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6일 발생한 서울 개포동 구룡마을 화재 현장에서 한 주민이 치솟는 연기에 고개를 숙여 대피하고 있다. 정효진 기자
지난 16일 새벽 5시쯤, 서울 강남구 개포동 구룡마을에서 큰불이 났다. 빈집에서 발화된 불씨가 강풍을 타고 판잣집 수십 채를 순식간에 집어삼켰고 주민 180명이 집을 잃었다. 동트기 전 양재대로 차로를 통제하며 불길을 잡는 데만 6시간이 넘게 걸린 역대 최대 규모의 구룡마을 화재였다.
“이제 더 갈 곳이 없어. 왜 우리는 맨날 만신창이로 살아야 하나.” 잿더미가 된 동네를 보며 한 이주민은 검게 그을린 손으로 눈물을 연신 훔쳐냈다. 30년 넘게 꾸역꾸역 살아온 삶의 터전에서 그가 챙겨나온 건 낡고 작은 가방 하나와 비닐봉지가 전부였다. 그것이 개발·저항·철거의 아귀다툼 경계선에서 평생 쫓기며 살아온 이의 모든 걸 말해주고 있었다.
구룡마을은 1988년 서울 올림픽을 앞두고 도시미관정비사업으로 여기저기서 철거된 달동네 사람들이 구룡산 자락에 밀려들어 형성됐다. 수도권의 다른 판자촌과 달리 서울 강남의 노른자위 땅이라는 ‘경제적 가치’로 수십년간 개발 예정지 1순위에 꼽혔다. 주민들의 안전·생존이 뒷전으로 밀린 배경도 그것이었다. 곧 개발될 곳이란 이유로 보온용 솜(떡솜)·스티로폼과 낡은 전기시설이 뒤엉킨 판잣집 위험은 내내 방치됐고, 1~2년에 한 번꼴로 화재가 빈발한 게 구룡마을의 시린 역사다.
서울시와 SH공사는 공영개발을 통해 이곳을 자연친화 주거단지로 만들기로 하고, 지난해 8월 보상과 소유권 이전 절차를 마무리했다. 내년 착공되는 아파트 3887가구의 개발사업을 앞두고 순차적 철거 작업 중이었으니, 어디로도 떠나지 못한 이들의 마지막 주거 터에서 일어난 게 이번 불이다.
개발 예정지에서 개발 확정지가 된 구룡마을. 몇년 후면 강남의 빌딩 숲과 부촌을 가렸던 마지막 판자촌은 사라진다. 하지만 그 속엔 아직도 불날까 수해 날까 맘 졸이고, 어디 갈 곳 없어 눈물이 마를 새 없는 빈자들이 살고 있다. 막스 베버는 “시민 삶을 안전하게 지키지 못하는 곳은 도시가 아니다”라고 했다. 구룡마을은 불법·임시·무허가로 내몰린 이 시대 마지막 벼랑이다. ‘구룡마을의 불’은 국가도 도시공동체도 안 보이면 잊기 쉬운 ‘주거 약자의 눈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