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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차의 꿈에서 다시 나무에게로

입력 2026.01.15 20:01

수정 2026.01.18 17: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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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경의 별잇기 예술여행]기차의 꿈에서 다시 나무에게로

 “그래, 이런 게 영화지.” 눈 오는 날 넘어지면서 병원에 가서 깁스를 하고 온 날이었다. 갑자기 움직일 수 없는 다리와 함께 뭘 해야 할지 몰라서 침대에 누워 넷플릭스 영화 <기차의 꿈>을 봤다. 모처럼 영화다운 영화를 보는 즐거움에 흠뻑 취해 나만의 ‘깁스 홀리데이’를 자축하고 싶은 마음마저 들게 하는 영화였다. 게다가 영화가 끝나면 이런 메시지가 우주에서 온 희미한 교신 신호처럼 마음에 남는다.

 “모든 것은 연결되어 있다.”

 혹시 이런 게 유령 같은 양자 중첩인가? 이제 막 카를로 로벨리로부터 시작되는 상호 연결적 예술여행을 시작해 보겠다고 선언했는데, 그것도 아주 멀리서 아무도 들어 주는 사람 없을 것 같은 조용한 산골 마을에서 혼자 선언했는데 그 선언에 호응하는 누군가가 혹시 내 발목에 먼저 살짝 금을 내고 그 다음 이 영화를 내게 보내준 건가? 그럴 리 없겠지만 참 신기했다.

 영화의 주인공은 떠돌이 벌목꾼이다. 이 숲 저 숲 돌아다니며 나무를 자르거나 철도를 깔기 위해 나무를 옮기는 일을 하는 사람. 기차를 타고 이동하는 일이 많고 집을 비우는 일도 많은 사람. 그리고 그 직업 때문에 겪게 되는 상실과 슬픔. 그리고 모든 걸 다 견디어낸 주인공이 죽기 전에 자신의 살아온 생애로 깨닫게 되는 이 세계의 진실. 그냥 저절로 알게 되는, 그게 자연의 힘이고 예술의 힘이지 싶은 것들. 덕분에 이제 나무 한 그루도 허투루 보지 않게 된 나는 나무와 기차에 대해, 그리고 그들이 함께 꾸었을 꿈에 대해 생각했다.

 그러고 보니 인상파 화가들만큼 나무를 좋아하는 이들이 없었던 것 같은데 그들의 그림 속에서 나무는 그저 초록색과 갈색으로 그려지는 풍경의 일부일 뿐이다. 정확히 그들은 나무가 아니라 나무에 부딪혀 산산조각 난 빛의 잔해들을 그렸다. 그 이상의 보이지 않는 본질을 그려보려 했던 세잔 같은 화가가 가장 존경받는 거장의 반열에 올랐지만 그런 세잔조차도 다른 화가들과 마찬가지로 빛이 닿지 않는 나무의 뿌리는 늘 생략했다.

 그런데 이 영화 <기차의 꿈>은 달랐다. 나무가 어둠 속에서 지하의 수로를 찾아 뿌리를 뻗는 고투는, 인간이 산을 깎고 강을 가로질러 철길을 놓는 고투와 닮아 있다는 걸 알게 했다.

 그뿐인가? 철길 아래 눕혀진 침목들은 한때 숲이었던 기억을 짓누르며 기차라는 현실의 무게를 받아내는 거다.

 시간의 방향에서 생각해보는 것도 재밌다. 살아생전 수직으로 살던 나무는 죽어 선로 아래 침목이 됨으로써 비로소 대지에 수평으로 눕는 건지 모른다. 한강 작가 스타일로 표현하면 죽은 나무가 살아 있는 기차의 속도를 견디고 있는 셈인데, 기차는 그 덕분에 이 나무의 사후(死後) 위를 빠르게 달릴 수 있다.

 그러한 기묘한 공생 관계 속에서 어쩌면 꿈이 이뤄질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든다. 그래, 그렇게 평생 한 지점에 박힌 채 이동을 꿈꿨을 나무의 갈망을, 인간이 만든 기차라는 ‘금속의 짐승’이 대신 이뤄주는 거다!

 숲에서 나무를 베는 벌목꾼 이야기가 어떻게 <기차의 꿈>이라는 소설이 되고, 다시 영화가 됐는지 생각해 보는 일은 내게 꼬리에 꼬리를 무는 의미심장한 사건이 되었다. 그것은 미술관에서 몇 시간씩 줄을 서서 마주한 인상파 화가의 그림보다 더 많은 이야기를 건넸다. 생각은 더 깊어졌고, 동심원을 그리며 퍼져 나가는 수면의 흐름 속에서 감동의 파동도 한층 깊어지는 느낌이었다.

 나는 이 모든 생각의 끝에서 요제프 보이스가 카셀의 거리마다 심어놓은 7000그루의 떡갈나무를 떠올린다. 그는 나무 곁에 차가운 현무암 비석을 나란히 세우고 그것을 ‘사회적 조각’이라 불렀다. 나무 한 그루를 심는 행위가 세상의 모든 단절된 것들을 다시 잇는 치유의 시작이 될 수 있다고 믿은 것이다.

 결국 예술이란, 보이지 않는 뿌리를 상상하는 일이며, 끊어진 선로를 마음속에서 잇는 작업인 동시에, 보통 사람들이 자기 삶의 공간 속에서 나무처럼 자라는 꿈들을 계속 지켜낼 수 있도록 누군가 제안하고 연결하고 실행하는 일이구나 생각한다. 이제 곧 이 답답한 석고 껍질을 벗어던지는 날이 올 텐데, 그날이 오면 일단 기차부터 타고 싶다. 기차 속에서 창밖으로 멀어지는 나무들을 보고 싶다. 그러다 어느 역에서 내리게 되겠지. 거기가 어디가 될지는 아직은 나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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