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필로 이력서를 쓰지 않게 된 시절이라 다행이었다. 아니었다면 만지작거리느라 종이의 네 귀퉁이에 분이 났을 테니까. 이유는 비어 있는 3년치의 경력란에 있었다. 나는 백혈병을 진단받고 회복하는 데에 그 기간을 썼다. 그동안 아무것도 하지 않은 것은 아니다. 굿즈를 만들며 글을 썼고, 아르바이트를 하느라 나름대로 바쁘게 살았다. 하지만 그런 걸 적을 수는 없었다. 그 일들은 경력으로 인정받기에는 모자란 구석이 하나씩 있었다. 도무지 채울 수 없는 빈칸 앞에서, 어떻게 해서든 이 공백 아닌 공백기에도 의미가 있었다고 증명해야 할 것 같다는 강박에 시달렸다.
암 경험 이후의 생계는 통장 잔액뿐만 아니라 사회적 소속감마저 헐겁게 만들었다. 누군가는 나의 경제 사정을 염려했고, 또 누군가는 본격적으로 일을 하면 재발하지 않을지 염려했다. 상반된 반응이었지만 내가 근심거리라는 점에서는 동일했다. 인사 담당자들도 같은 생각을 할 터였다. 지난 시간을 어떻게 그럴듯하게 치장할지, 충분히 건강해졌다고 변명할 수 있을지를 고민했다. ‘아픈 사람은 충분히 쉴 수 있어야 하고 원하는 만큼 일할 수도 있어야 한다’는 평소의 신념이 이력서의 형식과 목적 앞에서 뒷전으로 밀려났다.
많은 사람들이 암 경험자의 회복을 응원하고 있다는 걸 안다. 사람들은 이제 “건강해져야지” “건강해질 거야”라는 당위 이상으로 암 경험자가 사회로 돌아갈 수 있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암 경험자를 실제 자신의 동료로 상상하고 있는지는 의문스럽다. 조사에 따르면 시민 10명 중 9명이 암 경험자의 학업 지속이나 직장 복귀에 동의하지만, 정작 3명 중 1명은 이들과 함께 일하는 것을 피하고 싶어한다. 응원과 거부 사이의 간극 속에서 암 경험자 4명 중 3명은 결국 일터로 돌아가지 못한다. 2011년 국가인권위원회가 치료 종결 후 5년 미만 암 경험자의 채용 거부 사례를 고용 차별로 인정한 바 있지만, 차별은 꼭 명시적인 방식으로만 이루어지지 않는다.
드러난 이야기만 추려보아도 암 경험자는 경력 단절을 경험하기 쉽다. 직장에 복귀하더라도 자신의 건강과 노동력이 의심받을 수 있다는 생각을 떨치기 어렵다. 감기에 걸리는 것조차 눈치가 보인다. 고용 안정성이 낮은 일을 하거나 직급이 낮은 사람일수록 이를 더 절감한다. 예전처럼 자신을 갈아 넣으며 일하면 안 될 것 같지만 그렇게 하지 않으면 무능력한 일꾼이 되는 노동환경 속에서, 어떤 암 경험자는 퇴사를 결심한다. 병력을 알리지 않거나 몸 상태를 최대한 숨기기도 한다. 자신의 정체성이 드러나지 않도록 단속시키는 것 또한 차별의 결과다. 나는 그들이 추적관찰을 비롯해 필요한 진료 일정을 어떻게 확보하고 있는지 궁금할 따름이다.
인정한다. 우리는 암 경험자다. 완벽하게 나아서 말짱해 보인다면 다행이지만 그렇지 않을 수도 있다. ‘치료 종결 후 5년’과 ‘완치’는 의학적인 지표일 뿐, 만성질환을 껴안고 살게 되었을지도 모른다. 머리카락이 덜 자라 까치집처럼 보일 수도 있고, 숱이 적고 가늘어져 두피가 보일 수도 있다. 신체의 일부를 잃었거나 옆구리에 인공 장루를 붙였을 수도 있다. 이것들은 우리가 살기 위해서 필연적으로 거쳐야 했던 사건들의 가장 정직한 이력서이기도 하다.
비어 있는 경력란을 보며 고개를 갸웃거릴 당신에게 말하고 싶다. 당신은 ‘아직’ 암에 걸리지 않은 사람일 수도 있다고. 이것은 저주가 아니라 당면한 현실이다. 당신은 올해 계획된 성장 그래프의 막대기 끝에 도달하기 위해 자신을 소진해야 하는 사회에 살고 있으며, 그러한 사회가 생산한 유해 물질을 먹고 마시며 장시간 노동을 하고서도 이전 세대보다 훨씬 길게 살게 되었다. 건강을 장담할 수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고, ‘유병장수’는 피할 수 없는 삶이 되었다. 이력서의 빈칸 앞에서 망설이고 또 망설이는 우리는, 사실 당신의 미래를 조금 먼저 겪고 있는 사람들일 뿐이다.
김도미 <사랑과 통제와 맥주 한잔의 자유> 저자
<김도미 <사랑과 통제와 맥주 한잔의 자유> 저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