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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년의 삶 짓밟은 국가폭력…‘간첩 누명’ 40년 만에 벗었다

입력 2026.01.22 21:11

수정 2026.01.22 21: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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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두환 안기부 ‘역용공작’ 피해자 문영석씨 재심서 무죄

22일 국가보안법 위반 혐의 재심 재판에서 무죄를 선고받은 뒤 인터뷰하고 있는 문영석씨.

22일 국가보안법 위반 혐의 재심 재판에서 무죄를 선고받은 뒤 인터뷰하고 있는 문영석씨.

1985년 8월 일본 유학 중 방학을 맞아 고국 땅을 밟았던 20대 청년 문영석씨는 끝내 김해공항 입국장 문을 나서지 못했다. 그를 기다린 건 가족의 품이 아닌 전두환 정권 안기부의 차가운 지하실이었다. 10여일간 이어진 불법 감금과 협박 끝에 평범한 유학생은 간첩이 됐다.

국가가 짓밟은 삶을 위로받는 데는 꼬박 40년이 걸렸다. 백발이 돼 다시 법정에 선 그에게 재판부는 “그동안 재판을 받으며 힘이 많이 드셨을 텐데, 오늘 판결로 조금은 해소가 됐으면 좋겠다”며 위로를 건넸다.

광주고법 제1형사부(재판장 김진환)는 22일 열린 문씨의 국가보안법 위반 혐의 재심 선고 공판에서 무죄를 선고했다.

일본서 파견교사 근무한 아버지
정보원으로 포섭하려다 실패하자
방학 중 귀국한 아들 불법 체포해
협박·가혹행위로 허위자백 강요

“간첩 낙인에 숨죽여 지내는 이들
세상 밖으로 나와 명예회복하길”

재판부는 “원심이 제시한 증거들을 모두 더하더라도 공소사실을 증명하기에 부족하고, 달리 이를 인정할 증거도 없다”며 “공소사실을 유죄로 본 원심 판결은 사실 오인과 법리 오해가 있어 위법하다”고 판시했다.

문씨는 전두환 정권 안기부가 기획한 ‘역용공작’의 희생양이었다. 안기부는 1970년대 문교부(현 교육부) 파견 교사로 일본 오사카 금강학원에서 근무했던 부친 고 문철태씨를 정보원으로 포섭하려다 실패하자 방학을 맞아 귀국한 유학생 아들을 인질 삼아 일가족을 간첩으로 조작했다. 안기부는 부친에 대해선 일본 근무 당시 재일본조선인총연합회(조총련)계 학교 교장을 만난 것을 빌미로 ‘반국가단체 구성원 회합’으로 조작했다. 당시 법원은 부친에게 무기징역을, 문씨에게 징역 7년을 선고했다.

부친은 무기징역을 확정받고 13년을 복역한 뒤 1998년 가석방됐으며, 후유증을 겪다 2018년 별세했다. 문씨는 5년가량 복역하다 가석방으로 1991년 출소했다. 간첩이라는 낙인 탓에 취업이 막혀 2000년 다시 일본으로 떠나야 했다. 문씨는 일본에 거주하면서도 귀화를 거부하고 현재까지 대한민국 국적을 유지하고 있다.

진실화해를위한과거사정리위원회는 2024년 2월 이 사건을 “국가에 의한 불법 구금, 가혹행위 등 위법한 공권력 행사로 발생한 중대한 인권침해”로 규정하고, 국가의 사과와 재심을 권고했다. 법원은 지난해 7월17일 문씨가 제기한 재심 개시를 결정했다.

쟁점은 당시 수사당국의 ‘불법 체포·감금’ 인정 여부였다. 문씨는 1985년 8월14일 김해공항에서 연행됐으나 구속영장은 23일에야 발부됐다. 문씨는 잠 안 재우기 등 가혹행위와 “아버지를 죽이겠다”는 협박 등으로 허위 자백을 강요받았다고 주장했다.

검찰은 재심에서 문씨가 검거 후 석방됐다가 다시 구속됐을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는 취지로 항변했다. 재판부는 “간첩 혐의자를 영장 없이 10일간 풀어줬다는 주장은 경험칙상 납득하기 어렵다”며 받아들이지 않았다. 불법 구금 상태에서 작성된 피의자 신문조서 등의 증거 능력도 모두 배척했다.

무죄가 선고되자 줄곧 굳어 있던 문씨의 얼굴에 환한 미소가 번졌다. 법정을 나선 문씨는 취재진에게 “사필귀정”이라고 말했다. 이어 그는 “이 네 글자 속에는 저뿐만 아니라 모든 국가보안법 피해자들의 절규와 고통이 녹아 있다”며 “아직도 ‘간첩’이라는 낙인이 두려워 숨죽여 지내는 다른 피해자들도, 오늘을 계기로 용기를 내 세상 밖으로 나와 명예를 회복하길 바란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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