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생 운동과 담을 쌓았던 사람과, 과거 운동을 했다가 중단해서 도로 평범한 몸이 된 사람이 있다고 치자. 현재 둘의 체력과 근육량이 같고, 같은 운동과 식사를 한다면 누구의 근육과 체력이 더 빨리 자랄까?
비슷한 사례를 주변에서 보았거나 이야기를 들었을지도 모르겠지만 십중팔구 이전에 운동했던 사람이 압도적으로 빠르게 체력과 근육이 좋아진다. 운동을 하지 않은 지 수년, 수십년이 지났어도 그렇다. 이를 가리켜 근육이 이전 상태를 기억한다는 의미로 ‘머슬 메모리’라 일컫는다.
흔히 통용되는 머슬 메모리에는 두 가지 의미가 있다. 첫 번째는 이전에 많이 해본 동작은 오랜 시간이 지나도 수행할 수 있다는 의미로, ‘몸이 기억한다’고 표현하기도 한다. 운동선수 출신은 나이가 들어도 옛 동작이 반사적으로 나오고, 자전거 타는 법은 한 번 익히면 죽을 때까지 몸이 기억한다. 사실 이건 근육이 아니고 뇌의 무의식 영역에 기록되는 것이라 엄밀히 말해 머슬 메모리는 아니다. 그런데 메커니즘이 무엇이든 운동 능력을 빠르게 되찾는 것에는 이 영향도 매우 크다.
두 번째는 한 번 발달했던 근육은 운동을 재개하면 빠르게 이전처럼 돌아간다는, 진정한 의미의 머슬 메모리다. 여기서 ‘이전처럼 돌아간다’는 건 여러 의미다. 대표적인 건 근육의 크기인데, 운동을 통해 커진 근육은 장기간 운동을 쉬면 줄어드는 게 정상이다. 그런데 운동으로 한 번 커진 근육은 이전과는 근본적으로 달라진다.
근육은 근섬유(근세포)로 구성되어 있고, 당연히 세포핵이 있다. 학교에서 배운 세포 그림에는 동그랗고 예쁜 핵 하나가 딱 있지만 근섬유는 핵이 여러 개다. 이 핵들은 근육이 손상을 입거나 커질 때 주변부의 단백질 합성을 총괄한다. 근육이 커지면서 핵 하나가 감당해야 하는 영역이 넓어지면 위성세포라는 것이 핵으로 변신해 늘어난 영역을 맡게 된다. 그 상태로 몇달, 몇년을 지속해 핵이 완전히 정착하면 운동을 쉬어 근육이 줄어도 핵의 대부분은 그대로 남는다. 즉 운동을 하지 않았던 사람보다 훨씬 밀도 높은 세포핵을 근육 내에 보유하게 된다.
이 사람이 운동을 다시 한다면? 많은 핵이 동시에 단백질을 찍어내니 당연히 근육도 빨리 자란다. 은퇴에서 복귀한 선수들의 근육이 놀랄 만큼 빨리 커지는 것도 그 덕분이다. 깁스로 가늘어졌던 종아리도 일단 깁스를 풀면 동네 산책만으로도 눈 깜짝할 새 이전 상태로 돌아간다. 근육을 기르는 불법 약물을 사용했던 사람들을 영구 제명해야 한다는 주장의 근거 중 하나이기도 하다.
머슬 메모리가 근육 크기만 말하는 건 아니다. 운동을 통해 근육이 에너지를 내는 능력도 점점 좋아진다. 이 과정은 세포 안의 발전소인 ‘미토콘드리아’라는 소기관과 세포핵에 유전자 형태로 기록되는 ‘후생유전’이 작용한다. 탄수화물과 지방을 잘 태우고 에너지를 잘 내는 몸이 되면 그게 유전자에 기록되고, 그 상태는 지속된다. 그래서 이전에 마라톤 풀코스를 거뜬히 달렸던 사람은 몇년간 달리기를 중단해 체력이 일반인 수준으로 떨어졌어도 다시 마라톤을 시작하면 훨씬 빠르게 마라토너의 체력으로 돌아갈 수 있다. 운동을 강하게 할 수 있으니 근육이 커지는 데도 가속이 붙는다.
머슬 메모리는 노년 건강 측면에서도 주목을 받고 있다. 과거 한 번이라도 근육과 체력을 길렀던 경험이 노년에 쉽게 근육과 체력을 유지할 수 있는 보험이 되기 때문이다. 운동을 ‘빡세게’ 했었고, 한때라도 좋은 몸을 만들었다면 그 자체가 평생 재산이다. 당신의 몸은 죽을 때까지 그 시절을 기억할 테니 말이다.
수피|운동 칼럼니스트 <헬스의 정석> 시리즈 저자
<수피|운동 칼럼니스트 <헬스의 정석> 시리즈 저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