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은이 역대 최고가를 경신 중인 지난 20일 서울 종로구 한국금거래소 앞을 한 시민이 지나가고 있다. 한수빈 기자
지난 22일 코스피 지수가 마침내 ‘꿈의 지수’인 5000포인트를 장중 돌파하며 새 역사를 썼습니다. 매일 신고가를 쓰는 코스피, 삼성전자, 현대차에 가려져있지만 국내 증시 못지 않게 오르는 자산이 ‘금’입니다.
국제 금값은 이달에만 14% 넘게 오르면서 22일(현지시간) 트라이온스당 4900달러를 돌파했습니다. 금 역시 역사적인 5000달러를 코앞에 두고 있죠. 국내 금값 역시 최근 역대 최고가를 경신하며 한 돈(3.75g)당 88만원 수준까지 올랐습니다. 은은 올해 37% 넘게 오르면서 99달러까지 오른 상태입니다.
국제 금값이 해외 투자은행(IB)이 지난해 예상한 수준을 단박에 넘어서면서 골드만삭스 등은 금값의 목표수준을 높이고 있습니다.
금값이 상승하는 배경엔 예상하기 어려운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행보, 화폐가치 하락을 피해 자산을 보유하려는 투자자와 중앙은행의 매수세가 깔려있습니다. 최근 흐름을 짚어봤습니다.
위험자산보다 나은 안전자산 금? 올해 14%, 1년간 80% 폭등
23일(현지시간) 블룸버그에 따르면 국제 금 현물 가격은 온스당 4950선을 넘어서며 역대 최고가를 경신했습니다.
올해 코스피가 초강세를 보이며 매 거래일마다 백단위 숫자가 바뀌었습니다. 최근 금값도 마찬가지입니다. 지난 16일 4500달러선에 머물던 금은 19일 4600달러, 20일 4700달러, 21일 4800달러, 22일 4900달러를 넘기며 4거래일 연속 앞자리를 바꾸는 강세를 이어갔습니다.
금은 올해 1월 20여일간 14.6% 가량 오른 겁니다. 그간 많이 올랐다는 필라델피아 반도체지수(13.7%)는 물론 세계 주요 주가지수를 압도하는 수익률입니다. 18% 오른 코스피를 제외하곤 금 투자가 수익률 측면에선 상당히 높았던 셈입니다. 지난 1년전과 비교해도 금값은 79.8%나 상승했습니다.
국내 금값도 23일엔 한국거래소에서 g당 2% 23만4100원에 마감해 역대 최고가를 경신했습니다. 금 한 돈당 87만7800원에 달합니다. 민간금거래소에선 이미 금 매입가가 한 돈당 100만원을 웃돕니다.
지난 10월엔 금투자 열풍이 불면서 ‘김치프리미엄(국내가격-국제가격)’이 두자릿 수에 달할 정도로 가격에 거품이 꼈었지만, 이번엔 다릅니다.
현재 김치프리미엄은 1% 남짓입니다. 당시 일일 거래대금이 5000억원을 웃돌고 개인이 매일 700억~1000억원 순매수에 나섰지만 최근엔 가격이 크게 뛰는데도 거래대금과 순매수액 모두 반토막인 상태입니다. 이번엔 국내 가격도 김치프리미엄이 아니라 정말로 비싸서 오른 것이죠.
그래픽 : 생성형AI ‘챗GPT’
금, 왜 올랐을까
지난해 연말 스탠다드차타드(4750달러), 도이체방크(4700달러), UBS(4500달러) 등 해외 투자은행(IB)는 올해 금값으로 대체로 4900달러 이하를 전망해왔습니다. IB의 전망보다 금값이 더 가파르게 오른 배경엔 우선 트럼프의 정책이 있었습니다.
안전자산인 특성상 지정학적 위기가 커지면 강세를 보이는데, 연초 미국이 베네수엘라 공습에 나서고 그린란드에 대해 무력 병합까지 시사하면서 금값이 크게 뛰기 시작했습니다. 최근 트럼프 대통령이 제롬 파월 연방준비제도(연준) 의장을 압박하는 등 중앙은행의 독립성이 위협받는 것도 금값을 끌어올리는 요인이 되고 있습니다.
3일(현지시간) 운동복 차림으로 미군에 생포돼 이송되고 있는 니콜라스 마두로 베네수엘라 대통령. 양손에 수갑이 채워져 있고, 눈에는 안대가 씌워져 있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 트루스소셜 계정 갈무리
가치가 보존되는 금은 돈(통화가치)의 가치가 하락하거나 통화에 대한 신뢰가 무너질때 강세를 보입니다. 미국, 일본, 유럽, 한국 등 세계적으로 정부 부채가 늘어나면서 돈에 대한 신뢰가 떨어지자 투자자들이 금과 은으로 몰려들었죠. 특히, 트럼프 정부의 종잡을 수 없는 행보에 달러가 약세를 보이고 트럼프 대통령이 지명할 차기 미국 연준 의장도 금리인하에 적극적일 것으로 예상되면서 금의 수요가 더 커지고 있습니다.
대표적인 큰 손인 각국 중앙은행도 이를 고려해 금을 계속 사들이고 있죠. 최근 중국 중앙은행인 인민은행은 지난해 12월까지 14개월 연속 금을 매입했다고 밝혔습니다. 이 기간 총 42톤을 매입했다고 밝혔죠. 귀금속 투자를 선호하는 중국 투자자들도 금과 은을 대거 사들이고 있습니다. 상장지수펀드(ETF)로도 금 투자 수요가 이어지고 있습니다.
금에 대한 눈높이 높이는 해외IB
금이 급등하면서 해외IB도 금 전망치를 높여잡고 있습니다. 골드만삭스는 21일 올해 금 전망치를 4900달러에서 10% 가량 높인 5400달러로 수정했습니다.
골드만삭스는 보고서에서 “전 세계적인 정책 불확실성이 지속되면서 투자자들이 투자 포트폴리오를 다각화할 가능성이 크기 때문에 금 가격 상승 가능성이 상당히 높다”고 밝혔습니다. 중앙은행의 금 매입량도 올해 월 평균 60톤에 달할 것으로 예상해 중앙은행도 계속 금을 사들일 것이라고 전망했습니다. 올해 연준이 두 차례에 걸쳐 기준금리를 총 0.5%포인트 낮출 것이란 전망도 이유 중 하나로 꼽았습니다.
중국 우한에서 사람들이 금 모형을 들고 사진을 찍고 있다. 게티이미지
세계 최대 금시장인 인도와 중국에서 장신구 목적으로 금을 사려는 수요가 커지면서 금값의 강세가 유지될 수 있다는 전망도 나옵니다. 블룸버그통신은 “금융시장에서 금 투자에 대한 관심이 줄어들기 시작하면 장신구 구매자들이 저렴한 가격에 금을 사들이면서 가격 하락을 막는 역할을 한다”고 전했습니다.
그렇지만 낙관적인 전망만 있는 것은 아닙니다. 골드만삭스도 세계적인 재정정책과 통화정책의 흐름이 바뀌면 가격이 하락할 수 있다고 밝혔죠. 미 연준의 금리동결 가능성이 커진 지난해 11월에도 금값은 부진한 흐름을 보였습니다.
이미 금값이 과열 양상인 만큼 하락할 수 있다는 전망도 있습니다. 파이낸셜타임스에 따르면 미국 금융 서비스회사 스톤엑스(StoneX)는 이미 금 시장이 ‘포화상태’라며 올해 금값 전망치로 3500달러를 제시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