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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은 이의 원망, 산 자들의 소망

입력 2026.01.18 20:08

수정 2026.01.18 20: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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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역 맞은편, 빌딩에 가린 동자동 쪽방촌에는 약 1000명의 주민이 산다. 언덕배기 지형 탓에 “여기서 구르면 서울역에 닿는다”는 농담이 돌 만큼, 이곳의 삶은 노숙과 크게 다르지 않다. 그만큼 주거환경이 열악하다는 뜻이다. 합판 한 장으로 나뉜 방 너머 이웃의 기침소리가 넘어오고, 열댓 명이 화장실 하나를 함께 쓰느라 복도에는 줄이 늘어선다. 좋든 싫든 서로 얽힌 채 하루를 산다. 그럼에도 이곳은 소중한 집이다.

2021년 2월5일, 정부는 동자동 쪽방촌 공공주택사업을 발표했다. 핵심은 쪽방 주민 재정착이었다. 개발이란 이름 아래 언제나 밀려났던 이들에게, 이웃과 공동체를 지킬 수 있단 기대가 생겼다. 하지만 기대는 오래가지 못했다. 골목마다 빨간 깃발이 꽂히고 “내 무덤 위에 공공임대 지어라”라는 현수막이 걸렸다. 공공주택사업을 반대하는 건물주들의 압박이었다. 쪽방 건물주의 80% 이상은 동자동 밖에 살며, 강남에 거주하는 부유층도 적지 않다. 정작 이곳에 살지도 않는 이들이 동네의 미래를 가로막았다.

30만원 남짓한 쪽방 월세는 해마다 오른다. 계약서에는 ‘기초생활수급비의 주거급여 인상분만큼 월세 인상에 동의한다’는 특약이 붙는다. 복지 예산이 건물주의 수입이 되는 동안, 건물은 더 낡아간다. 낡은 건물을 손보는 일은 늘 주민들의 몫이었다.

동자동 주민 김정호는 모두가 쓰는 집을 직접 고쳤다. 쪽방은 부르스타와 밥솥, 최소한의 살림만 놓아도 웅크려 잘 만큼 비좁았다. 이웃방에 선반을 달아주며 “조금이라도 다리 뻗고 자라”고 말했다. 그는 주민 자치 모임 ‘동자동사랑방’에서 ‘선반지기’로 불렸다. 동자동은 1978년부터 개발구역이었다. 2008년 재개발로 100여개의 쪽방이 사라졌고, 고시원에 살던 이들이 받은 이주비는 많아야 5만원이었다. 주거로 인정되지 않는다는 게 그 이유였다. 개발 이후 동자동에는 젠트리피케이션이 찾아왔다. 임대료가 뛰고, 쪽방은 게스트하우스로 바뀌었다. 주민 대신 관광객이 드나들었다. 사람들은 쪽방 주민들이 어디로 흩어졌는지 묻지 않았다. 김정호는 이런 개발의 관행을 당연하게 여기지 않았다.

“외롭고 쓸쓸하게 방에서 돌아가시는 분도 있어요. 시간이 지나 부패되면 벌레 같은 것도 기어나오고 합니다. 그러면 건물주들은 뭐라 하는 줄 압니까. 방 놔야 하니까 방 청소해달라 해요 우리한테. 우리는 청소해 줍니다. 그러면 방세 내래요. 우리는 방세 내줍니다.”

5년 동안 정부는 단 한 발짝도 나아가지 못했다. 국토교통부는 지구 지정을 미루면서까지, 막대한 개발이익을 노리는 소유주 측의 민간개발안을 검토했지만 공공임대주택 확보가 부족하다며 반려하는 일을 반복하고 있다. 그사이 시간은 잔인하도록 정직하게 흘렀다. 여름엔 더위 속에 하루가 멀다 하고 구급차가 왔다. 겨울엔 얼어붙은 계단에서 약한 뼈마디가 부러졌다. 5년간 152명의 주민이 세상을 떠났다. 주민들의 권리를 지키는 데 앞장섰던 김정호도 2023년 이곳을 떠났다.

1월26일, 주민들은 행진을 준비한다. 죽은 이들의 원망을 등에 지고, 살아 있는 이들의 소망을 가슴에 품은 채, 이웃 152명의 영정을 들고 청와대로 향한다. 집은 끝없는 이윤을 낳는 자산이 아니라, 누구나 존엄하게 살아갈 수 있는 보금자리여야 한다고 말하기 위해서다. 이 행진은 동자동만의 문제가 아니라, 우리가 어떤 도시에서 살 것인지를 묻는 질문이다.

이재임 빈곤사회연대 활동가

이재임 빈곤사회연대 활동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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