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기 용인 반도체 클러스터를 전북 새만금 지역으로 이전해야 한다는 주장에 대통령실이 “강제로 뽑아서 옮기지 않는다”고 밝혔다. “기업이 알아서 할 일”이라는 표현도 썼다. ‘반도체 입지’ 논쟁이 수도권 반도체론자들의 승리로 기우는 듯하다.
반도체 산업은 기업 간 경쟁을 넘어 국가 대항전의 모습을 띠고 있다. 최근 삼성전자와 하이닉스가 거둔 경이로운 실적은 반도체에 대한 과감한 투자와 지원 필요성을 보여준다. 그런데 국가가 땅을 대고 국민 경제에 엄청난 영향을 미치는 반도체 공장을 수도권에 짓는 게 최선인지 여전히 의문이다. 수도권 반도체론자들은 새만금의 단점과 용인의 비교 우위를 강조한다. 그러나 그들은 반도체 공장의 수도권 집중이 가져올 부작용과 수도권 입지 자체의 한계와 문제에 관해선 말하지 않는다. 경북이나 전남 등 다른 비수도권을 대안으로 제시하지도 않는다.
수도권은 전력 자립도가 바닥이다. 용인 등 반도체 산단도 전력 문제가 해결되지 않았다. 자력으로는 16GW(지난해 한국 전체 최대 전력 수요의 16%)에 이르는 추가 전력 수요를 채울 길이 없다. 한국전력이 전기 공급을 약속했다지만 결국 원자력발전소 수십 기를 새로 짓거나 지방에서 전기를 끌어와야 한다. 그러잖아도 요즘 충청권이 난리다. 수도권에 전기를 보내기 위한 한전의 송전선로 건설 사업 때문이다. 주민들은 충청도가 서울의 ‘에너지 식민지’가 됐다며 반발하고 있다. 제2의 밀양 송전탑 사태가 일어날 수 있다.
용수 공급도 문제다. 공장을 돌리려면 하루 물 107만t이 필요하다고 한다. 1인당 10ℓ씩 10만7000명의 하루 소비분이다. 한강 수계는 큰 댐이 많아 용수 양이 제법 되지만 택지와 산단 개발이 이어지면서 수자원 상황이 예전 같지 않다. 기후변화로 가뭄이 길어지면 수자원 용량 자체가 급감할 수도 있다.
반도체 기업들은 인프라 집적과 우수한 인력 확보를 위해서도 수도권 입지가 불가피하다고 주장한다. 그런데 대만이나 일본 등은 반도체 공장이 지방에 있다. 대만의 TSMC는 수도인 타이베이 근처인 신주 외에도 타이중, 타이난에 공장이 있다. 일본 홋카이도엔 신생 반도체 기업 라피더스의 공장이 있고, 구마모토엔 TSMC 공장이 추가로 들어설 예정이다. 반도체 공장들이 한데 모여 있을 필요가 없고, 수도 근처에 있지 않아도 된다는 얘기다. 수도권 반도체론자는 이들 나라와 기업은 제조업 역사와 배경, 반도체 품목도 다르다고 일축해버린다.
용인 산단 선정 과정도 짚고 넘어가야 한다. 2023년 3월 윤석열 정부는 남사읍 일대에 국가 산단 조성 계획을 발표했다. 수도권 공장 총량제를 무시하고 예비타당성조사도 면제했다. 삼성을 위한 맞춤이라는 게 공공연한 비밀이었다. 그러다 애초 예정보다 3개월 앞당겨진 2024년 12월 말 국토교통부 최종 승인이 났다. 12·3 불법계엄으로 윤석열의 대통령 권한이 정지된 상태에서 이뤄진 결정이었다. 반도체 산단 새만금 이전 주장이 정치적이라면, 용인 산단 결정 역시 정략적이고 편파적이라는 비판을 감수해야 한다.
한국 경제의 가장 큰 문제는 성장만 있고 분배가 없다는 점이다. 이번 반도체 입지 논쟁도 마찬가지다. 지역균형 발전보다 반도체 산업의 국제 경쟁력을 높여야 한다는 주장엔 파이를 먼저 크게 키워야 한다는 의식이 깔려 있다. 파이가 커져야 분배할 수 있다는 이데올로기는 위험하다. 나누려는 의지는 파이가 커진다고 생기지 않는다.
이달부터 수도권 생활폐기물 직매립이 금지되면서 서울에서 발생한 쓰레기가 민간 소각장을 찾아 지방으로 옮겨지고 있다. 쓰레기는 지방으로 보내면서 반도체 공장은 수도권이 아니면 절대 안 된다고 한다. 돈이 되고 좋은 것은 수도권, 나쁘고 더러운 것은 지방이다. 이래서야 사회통합이나, 지방주도 성장이 이뤄지겠나. 수도권 반도체론자들은 이런 얘기를 하지 않는다. 누구보다 잘 알면서 입을 꾹 닫고 있다.
전북 무주의 무풍중고교가 개교 74년 만에 문을 닫았다. 100년이 넘은 충남 부여 충화초에서도 얼마 전 마지막 졸업식이 치러졌다. 지역 인재의 요람이자 공동체의 구심이었던 학교가 문을 닫는 것은 한국이 직면한 인구 절벽과 지방 소멸을 단적으로 드러낸다. 용인 산단에 반도체 공장이 완공되면 지방은 더 불행해지고, 경제·사회 양극화도 심해질 것이다. 반도체 입지는 장기적 관점에서 신중하게 결정돼야 한다. 이만큼 5200만 국민의 이해관계가 걸린 사안도 없다.
오창민 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