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I 에이전트 ‘웹셰퍼드’ 개발자들 만나보니
상품 검색~주문·결제 ‘자율 웹쇼핑’ 가능
“학부생 아이디어로 출발··· 숨은 인재 많다”
지난달 18일 서울 서대문구 연세대학교 공학원에서 인공지능학과 여진영 교수와 조준희씨, 채형주씨(오른쪽부터)가 AI 에이전트 ‘웹셰퍼드’의 논문과 실제 적용 사례를 선보이고 있다. 이준헌 기자 heon@kyunghyang.com
“○○○○에서 지금 베스트 상품을 찾아줘.”
노트북 화면에 온라인 상품 판매업체 ○○○○ 홈페이지가 열리고 메뉴 상단에 ‘베스트’ 카테고리를 찾아 이내 가장 잘 팔리고 있는 ‘시금치’ 품목을 띄워준다. 이 업무를 수행한 이는 인공지능(AI) 웹 브라우징 에이전트 ‘웹셰퍼드’(Web-Shepherd)다. 웹셰퍼드는 웹 검색을 통해 정보를 제공하는 것을 넘어서, 키보드나 마우스를 사용하지 않고도 온라인 쇼핑 결제까지 가능하다.
지난달 18일 웹셰퍼드를 개발한 연세대 인공지능대학원 여진영 교수와 채형주 조지아공과대학 박사과정생(27·개발 당시 연세대 석사과정생), 조준희 연세대 인공지능학과 학부생(22)을 연세대 공학원에서 만났다. 지난해 8월 공개된 웹셰퍼드 논문은 세계적으로 권위 있는 AI 학회인 뉴립스(NeurIPS)에서 스포트라이트(Spotlight·전체 논문의 상위 3% 이내) 논문으로 선정됐다.
웹셰퍼드는 날씨·교통 정보를 알려주는 ‘AI 비서’와 무엇이 다를까. 채씨는 “기존 AI 비서들이 정해진 철로를 따로 달리는 지하철 열차라고 한다면, 웹셰퍼드는 같은 목적지를 가더라도 더 효율적이고 자율성이 높은 자율주행 자동차로 비유할 수 있다”고 했다. 조씨는 “AI가 조금 더 직접적으로 컴퓨터를 조작한다고 생각하면 된다”며 “마우스를 움직여서 웹사이트의 어떤 버튼을 누르는 동작을 사람 대신 하는 프로그램”이라고 했다. 현재 AI 기술은 웹사이트 안의 언어로 처리된 정보를 찾는 것은 잘하지만 웹사이트의 UI(사용자 환경)·UX(사용자 경험)를, 예를 들어 로그인이나 메뉴 버튼의 위치를 사람만큼 잘 읽어내진 못한다.
웹셰퍼드는 웹 이용 속도도 높였다. 기존 GPT-4o 모델로 웹 브라우징 작업 800개를 처리하려면 약 1900만원의 API 비용과 40시간 이상의 처리 시간이 필요한 반면 웹셰퍼드는 작업을 10분의 1 비용, 10배 빠른 속도로 처리할 수 있다. 이를 위해 연구팀은 4만건에 달하는 웹 브라우징 데이터를 직접 수집·학습시켰다. 웹셰퍼드가 나오기까지 5개월이 소요됐다.
웹셰퍼드가 기존 AI 웹 에이전트과 비교해 학술적으로 더 인정받은 부분은 업무 수행 과정을 단계별로 평가하도록 설계했다는 점이다. 조씨는 “‘웹셰퍼드’는 안내자라는 의미로 붙인 이름”이라며 “기존의 AI 웹 에이전트들은 명령을 성공했는지 실패했는지 여부만으로 학습을 하는데, 웹셰퍼드는 업무 수행 중간 단계들을 직접 안내하고 단계마다 평가를 하고 가이드를 주면서 강화 학습이 가능해졌다”고 말했다. 기존 방식이라면 ‘시금치를 주문하라’고 시켰을 때 온라인 판매 사이트 검색, 사이트 접속, 상품 검색, 주문, 결제 등 여러 단계 중 어느 단계에서 실패하면 결과값은 ‘실패’로 처리된다. 웹셰퍼드는 각 단계마다 성공과 실패를 평가하고, 다음 단계 가이드를 제시해줌으로써 성공 확률을 높일 수 있다.
지난달 18일 서울 연세대학교 공학원에서 AI 에이전트 ‘웹셰퍼트’를 개발한 인공지능학과 여진영 교수(검은색 상의)와 채형주씨(왼쪽), 조준희씨(오른쪽)가 포즈를 취하고 있다. 이준헌 기자
최근 가장 주목받는 AI 연구 주제가 ‘스스로 발전하는’ 에이전트(self-evolving agent)라고 한다. 여 교수는 “웹셰퍼드는 웹사이트를 기반으로 연구한 결과이지만 AI 에이전트 기술은 앞으로 자동차나 모바일 기기, 산업용 기계 등 다양한 플랫폼에 적용해볼 수 있다”며 “현재는 대개 어떤 업무 수행을 소프트웨어에 시켰을 때 사람이 코딩해놓은 작업만 수행하는데, 앞으로는 사람이 미리 정해놓은 것을 따르는 방식이 아니라 스스로 행동하며 얻은 경험을 통해 판단 능력을 개선해나가게 될 것”이라고 했다.
글로벌 빅테크 기업들이 AI 에이전트 기술에 관심을 보이고 연구를 진행 중이다. 웹셰퍼드가 공개됐을 때 오픈AI, 아마존, 세일즈포스 등이 관심을 보였다고 한다. 국내에선 관련 연구가 거의 진행되지 않았다. 여 교수는 “웹셰퍼드 연구가 가능했던 건 연구실이 아래에서부터 나온 의견을 받아주는 문화가 강해서였다”며 학생들의 아이디어에서 웹셰퍼드가 시작됐다고 말했다. 웹셰퍼드 논문의 제1 공동저자는 학생 연구자인 채형주·김성환·조준희씨이고, 연구실 학생 다수가 같이 이름을 올렸다.
지난달 18일 서울 서대문구 연세대학교 공학원에서 채형주씨, 조준희씨, 여진영 교수(왼쪽부터)가 AI 에이전트 ‘웹셰퍼트’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이준헌 기자
연구팀은 웹셰퍼드의 모델과 데이터를 다른 연구실이나 산업계에서 활용할 수 있도록 무료로 공개했다. 연구팀 차원에서 상용화 계획이 있진 않다. 여 교수는 “웹셰퍼드가 아직까지 사람과 비교했을 때는 속도나 정확도면에서 좀 부족한 부분이 있어 발전시키는 연구를 지속적으로 하고 있다”고 했다. 복잡하고 많은 단계의 업무를 처리할 수 있는 기능(자동화) 향상과 다양한 소프트웨어에서 동작할 수 있는 기능(범용성) 향상을 연구 방향으로 잡고 있다. 연구팀은 웹셰퍼드와 같은 AI 에이전트 기술이 발전하면 산업 현장에선 일하는 사람들의 업무 능력을 높여주고, 일상에선 노인이나 시각장애인 등 새로운 기기 이용에 어려움이 있는 이들에게 도움이 될 것이라고 내다봤다.
미국과 중국의 경쟁이 가장 뜨거운 곳이 바로 AI 분야이다. 두 국가의 자금, 인력, 데이터, 연구환경 모두 AI 인재들을 끌어들이고 있다. 여 교수는 “공학은 연구를 진행하는 만큼 발전하는 것 같다”며 “일단은 따라가다보면 한국만의 길이 나올 것”이라며 “국내에서도 학부 때부터 눈에 띄는 성과를 보이는 인재들이 많이 있다. 지금은 그들이 한국을 떠나고 있지만 그들이 다시 돌아오거나, 지금 자라는 인재들을 한국의 기업이나 연구기관이 포용할 수 환경을 만드는 게 필요하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