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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리’라는 감금 장치

입력 2026.01.18 20:10

수정 2026.01.18 20: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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딸네가 새로 이사한 집은 29층이다. 베란다가 없는 아파트여서 거실에서 창 아래를 내려다보면 현기증 때문에 나도 모르게 물러서고 만다. 어쩌면 내가 유난스러운지도 모르겠다. 시골 읍내의 아파트에 사는 동생네도 있고, 그게 아니라도 더 높이는 안 올라가 봤을까. 22층인 동생네 집에서 바깥을 보면 어릴 때부터 익숙한 들판인데 지금은 도로와 온갖 비닐하우스로 뒤덮여 있다. 그래서 그런지 노모를 모시고 사는 동생네 집에 가면 이상한 감정에 휩싸이곤 한다. 들판이 거의 대부분 논이었을 때의 이런저런 기억 때문에 들판을 배반하고 사는 삶은 도대체 무엇인 걸까, 마음이 복잡해지는 것이다. 들판에 아파트를 짓고 공장을 짓고 사는 게 정말 잘 사는 것일까?

딸네 집과 동생네 집은 지역은 다르지만 공통점이 있다. 내부가 이중삼중의 보안 장치들로 폐쇄돼 있다는 것과 외형은 주위의 수평을 죄다 빨아들여 올린 수직이라는 것. 이명박이 대통령 할 때 뉴타운 열풍이 수도권을 휩쓴 적이 있었다.

재개발 요건이 충족되지 않은 우리 동네 아파트들도 그 열풍에 휩싸였었는데 재개발이 아니라 리모델링을 추진하겠다고 일부 주민들이 나선 것이다. 어떻게 평수를 늘리겠다는 것인지 궁금해 그곳에 사는 지인에게 물었더니 ‘비어 있는’ 화단 쪽으로 공간을 넓히는 방식이라는 말을 듣고 아연해서 내가 한마디 한 적이 있다. 집이라는 것은 내부 공간만이 아니라 바깥의 공터와 풍경, 그리고 길도 포함하는 것이라고.

딸네가 새로 이사한 집을 둘러보면서 새삼 느낀 것은, 주위의 상가나 가게, 시장이 없다는 사실이다. 아파트 따라 신축된 작은 상가에 약간의 가게가 들어서는 정도라고 하는데, 그것을 통해 생활에 필요한 물품을 조달하는 것은 당연히 불가능하다.

아파트 공간과 ‘온라인 쇼핑’ 배달

그렇다면 어떻게 하는 것일까? 그것은 온라인 쇼핑몰을 통한 배달이다. 이제 와서 이런 상황에 대해 호들갑을 떤다는 게 어딘가 어색하지만, 이번 쿠팡 사태를 겪으면서 문제의 본질은 쿠팡 같은 탐욕스러운 온라인 쇼핑몰 기업이 아니라 우리가 살고 있는 생활 공간 자체라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즉 이제 우리는 온라인 쇼핑몰 업체나 그것들에 연결해 주는 플랫폼 기업들에 의존하지 않으면 살 수 없는 가두리에 갇혀 사는 존재가 되었다는 것이다.

집의 의미와 가치가 평당 가격으로 환원되는 부동산이 된 것은 오랜 일이지만, 그래도 지금 같은 빅테크 시대 이전에는 주위 풍경과 교통 여건, 생필품을 조달할 상권이나 시장의 여부도 살폈던 때가 있었음을 생각하면 지금 아파트의 위치와 구조, 문화 등등은 확실히 상전벽해다. 자기 아파트 단지를 외부인들이 통과하지 못하게 한다거나 현관문부터 비밀번호를 요구하는 문화나 구조는 아파트 같은 공동주택이 거주 공간이 아니라 건설사의 브랜드 상품으로 전락한 현상과 겹친다. 관점을 달리해 보면 그것들은 거주자를 바깥으로 자유롭게 나오지 못하게 하는 잠금장치일 수도 있다.

바깥과 단절된 내부가 평안하다는 느낌은 아파트 건설사가 집을 브랜드화하면서 주입한 욕망이면서, 동시에 이웃과의 유대와 연결은 ‘불편’이라는 환영을 갖도록 한 공간 배치의 결과다. (자본주의 상품은 관계의 은폐와 단절의 원인이자 결과다!) 이러한 공간 구조가 서울에서 시작돼 전국 곳곳으로 복사된 것도 좀 된 일이다. 이제는 시골 읍내 같은 데서도 공동화(空洞化) 현상이 뚜렷하다. 밀집된 아파트 환경이 쿠팡이 우리의 실생활을 지배하게 된 조건이 되었다는 분석은 그래서 일리가 있다.

하지만 나아가서 땅에서 분리된 채 허공에서 누리는 희한한 편리에 대해서도 말할 필요가 있다. 다르게 말하면, 이중삼중의 잠금장치를 지나 땅으로 내려와야 하는 불편을 창출하고 나서 온라인 쇼핑몰 기업들이 제공하는 배달의 편리가 판매되고 있는 사실에 대해서 말이다.

자본 ‘혁신’이 낳은 일상의 노예화

조금 높은 곳에서 수도권 도심지를 내려다보면 어떠한 공간적 맥락도 없이 불쑥불쑥 솟은 고층 아파트들이 흔하게 보이는데, 이는 인근 주택가의 인구를 빨아들이는 역할도 자연스럽게 한다. 서울에서도 아파트 단지가 아니면 초등학교 입학생 수가 줄어든다는 사실은 이러한 자본의 공간 재구축 때문이다. 수도권에서 시작된 공간의 기형화는 대한민국을 온라인 쇼핑몰 중독 사회로 만든 중요한 요소임에 틀림없어 보인다.

정부가 무례하고 탐욕스러운 쿠팡을 제압하기 위해 다방면에서 압박을 가하는 것으로 알고 있다. 알려진 쿠팡의 행태에 대해 당연히 엄중한 책임을 물어야 하지만 문제의 근원이 쿠팡이라는 기업 하나에만 있는 것은 아니라는 점도 강조해둘 필요가 있다. 골목 상권에서 대형마트로, 대형마트에서 온라인 쇼핑몰로 폭력적인 변화를 강제한, 민주적으로 통제되지 않은 자본의 ‘혁신’은 우리의 일상을 노예 상황으로 내몰았던 것이다.

황규관 시인

황규관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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