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북도의회서 제도 개선 토론회 개최
주민들 “갈등 외주화 장치로 변질”
“에너지 식민지화 방식 폐기해야”
‘국가기간전력망 입지선정위원회 제도 개선 정책토론회’가 열린 23일 전북도의회에서 한 참석자가 현행 입지선정위원회의 구조적 모순을 지적하며 발언하고 있다. 전북환경운동연합 제공
송전탑 건설의 출발점인 ‘입지선정위원회’가 사업자인 한국전력공사 주도로 운영되면서 주민 수용성을 오히려 떨어뜨리고 갈등을 고착화하고 있다는 비판이 제기됐다. 국가기간 전력망 입지 선정과 회의록 작성 등 핵심 절차가 민간 용역업체에 위탁돼 책임성과 투명성이 심각하게 훼손됐다는 지적도 나왔다.
송전탑건설백지화전북행동과 전북환경운동연합 등은 23일 전북도의회에서 ‘국가기간전력망 입지선정위원회 민주적 운영 및 투명성 강화를 위한 제도 개선 정책토론회’를 열고 현행 입지선정 제도의 전면 개편을 촉구했다.
이재혁 한국환경연구원 연구위원은 현행 제도가 ‘심의 대상자’인 사업자 한전이 ‘절차 관리자’ 역할까지 겸하는 구조적 모순을 안고 있다고 지적했다. 한전 내규에 따라 입지선정위원회가 운영되면서 회의 소집과 안건 설정, 자료 제공 범위 등을 사실상 독점해 이해 상충이 상시화돼 있다는 것이다.
하승수 공익법률센터 농본 대표는 문제의 본질을 더욱 직접적으로 짚었다. 하 대표는 “한전 조달시스템을 확인한 결과 수십억원 규모의 ‘입지선정 용역’을 통해 민간업체가 위원회 구성과 운영, 경과지 선정까지 도맡고 있다”며 “영리 목적의 민간업체가 작성한 회의록이 부실하거나 허위일 경우에도 공문서위조 등 법적 책임을 묻기 어려운 구조”라고 비판했다.
현장에 참석한 주민들은 입지선정위원회가 송전탑 노선을 둘러싼 갈등의 책임을 지자체와 마을 주민들에게 떠넘기는 ‘갈등 외주화 장치’로 변질했다고 입을 모았다.
조경희 송전탑건설백지화 전북대책위 공동상임대표는 “주민을 ‘2등 국민’ 취급하며 지역을 수도권의 ‘에너지 식민지’로 전락시키는 지금의 방식은 폐기돼야 한다”며 “용인 반도체 국가산단에 대한 전면 재검토와 첨단산업의 지역 재배치 논의가 완료될 때까지 모든 입지 선정 절차를 중단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23일 전북 전주시 전북특별자치도의회 의원총회의실에서 열린 ‘국가기간전력망 입지선정위원회 제도 개선 정책토론회’에서 참석자들이 현행 입지선정 방식의 전면 개편을 촉구하는 자료집을 들어 보이고 있다. 전북환경운동연합 제공
국회 기후환경에너지노동위원장인 안호영 더불어민주당 의원도 “전기는 전북에서 생산되지만 혜택은 수도권이 독점하는 불평등한 구조를 더는 방치해서는 안 된다”며 “밀실 행정을 멈추고 계획 단계부터 주민과 지자체가 주체가 되는 ‘참여형 행정’ 모델로 전환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토론회에서는 기존의 복잡하고 변별력이 낮은 AHP(계층화 분석법) 설문 방식 대신, 독일·영국 등 선진국 사례를 참고한 ‘공간계획 기반 참여형 모델’이 대안으로 제시됐다. GIS(지리정보시스템) 데이터를 활용해 주민들이 기존 인프라 활용 여부나 주거지 이격 거리 등을 고려한 경과지를 직접 제안하자는 취지다.
참석자들은 “무한한 공급 확대가 아니라 과밀된 전력을 어떻게 분산할 것인지가 핵심”이라며 전력 수요가 많은 기업이 재생에너지가 풍부한 지역으로 이전하는 ‘에너지 지산지소’가 송전탑 갈등의 근본적 해법이라는 데 뜻을 모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