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간 80주년 경향신문

[세상 읽기]평화의 시대로 이어지는 길



완독

경향신문

공유하기

  • 카카오톡

  • 페이스북

  • X

  • 이메일

보기 설정

글자 크기

  • 보통

  • 크게

  • 아주 크게

컬러 모드

  • 라이트

  • 다크

  • 베이지

  • 그린

컬러 모드

  • 라이트

  • 다크

  • 베이지

  • 그린

본문 요약

인공지능 기술로 자동 요약된 내용입니다. 전체 내용을 이해하기 위해 본문과 함께 읽는 것을 추천합니다.
(제공 = 경향신문&NAVER MEDIA API)

내 뉴스플리에 저장

[세상 읽기]평화의 시대로 이어지는 길

입력 2026.01.12 19:52

수정 2026.01.12 19:53

펼치기/접기

1999년 12월31일, 시민들은 서울 광화문 일대에 몰려들어 새천년의 전야를 맞았다. 인류는 20세기의 상처를 뒤로하고 21세기를 향한 희망과 기대를 품었다. 한반도는 분단의 역사와 대면해 평화로 나아가던 참이었고, 유엔은 미래를 향한 낙관을 품고 새천년개발목표를 제시했다. 당시를 돌아보면 그야말로 격세지감을 느낀다.

어느새 낙관은 힘을 잃었다. 새천년의 희망은 증발했고, 세계가 더 나빠지고 있다는 비관이 가득하다. 1월3일 미국의 베네수엘라 마두로 대통령 납치가 온 세계를 뒤흔들었다. 국제법을 무시한 채 군을 파견하고 베네수엘라를 운영하겠다 선언한 트럼프 대통령의 행보는 일정한 논리적 일관성을 갖춘 노선의 발로라 보기 어렵다.

1월7일 트럼프는 국제기구 66곳을 탈퇴하는 행정명령에 서명했다. 미국은 20세기 전쟁의 폐허 위에 자신이 세웠던 평화와 번영을 향한 국제질서를 스스로 무너뜨리는 중이다. 그 질서는 비록 문제가 많았을지라도 식민지 해방과 독립적 주권국가 건설을 가능케 한 토대였고, ‘유엔의 맏아들’ 대한민국이 태어난 자리였다. 그 존립의 근거가 무너지고 강대국의 이해관계와 힘이 노골화되는 새로운 세계에서 한국은 무사할 수 있을까?

베네수엘라 사태가 법과 규범을 무효화하며 자의적 판단에 근거해 행사되는 폭력의 국제적 버전이라면, 그 국내적 버전은 1월7일 이민단속국의 미니애폴리스 시민 총격이었다. 이민자, 유색인종, 성소수자를 향한 증오정치 속에 성장한 국가폭력은 마침내 백인 여성 시민권자마저 희생자로 만들었다.

폭력은 목적을 달성하기 위한 수단에 머무르지 않고 그 자체가 목적이 되어 자가발전한다. 법과 규범의 통제를 무너뜨리고 자의적으로 행사되기 시작한 폭력 앞에서 누구도 자유로울 수 없다. 이민자 추방이라는 폭력의 관행이 조지아 구금 사태나 미니애폴리스 총격 사건으로 발전한 것처럼, 특정 약자 집단을 향한 폭력은 이윽고 임계점을 넘어 극단화된다.

그러나 역설적으로 임계를 넘어선 폭력은 누구나 피해자로 만들 수 있기에 다른 가능성을 낳는다. 우리에게 지난 12·3 비상계엄이 그랬던 것처럼, 백인 시민권자마저 살해될 수 있다는 사실이 현재 미국 전역에서 국가폭력에 맞선 저항을 불러일으키고 있다. 정부가 희생자를 “좌파” “선동가”라며 폭력을 정당화할수록, 실은 이전에 폭력을 겪은 피해자도 나와 무관치 않은 평범한 이웃이었단 걸 실감하게 된다. 당할 만해서 당한 것이 아니라 애초부터 부당한 폭력이 있었을 뿐이다. 그렇게 폭력 앞에서 사람들은 타인을 향한 연대를 배운다.

한편 나는 이번 총격 사건으로 한국 사회가 큰 충격을 받는 모습에 문득 의문이 들었다. 왜 우리는 그런 총격이 가자지구에서 매일 일어나고 있다는 사실에 그만한 충격을 받지 않는 것일까? 왜 아시아 유색인보다 서구 백인의 죽음에 더 공감하는 것일까? 인종주의와 식민주의를 따라 형성된 애도의 위계로부터 한국 사회도 결코 자유롭지 않은 것이다.

하지만 12·3 내란 이후 가장 크게 성장한 운동 중 하나가 팔레스타인 연대 운동이라는 걸 기억하자. 계엄이라는 폭력의 가능성을 체감한 시민들은 응원봉에 멈추지 않았다. 그들의 연대는 나와 멀고 다르다고 믿었던 폭력의 피해자들, 팔레스타인을 향해 나아갔다.

적대와 증오가 규범을 무너뜨리는 혼란의 시대는 인류가 다시 새로운 공통 규범을 창출해낼 때 비로소 종결될 것이다. 나는 우리 평범한 시민들에게서 그 원천을 발견한다. 자신의 피해로부터 이전에 미처 보지 못했던 타인의 고통으로 이어지는 그 연대의 마음은 폭력보다 강하다. 망해가는 세계에서도 우리가 품위와 고결함을 잃지 말아야 하는 까닭은 거기에 새로운 평화의 시대로 이어지는 길이 있기 때문이다.

최성용 사회연구자

최성용 사회연구자

  • AD
  • AD
  • AD

연재 레터를 구독하시려면 뉴스레터 수신 동의가 필요합니다. 동의하시겠어요?

경향신문에서 제공하는 뉴스레터, 구독 콘텐츠 서비스(연재, 이슈, 기자 신규 기사 알림 등)를 메일로 추천 및 안내 받을수 있습니다. 원하지 않는 경우 [마이페이지 〉 개인정보수정] 에서 언제든 동의를 철회할 수 있습니다.

레터 구독을 취소하시겠어요?

뉴스레터 수신 동의

경향신문에서 제공하는 뉴스레터, 구독 서비스를 메일로 받아보실 수 있습니다. 원하지 않는 경우 [마이페이지 > 개인정보수정] 에서 언제든 동의를 철회할 수 있습니다.

※ 동의를 거부하실 경우 경향신문의 뉴스레터 서비스를 이용할 수 없지만 회원가입에는 지장이 없음을 알려드립니다.

  • 1이메일 인증
  • 2인증메일 발송

안녕하세요.

연재 레터 등록을 위해 회원님의 이메일 주소 인증이 필요합니다.

회원가입시 등록한 이메일 주소입니다. 이메일 주소 변경은 마이페이지에서 가능합니다.
이메일 주소는 회원님 본인의 이메일 주소를 입력합니다. 이메일 주소를 잘못 입력하신 경우, 인증번호가 포함된 메일이 발송되지 않습니다.
뉴스레터 수신 동의
닫기

경향신문에서 제공하는 뉴스레터, 구독 서비스를 메일로 받아보실 수 있습니다. 원하지 않는 경우 [마이페이지 > 개인정보수정] 에서 언제든 동의를 철회할 수 있습니다.

※ 동의를 거부하실 경우 경향신문의 뉴스레터 서비스를 이용할 수 없지만 회원가입에는 지장이 없음을 알려드립니다.

  • 1이메일 인증
  • 2인증메일 발송

로 인증메일을 발송했습니다. 아래 확인 버튼을 누르면 연재 레터 구독이 완료됩니다.

연재 레터 구독은 로그인 후 이용 가능합니다.
경향신문 홈으로 이동
뉴스레터 구독
닫기

전체 동의는 선택 항목에 대한 동의를 포함하고 있으며, 선택 항목에 대해 동의를 거부해도 서비스 이용이 가능합니다.

보기

개인정보 이용 목적- 뉴스레터 발송 및 CS처리, 공지 안내 등

개인정보 수집 항목- 이메일 주소, 닉네임

개인정보 보유 및 이용기간- 원칙적으로 개인정보 수집 및 이용목적이 달성된 후에 해당정보를 지체없이 파기합니다. 단, 관계법령의 규정에 의하여 보존할 필요가 있는 경우 일정기간 동안 개인정보를 보관할 수 있습니다.
그 밖의 사항은 경향신문 개인정보취급방침을 준수합니다.

보기

경향신문의 새 서비스 소개, 프로모션 이벤트 등을 놓치지 않으시려면 '광고 동의'를 눌러 주세요.

여러분의 관심으로 뉴스레터가 성장하면 뉴욕타임스, 월스트리트저널 등의 매체처럼 좋은 광고가 삽입될 수 있는데요. 이를 위한 '사전 동의'를 받는 것입니다. 많은 응원 부탁드립니다. (광고만 메일로 나가는 일은 '결코' 없습니다.)

뉴스레터 구독
닫기

닫기
닫기

뉴스레터 구독이 완료되었습니다.

개인정보 수집 및 이용
닫기

개인정보 이용 목적- 뉴스레터 발송 및 CS처리, 공지 안내 등

개인정보 수집 항목- 이메일 주소, 닉네임

개인정보 보유 및 이용기간- 원칙적으로 개인정보 수집 및 이용목적이 달성된 후에 해당정보를 지체없이 파기합니다. 단, 관계법령의 규정에 의하여 보존할 필요가 있는 경우 일정기간 동안 개인정보를 보관할 수 있습니다.
그 밖의 사항은 경향신문 개인정보취급방침을 준수합니다.

닫기
광고성 정보 수신 동의
닫기

경향신문의 새 서비스 소개, 프로모션 이벤트 등을 놓치지 않으시려면 '광고 동의'를 눌러 주세요.

여러분의 관심으로 뉴스레터가 성장하면 뉴욕타임스, 월스트리트저널 등의 매체처럼 좋은 광고가 삽입될 수 있는데요. 이를 위한 '사전 동의'를 받는 것입니다. 많은 응원 부탁드립니다. (광고만 메일로 나가는 일은 '결코' 없습니다.)

닫기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