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럼프, 진압 빌미 군사작전 검토
이란 경제난이 촉발한 반정부 시위가 2주째 접어들며 격화하는 상황에서 이란 당국이 시위대를 향해 실탄을 발포하는 등 강경 진압해 사망자 수가 급증하고 있다. 이란 정권의 주요 지지층이던 상인들 주도로 시작된 시위에 중산층·빈곤층이 참여하고,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시위 유혈진압을 빌미로 이란 공격 가능성을 시사하면서 1979년 이란 이슬람 혁명으로 확립된 신정체제가 최대 위기에 봉착했다는 평가가 나온다.
노르웨이에 본부를 둔 인권단체 이란인권(IHR)은 11일(현지시간) 이란 반정부 시위 관련 사망자가 최소 192명이라고 밝혔다. 이는 이 단체가 지난 9일 집계한 사망자 수 51명의 약 4배 수준이다. 이란 당국이 인터넷을 차단해 정확한 정보 파악이 어려운 터라 실제 사망자 수는 더 많을 수 있다. IHR은 “확인되지 않은 보고에 따르면 일부 소식통은 2000명 이상이 사망했을 가능성도 제기한다”고 전했다.
앞서 미국에 기반을 둔 인권운동가통신(HRANA)은 반정부 시위 관련 사망자가 최소 116명, 구금자 수가 2638명이라고 밝혔다. 이 단체는 사망자 대부분이 머리나 가슴에 실탄이나 고무탄에 맞아 사망했다고 했다. 사망자 중 37명은 군인·보안군·검사로 확인됐다.
시위가 이란 전역 31개주, 185개 도시, 574곳으로 확산하자 당국은 강경 진압으로 태세를 전환했다. 체제 존립이 위태로워질 수 있다는 위기의식이 작용한 것으로 보인다.
“독재자에 죽음을” 상인 시작으로 청년·중산층도 거리로
이란 ‘반정부 시위’ 전국 확산
실탄 발포에 지지층마저 등돌려 당국, 인터넷도 차단 ‘정보 봉쇄’
아야톨라 알리 하메네이 최고지도자가 전날 “일부 폭도들이 거리를 망치며 다른 나라 대통령(트럼프 대통령)을 기쁘게 하고 있다”고 말한 이후 당국의 대응 수위가 고조됐다. 이날 무함마드 모하메디아자드 이란 검찰총장도 “시위에 참여하면 누구든 신의 적으로 간주할 것”이라며 가담자를 사형에 처할 수 있다고 경고했다.
가디언과 CNN 등 외신은 시위 참가자들의 증언과 영상을 인용해 참혹한 현장 분위기를 전했다. 수도 테헤란의 시위 참가자는 “도시 곳곳에 저격수가 배치되고 많은 사람이 총에 맞았다. 수백 구의 시신을 목격했다”고 가디언에 전했다. 다른 시위 참가자는 “병원에서 시신들이 서로 겹쳐 쌓여 있는 모습을 봤다”고 말했다.
이번 시위는 지난달 28일 이란 리알화 가치가 사상 최악인 달러당 142만리알(약 4만9000원)까지 폭락한 것을 계기로 테헤란 그랜드바자르(전통시장) 상인들이 거리로 쏟아져 나오면서 시작됐다. 이란 정부가 이달 5일 국민 8000만명에게 매달 1인당 100만토만(약 7달러·1만원)을 지급하겠다는 유화책을 제시하고, 마수드 페제시키안 대통령이 중앙은행장을 교체하면서 시위대를 달랬지만 역부족이었다.
상인 계층은 현 정권의 주요 지지 기반이자 1979년 이슬람 혁명의 주요 세력이었다. 시위를 조직할 네트워크가 있고 직장인·학생과 달리 언제든 상점 문을 닫고 거리로 나설 수 있어 시위 규모를 확대할 여력이 있는 것으로 평가된다.
시위에 청년, 중산층, 빈곤층까지 참여하면서 “독재자에게 죽음을” “하메네이에게 죽음을” 등 반정부 구호가 등장하기 시작했고, 이슬람 혁명으로 축출된 팔레비 왕정복고를 주장하는 목소리도 나오고 있다. 팔레비 왕조의 마지막 왕세자 레자 팔레비는 소셜미디어에 시위 참여를 독려하는 글을 올리기도 했다.
이런 상황에서 트럼프 대통령은 이란 시위 유혈 사태를 빌미 삼아 이란 정권을 겨냥한 군사작전 카드를 만지작거리고 있다. 뉴욕타임스(NYT)와 월스트리트저널(WSJ)은 트럼프 대통령이 대규모 공습을 포함해 이란을 공격하는 방안을 검토 중이라고 보도했다.
NYT는 트럼프 대통령이 이란 작전과 관련해 여러 안을 최근 며칠간 보고받았다고 전했다. 또 아직 최종 결정을 내리진 않았지만 이란 정권의 시위대 탄압에 대응한다는 명분으로 타격을 승인하는 방안을 고민하고 있다고 보도했다. WSJ 또한 미 행정부가 이란 공격 방안을 두고 예비적 단계의 논의를 진행해왔으며, 선택지 중 하나에는 이란 내 군 관련 표적을 겨냥한 대규모 공습도 포함돼 있다고 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