의(타국의) 고통을 담보로 유지되고 있다는 느낌. 이러한 공모자로서의 수치심은 개인적 감정이 아니라 공동체적 정동이다. “믿기지 않지만/ 승인된 결정들”에 익숙해지는 과정을 시인은 “soak in”이라고 표현한다. 물에 젖어들 듯이 우리는 타자의 불행과 타국의 재난에 무력하게 잠겨간다. 그렇게 하루 하루를 보내며(have lived through) 수치를 견딘다. 시인이 조간신문이 좋은 이유를 “저녁이 되면 자신이 적어도/ 하루를 더 견뎠다는 걸 알게 되니까”라고 설명하는 것도 그래서다. ‘견딘다’라는 동사로밖에는 설명할 수 없는 참담하고 아슬아슬한 일상. “ashamed, ashamed”의 반복으로 끝나는 이 시를 읽으며 우리 또한 자문하게 된다. “수치스럽고, 수치스러워/ 땅에 얼굴을 박고 쓰러지지 않게 해주는 건 무엇일까?”라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