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린란드는 우리를 위한 곳” 17일(현지시간) 그린란드 수도 누크의 미국 영사관 앞에서 열린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그린란드 합병 주장에 항의하는 시위에서 한 시민이 ‘그린란드는 그린란드인을 위한 것’이란 문구가 적힌 플래카드를 들고 있다. 로이터연합뉴스
덴마크·노르웨이·스웨덴·프랑스·영국·네덜란드 등 나토 8개국 ‘직격’
마크롱 “절대 용납 못해…유럽은 단합해 조율된 방식으로 대응할 것”
EU 대사들, 긴급회의…덴마크·그린란드선 ‘트럼프 규탄 시위’ 이어져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덴마크령 그린란드 병합 구상을 견제하고 나선 유럽 8개국을 상대로 ‘관세 부과’ 카드를 꺼내들면서 그린란드 사태가 미·유럽 간 무역전쟁으로 번지고 있다. 유럽 국가들이 맞대응을 예고하면서 북대서양조약기구(나토)를 주축으로 한 대서양 동맹의 균열이 본격화하는 모습이다.
트럼프 대통령은 17일(현지시간) SNS 트루스소셜에서 “덴마크, 노르웨이, 스웨덴, 프랑스, 독일, 영국, 네덜란드, 핀란드가 미국으로 수출하는 모든 상품에 내달 1일부터 10% 관세가 부과되며, 6월1일부터는 25%로 인상된다”고 밝혔다. 트럼프 대통령이 거론한 8개국은 미국이 그린란드를 매입하겠다며 군사 행동 가능성까지 거론하자, 그린란드에 병력을 파견했거나 파견 의사를 밝힌 나라들이다.
트럼프 대통령은 이들 8개국이 “명확한 목적도 없이 그린란드로 향했다”며 “이런 위험한 게임을 벌이는 나라들은 감당할 수 없고 지속 불가능한 수준의 위험을 초래했다”고 관세 부과 이유를 들었다. 그러면서 “관세 조치는 그린란드의 완전하고 총체적인 매입에 관한 합의가 이뤄질 때까지 유지될 것”이라고 했다. 유럽 국가들은 그린란드 병력 파견이 ‘북극 안보 강화’ 차원이라고 강조해왔으나, 트럼프 대통령은 미국의 군사행동 가능성에 대비하는 움직임으로 규정하고 압박 수위를 높인 것으로 풀이된다.
트럼프 대통령이 추가 관세를 꺼내들면서 미국과 유럽이 앞서 합의한 무역협정이 무효가 될 수 있다는 관측도 나온다. 미국은 지난해 유럽연합(EU), 영국과 각각 무역협정을 맺고 EU산 수입품에 15%, 영국산 수입품에 10% 관세를 부과하고 있다. 트럼프 대통령이 이번에 언급한 관세는 여기에 추가 인상하겠다는 것으로 풀이된다.
벨기에 싱크탱크 브뤼겔의 야곱 펑크 키르케고르 선임 연구원은 “이는 (지난해 미국·EU가 합의한) 턴베리 무역협정의 종식을 뜻하며 본격적인 무역전쟁으로 이어질 것”이라면서 “무역 전쟁을 벌이느냐, 실제 전쟁에 돌입하느냐의 문제”라고 뉴욕타임스에 말했다. 유럽 의회는 오는 26일 예정된 턴베리 협정의 비준 절차를 미루겠다고 밝혔다.
그동안 대응 수위를 조절해오던 유럽 각국 정상들도 이번 관세 위협에는 즉각 반발했다. 에마뉘엘 마크롱 프랑스 대통령은 “관세 위협은 절대 용납할 수 없으며 유럽은 단합해 조율된 방식으로 대응할 것”이라고 밝혔다. 우르줄라 폰데어라이엔 EU 집행위원장은 “대서양 관계를 훼손하고 위험한 악순환을 초래할 것”이라며 “유럽은 단결하고 협력해 주권 수호에 전념할 것”이라고 말했다.
EU 대사들은 18일 벨기에 브뤼셀에서 긴급회의를 열고 공동 대응 방안 등을 논의하기로 했다. 일각에선 유럽이 미국 테크기업 규제 강화 등 강력한 조치를 고민할 수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다만 유럽의 나토 동맹국들은 집단방위 차원에서 여전히 미국이 필요한 상황인 만큼, 적극적인 반격보다는 대화를 통한 해법을 모색할 가능성에 무게가 실린다.
이날 그린란드와 덴마크 곳곳에선 트럼프 대통령의 그린란드 병합 구상을 규탄하는 시위가 이어졌다. 그린란드 수도 누크에선 수천명이 “양키 고 홈” 등이 적힌 팻말을 들고 “그린란드는 판매 대상이 아니다” 등 구호를 외치며 미 영사관을 향해 행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