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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쉬었음’이 절망인 사회라면

입력 2026.01.18 20:01

연애와 결혼은 포기하고(N포 세대), 문송(문과라서 죄송)하던 시절을 지나, 이제는 ‘그냥 쉬었다’는 청년들이 너무 많다. 휴식을 뜻하는 ‘쉬었음’이 한국에선 노력해도 취업의 문을 통과하기 어려운 청년 세대의 무기력을 내포하는 통계적 분류가 됐다.

국가데이터처의 고용동향을 보면, 지난해 비경제활동인구 1616만4000명 중 ‘쉬었음’ 인구는 255만5000명으로 15.8%를 차지한다. 통계 용어로서 ‘쉬었음’은 비경제활동인구 중 ‘그냥 쉬었다’고 답한 경우로, 구직활동을 했으나 일자리를 구하지 못한 실업자와도 다르다. 일할 능력은 있지만 쉬었다는 뜻이어서 노동 공급이 줄고 경제의 활력이 떨어진다는 신호로 해석된다.

최근 들어 쉬었음 인구가 사회적 문제로 인식되는 것은, 취업 시장에 진입해야 할 청년 세대의 쉬었음 인구가 빠르게 늘고 있기 때문이다. 지난해 쉬었음 인구 중 청년층(15∼29세)은 42만8000명, 30대는 30만9000명으로 20~30대 쉬었음 인구가 70만명을 넘어섰다. 지난해 고용률이 통계 작성 이후 역대 최대를 기록하고, 실업률도 안정적 수준을 유지하고 있는 것과 비교하면 전체적인 고용지표가 양호한 상황에서도, 유독 청년 세대의 ‘쉬었음’ 인구가 빠르게 늘고 있다고 볼 수 있는 셈이다.

청년들이 쉬었음을 택하거나, 혹은 당하고 있는 데에는 사회구조적 원인, 기술의 발달 등이 복합적으로 영향을 미치고 있다.

우선 청년들이 원하는 양질의 일자리가 적다. 청년층은 대부분 교육수준이 높아 일자리에 대한 눈높이가 높은 편인데 이들이 원하는 대기업, 공공기관 등 양질의 일자리는 줄어들고, 비정규직이나 서비스직 위주로 노동시장이 재편되는 흐름이 뚜렷하기 때문이다. 실제 지난해 경제활동인구조사에서 15~29세 쉬었음 인구가 가장 많이 지목한 원인은 ‘원하는 일자리를 찾기 어려워서’였다. 일자리 미스매치가 청년층이 스스로 노동시장에서 이탈하게 만드는 요인으로 작용하고 있는 것이다.

기업들의 채용 추세가 과거 대규모 공채 시스템에서 경력직 위주의 수시 채용으로 바뀌고 있는 점도 청년들의 취업을 더 어렵게 만드는 요인으로 꼽힌다. 기업들이 즉시 활용할 수 있는 경력 채용을 선호하면서, 경력이 없는 취업준비생들이 통과할 수 있는 문이 더 좁아지고 있다.

인공지능(AI)의 급속한 발전도 현재까지는 청년 취업에 더 큰 타격을 입히고 있는 것으로 분석된다. 한국은행은 지난해 지난 3년간 청년층에서는 일자리 감소의 대부분이 AI에 많이 노출된 업종이었던 반면, 50대 이상에서는 늘어난 일자리의 절반 이상이 AI에 많이 노출된 업종이라고 분석했다. AI 도입이 청년층 고용엔 불리하게, 시니어들에겐 유리하게 작동하고 있는 셈이다. 한은은 “AI가 경력이 적은 청년층이 주로 수행하는 정형화된 업무를 상대적으로 쉽게 대체하는 반면 경력에 기반한 암묵적인 지식, 사회적 기술이 요구되는 과업은 보완적으로 작동한 결과”라고 해석했다.

통계로 접하는 쉬었음 청년의 숫자엔, 그 숫자만큼 사연이 있을 것이다. 운이 좋아 부모님의 경제적 지원을 받는 캥거루족도 일부 있겠지만, 꼭 가고 싶었던 직장에 수차례 낙방하고 자포자기하듯 무력감에 빠진 대졸 백수가 많을 것이다. 더 좋은 일자리를 찾아 다니던 곳을 관뒀지만 녹록지 않은 현실에 난감한 30대 전 중소기업 직장인도 있다. 아르바이트를 전전하다 취업한 친구들과는 사이가 멀어지고 자기도 모르는 사이 고립 청년이 되어버린 이들도 적지 않을 것이다.

이들이 처한 현실은 사회경제적 독립의 출발선에도 서보지 못했다는 좌절, 노력해도 나를 받아주는 곳이 없다는 불안, 해봐야 소용이 없을 것이란 무력감, 당장 생계가 어려울 수 있다는 경제적 곤궁함 같은 것들이다. 청년들이 한국 사회를 기회가 닫힌 곳으로 받아들이게 하고 있다.

쉬었음 청년 문제를 해소하는 것은 통계적 의미를 넘어 중요하다. 경제의 활력을 회복하는 것은 물론, 한국 사회의 미래가 달린 일이다. 늦었지만 도전하면 기회를 얻을 수 있다는 사회적 신뢰를 회복하는 일이다. ‘쉬었음’이라는 단어에 갇혀 있는 청년들을 위해 정교한 지원을 마련하는 데에 국가적 역량을 집중해야 한다. ‘인생 첫 경력’을 쌓을 수 있는 프로그램을 지원하고, 중소기업이 청년들에게 매력적인 선택지가 될 수 있도록 일자리 생태계의 저변을 확대해야 한다.

이윤주 정책사회부장

이윤주 정책사회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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