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7월24일 미국 워싱턴에서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과 제롬 파월 연방준비제도(Fed·연준) 의장이 개보수 중인 연준 건물을 둘러보고 있다. 로이터연합뉴스
중앙은행은 “파티가 무르익을 때 펀치볼(술과 음료를 담는 그릇)을 치우는 사람”으로 비유된다. 1951년부터 19년 동안 미국 연방준비제도(Fed·연준) 의장이었던 윌리엄 맥체스니 마틴이 남긴 말이다. 경제가 호황을 누릴 때(파티) 조심히 술그릇을 치워(금리 인상) 경기과열을 막아야 한다는 의미다. 파티가 이어지기를 원하는 정부나 시장에 중앙은행이 ‘욕받이’의 대상이 되는 건 어쩌면 숙명적이다.
‘중앙은행의 독립성’은 통화정책의 상식이고, 그래서 미국 연준 의장은 ‘경제 대통령’으로도 불린다. 하지만 ‘우리가 알던 미국’이 사라지는 트럼프 시대에는 이 상식마저 무너지기 일보 직전이다. 제롬 파월 연준 의장을 수사 중인 연방 검찰이 지난 9일 파월의 기소 여부를 결정하기 위한 대배심 소환장을 발부한 것이다. 트럼프가 취임 직후부터 금리 인하를 압박했지만 말을 듣지 않자 “멍청한 사람” “너무 늦은 사람(Mr. Too late)”이라며 겁박하더니 결국 강제로 쫓아내려는 것이다.
덴마크령 그린란드에 눈독을 들이고 과도한 이민자 단속으로 우방국과 미국 사회를 뒤집어 놓은 트럼프가 중앙은행의 독립성마저 뒤흔들자 후폭풍이 거세다. 앨런 그린스펀, 벤 버냉키 등 전 연준 의장과 그레고리 맨큐 전 백악관 경제자문위원장 등 유명 경제학자 13명이 “검찰권력을 이용해 중앙은행의 독립성을 훼손하려는 유례없는 시도”라고 비판했다. 이창용 한국은행 총재를 비롯해 유럽중앙은행(ECB), 영국, 캐나다 등 10개국 중앙은행 총재들도 파월 의장 편에 섰다.
대통령 입맛에 맞는 통화정책의 결과는 역사가 잘 보여준다. 1972년 대선을 앞둔 리처드 닉슨 대통령의 압력에 굴복해 아서 번스 의장은 인플레이션 상황에서도 금리를 낮췄다. 그 결과 미국 경제는 1970년대 내내 침체 속에도 물가가 13% 가까이 치솟는 스태그플레이션에 빠졌다. 미국 경제가 흔들리면 세계 경제는 몸살을 앓고, 그럴수록 안전 자산인 달러 선호도는 높아진다. 개방경제 시스템인 한국은 그 부정적 영향을 고스란히 받게 된다. 14일 원·달러 환율이 10일 연속 오르며 다시 1480원을 코앞에 뒀다. 달러 강세와 해외 투자 증가로 좀처럼 떨어지지 않는 환율상승 기대심리가 ‘트럼프 리스크’ 탓에 더 오를까 불안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