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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란죄의 탈식민

입력 2026.01.21 19:39

수정 2026.01.21 20: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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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해 벽두부터 미국 도널드 트럼프 정부의 베네수엘라 침공으로 놀란 가슴을 진정시키기 어려웠다. 이렇게 되고 보니 그간 숱한 비판을 받았던, 2차 세계대전 이후 자유주의 세계질서가 갖고 있던 의의를 생각해보게 된다. 그것이 ‘탈식민’ 국가의 주권을 인정한 질서였다는 점은 특히나 우리에게는 매우 중요한 사실이다. 생각해보면 지난 13일 윤석열, 김용현, 노상원 등에 대한 특검의 내란죄 구형도 바로 그 탈식민 민주주의의 산물이기 때문이다.

근대 이후 한국사에서 ‘내란죄’가 성문화된 것은 1905년의 <형법대전>에서였다. 그러나 일제가 한국을 병합하며 그것은 곧 일본 형법의 내란죄로 대체되었다. 1912년 ‘조선형사령’에 의해 1907년 제정된 일본의 형법이 조선에도 의용되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제정 일본 형법 제77조는 “정부를 전복 또는 방토를 참절하거나 기타 조헌(朝憲)을 문란하게 하는 목적으로 폭동을 일으킨 자”를 내란죄로 규정했다. 복사-붙여넣기에 가까운 조문 모방 같지만 사실, ‘조헌문란’과 ‘국헌문란’ 간에는 현격한 차이가 있다.

‘조헌문란’이라는 개념은 국가의 근본질서인 천황의 통치를 어지럽힌다는 뜻이었다. 1880년 구형법의 내란죄에서 도입된 이 개념은 천황을 주권자로 삼은 제국헌법 체제에서 강화되었을 뿐만 아니라 ‘국체 변혁’과 같은 개념으로도 확장됐다. 그러므로 내란이란 천황제 통치질서를 거부하는 것을 목적하는 행위였다. 비록 보안법이나 치안유지법 같은 더 ‘편리한’ 법이 있었기에 조선의 독립운동에 내란죄가 적용되는 경우는 거의 없었지만, 여하튼 제국의 신민들은 주권자인 천황의 대권에 종속된 존재이자 내란의 잠재적 주체였다.

그러므로 해방 이후 제정된 1953년 형법이 ‘조헌문란’을 ‘국헌문란’으로 바꾸었을 때, 내란의 구성요소는 본질적으로 달라질 수밖에 없었다. 내란죄가 수호하는 대상은 이제 천황제 통치질서가 아니라 탈식민 국가의 주권자가 만들어낸 헌법적 질서가 되었다. 더군다나 이전 해에 발생했던, 대한민국 역사상 첫 번째 친위쿠데타였던 부산정치파동은 역으로 ‘국헌문란’의 개념을 구체화하게 만들었다. 1951년 4월 정부가 제출한 형법 초안에는 없었던, 국헌문란 개념에 대한 부연조항이, 부산정치파동 이후 국회 수정 과정에서 제91조로 ‘국헌문란이란 위헌적, 불법적 방법으로 헌법과 법률의 기능을 소멸시키거나 헌법기관의 기능행사를 강압으로 불가능하게 하는 것’이란 명확한 문구가 삽입되었기 때문이다. 정부 법전편찬위원회의 위원으로 형법 초안 기초작업에 관여한 후, 제2대 국회에 들어가 그 수정작업에 참여한 엄상섭은 후일 “민주세력의 좌절을 방지”하고 “그 육성”을 기하기 위해 부연조항을 넣었다고 회고한 바 있다.

물론 그 후 오랫동안 내란죄는 민주화운동을 탄압하기 위해 활용됐다. 그러나 5·18항쟁의 진상규명과 가해자 처벌을 촉구하는 끈질기고 거대한 운동은 마침내 1997년 신군부 인사들에 대한 대법원의 내란죄 유죄 판결을 이끌어냈다. 국헌은 곧 헌법질서이다. 판결에서 대법원은 이렇게 명시했다. 이것으로 일본 형법이 조선에 의용된 지 약 85년 만에, 내란의 잠재적 주체가 형식적이면서도 실질적으로 제국 신민에서 국민 주권을 파괴하는 세력으로 역전됐다. 이것이야말로 탈식민 민주주의가 낳은 놀라운 성과라 할 수 있다. 당장 12·3 내란 다음날부터 전국의 광장에 “내란죄 윤석열 퇴진”을 외치며 모여든 시민들이야말로 그 위대한 성과를 마음 깊이 새긴 주권자들이었다.

이제 내란죄 선고를 다음달로 앞두고 있다. 여기저기서 탈식민 주권이 흔들리고 있다. 그러므로 판결은 한국 민주주의뿐 아니라 세계사적인 의미를 지닐 것이다. 광장의 시민들을 다시 한번 주권자로 선언하자. 주권자의 이름으로 준엄한 판결을 내리자.

권혁은 서울대 국제학연구소 연구교수

권혁은 서울대 국제학연구소 연구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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