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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북, ‘선언적 평화’서 군비통제로

입력 2026.01.12 19:53

최근 북한이 핵추진잠수함 공개에 이어 극초음속미사일, 공대지미사일 등을 공개했다. 이 무기들은 사거리 파괴와 극초음속화, 정밀타격, 은밀성을 극한으로 끌어올리고 있는 동북아의 군비경쟁 양상을 북한식으로 어떻게 변주하고 있는지를 보여주는 지표다. 미국·중국·러시아가 스텔스와 극초음속, 정밀타격무기, 핵어뢰 등으로 사거리와 은밀성의 경계를 허무는 가운데, 일본과 한국 역시 장거리 반격 능력과 초정밀·고위력 미사일, 핵추진잠수함으로 이 대열에 합류하고 있다. 바야흐로 동북아는 서로의 심장부를 정밀 조준하는 ‘초정밀 타격의 딜레마’에 갇혀 있는 형국이다.

동북아의 군비경쟁을 두 개의 ‘군사·정치 기술 시스템’이 충돌하는 구조적 변동 차원에서 읽을 필요가 있다. ‘군사·정치 기술 시스템’은 국가안보와 세력경쟁 맥락에서 구축되는 대규모 사회기술적 시스템을 의미한다. 이는 미사일이나 군사 인프라 같은 ‘물질적 요소’와 군대·방산기업 같은 ‘조직적 요소’, 그리고 동맹·독트린·법제도 같은 ‘정치적 요소’가 하나로 결합된 통합망이다. 동북아는 바로 이 거대 시스템들이 생존과 패권을 걸고 격돌하는 거대한 실험장이 되었다.

미국은 인도·태평양사령부를 허브로 항모, 정밀타격무기, 정찰자산, 미사일방어망 전개를 통해 군사기술 시스템을 역내에 이식해왔다. 또한 미국은 동맹을 매개로 한국과 일본을 네트워크에 통합하고 있다. 무기의 상호운용성 강화, 정밀타격·미사일방어·다영역작전의 참여뿐만 아니라 중국 억제를 위해 더 많은 부담을 요구하고 있다. 주한미군의 전략적 유연성, 한국군의 역할 확대라는 ‘상호유연성’도 가시화되고 있다. 중국은 과학기술 강군을 기치로 독자적인 시스템을 구축해왔다. 재래식·핵 전력의 양적 토대 위에 인공지능(AI), 극초음속미사일, 위성망 등 첨단기술을 결합해 전략적 안정성을 확보하는 전략이다. 이제 미·중 경쟁은 반도체와 5G, 양자컴퓨팅 등 민간 기술 영역까지 포괄하는 전방위 ‘테크노 경쟁’의 성격을 띠고 있다.

이 틈바구니에서 주변국들의 행보 또한 빨라지고 있다. 일본은 정밀무기, 해군자산, 우주·사이버 역량을 강화하며 뛰어난 해양 도메인 인식 능력과 이지스함 전력으로 중국을 견제하는 미국 주도 시스템의 최전선 역할을 하고 있다. 러시아는 중·러 합동훈련과 기술협력을 통해 중국 시스템과 부분적으로 연대하며 영향력을 유지하고 있다. 최근 가시화되는 북·러 군사협력은 동북아 군사·기술 시스템 대결의 또 다른 변수다.

여기에 미국의 2025 국가안보전략(NSS)은 ‘전략적 불안정성’을 가중시키는 우려스러운 신호탄이다. 미사일방어와 우주 감시망의 강화는 선제타격 유인을 높이는 ‘안보의 딜레마’를 촉진할 수 있다. 군축과 신뢰 구축이 삭제된 자리에 ‘압도적 힘의 우위’와 ‘문명 간 경쟁’을 채웠다. 상호 취약성을 인정한 공존 대신 끝없는 기술적 우위를 택한 미국의 전략은 필연적으로 상대의 군비증강을 정당화하며, 결국 2026년을 군비경쟁을 가속화하는 ‘불안정의 해’로 만들 가능성이 높다.

이런 전략적 불안정성은 한반도에 중요한 함의를 준다. 이 지역의 안보 문제는 이념적 대립이 아니라 AI·극초음속·우주·사이버 등 군사기술, 억제 및 공격 역량, 장기적인 세력경쟁 및 질서 변화가 핵심이란 점이다. 따라서 북한 핵 문제나 남북한 신뢰의 본질은 단지 북한 정권의 태도 변화가 아니라, 남북한 및 역내 군비경쟁 체제, 세력경쟁 구도 변화에 연동돼 있다는 점이다. 안보 딜레마 속 위기관리 장치가 사라진 한반도에서 결국 이를 안정적으로 관리하기 위한 기술적 통찰과 전략이 필요한 시점이다.

핵심은 ‘신뢰’의 재인식이다. 막연한 선언적 평화공존이 아니라, 구체적인 위협 감소가 신뢰 구축의 본체가 되어야 한다. 위협 감소 없이 신뢰를 외치는 것은 본질의 회피다. 상호 위협을 줄이는 접근, 협력적 전환 프로그램, 다층적 군비통제 구상이 필요하다. 첫째, 선제적이고 점진적인 상호주의다. 먼저 작은 위협 감소 조치를 선제적으로 취하는 ‘전략적 균형’의 지혜다. 둘째, ‘암묵적인 행태적 군비통제’의 실천이다. 합의가 없더라도 적대적 행위의 절제와 예측 가능한 행동이 오인·충돌을 방지하는 효과를 낼 수 있다. 셋째, 동북아 차원의 협력안보, 군비통제를 한국이 주도적으로 제안할 필요가 있다. 핵무기·정밀타격 경쟁으로 인한 오인을 방지하는 위협 감소 협의틀을 제안하는 것이다. 이 위에 미·중·러의 핵군비통제 논의가 다층적으로 포개질 수 있다면, 북핵 문제도 다층적 구도 속에서 장기적 현실성을 찾을 수 있다.

홍민 통일연구원 선임연구위원

홍민 통일연구원 선임연구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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