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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찰, 조직보다 자존심을 걸어라

입력 2026.01.25 20:00

경찰과 검찰은 모두 범죄를 수사하는 국가기관이다. 그러나 한국 사회에서 경찰과 검찰의 위상, 대중이 가진 이미지는 많이 다르다. 일례로 영화나 드라마 속 경찰은 정의감은 넘치지만 어딘가 허술한 캐릭터로 그려지곤 한다. 결정적인 순간에 실수를 저지르고 범인 검거에 한발 늦을 때가 많다. 정의로운 경찰이 주인공인 영화 <베테랑>(2015)이나 <범죄도시>(2017)에서도 결국 범인을 잡아내기는 하지만, 그 과정은 언제나 험난하다. 반면 검찰은 악당으로 나올지라도 냉정하고 똑똑하며, 사건의 핵심을 꿰뚫어 보는 엘리트 집단으로 묘사된다. 물론 작품 속 허구적 설정이지만, 대중이 경찰과 검찰에 갖고 있는 인식이 반영된 결과이기도 하다.

이런 이미지는 오랜 시간 유지돼 온 구조에서 비롯됐다. 대체로 사건의 최전선에서 범죄를 인지하고 수사를 시작하는 사례는 경찰이 훨씬 많지만, 수사의 방향과 종착지는 대부분 검찰이 결정해 왔다. 수사권과 기소권을 동시에 쥔 검찰의 지휘 아래 경찰은 보조 기관 혹은 실무자로 여겨졌다. 사건이 성과를 거두면 공은 검찰로 돌아갔고, 문제가 생기면 책임은 경찰의 몫이 되는 사례도 빈번했다. 이런 환경에서 경찰의 전문성과 독립성이 온전히 평가받기 어려웠던 것도 일정 부분 사실이다.

현 정부가 추진하는 검찰개혁으로 이제 이 구조는 근본적으로 바뀌게 됐다. 검찰의 직접 수사를 제한하고, 경찰을 명실상부한 1차 수사기관으로 만드는 게 검찰개혁의 핵심이다. 검찰에 기소권만 남기고 보완수사권까지 축소하는 방안이 거론될 정도로 개편의 폭은 크다. 이제 방향만 정해졌을 뿐 세부 내용은 논의 중인데도, 과거에는 검찰이 맡았을 대형 사건이나 정치적으로 민감한 사안들을 이미 경찰이 수사하고 있다. 경찰의 권한과 책임은 이전과 비교할 수 없을 만큼 커졌다.

그런데도 검찰개혁 이후 경찰의 역할에 의구심을 갖는 사람들이 많다. 과연 경찰이 막강해진 수사권을 감당할 수 있을지, 정치적 외압 앞에서 독립성을 지킬 수 있느냐는 질문이 검찰뿐 아니라 전문가들 사이에서 나온다. 특정 정치인이나 그 가족이 연루된 사건이 나올 때마다 ‘봐주기 수사’ ‘무마 의혹’이라는 말이 반복해서 등장하는데 경찰이 흔들리지 않고 제 갈 길을 갈 수 있을지 기대보다 우려가 크다. 과거 경찰이 보여준 이미지, 그리고 일부라지만 실제 사례들이 이런 의구심을 키웠다는 것은 경찰도 부인하기 어렵다.

권한이 확대된다고 신뢰가 자동으로 커질 수는 없다. 외려 의심이 커지기 십상이다. 그러니 경찰에게 필요한 것은 선언이나 다짐이 아니다. “흔들리지 않고 수사에 매진하겠다”는 말만으로는 어떤 믿음도 끌어내기 어렵다. 중요한 것은 그 권한을 어떻게 행사하느냐, 그리고 그 과정이 얼마나 투명하고 설득력 있느냐다. 특히 정치적으로 민감한 사건일수록 더 엄격한 기준이 적용돼야 한다. 혐의가 없다는 결론이라면 왜 없는지, 어떤 판단 과정을 거쳤는지 시민이 이해할 수 있도록 알려야 한다. 반대로 혐의가 확인된다면 지위와 영향력을 가리지 않고 법 앞의 평등이 실제로 작동하고 있음을 보여줘야 한다. 수사의 결론뿐 아니라 수사 과정 전체가 투명하게 공개되어야 신뢰도 따라온다.

지금 경찰이 수사 중인 정치인 관련 사건들은 경찰에게 위기이자 기회가 될 것이다. 경찰이 검찰개혁 이후 맡겨진 역할을 감당할 수 있을지 미리 증명하는 무대가 됐기 때문이다. 경찰이 스스로 이 기회를 놓친다면 그건 한국사회에도 불행이다. 검찰의 힘을 줄였지만, 그 자리를 또 다른 불신의 대상이 채운 검찰개혁은 사회적 혼란만 남길 뿐이다. 반대로 경찰이 독립성과 전문성을 갖춘 수사로 신뢰를 쌓아간다면, 경찰과 검찰이 서로를 견제하며 균형을 이루는 이상적인 구조가 만들어질 수 있다.

지금 경찰은 조직의 명운을 걸어야 한다는 각오로 수사를 하고 있을 것이다. 그런데 지금 걸어야 할 것은 조직의 명운 따위가 아니다. 경찰의 자존심이다. 오랫동안 따라다닌 ‘무능하고 믿기 어려운 조직’이라는 편견을 깨고, 독립 수사기관으로 인정받을 수 있는 갈림길에 서 있다. 이번에 경찰이 어떤 결론을 내리고, 어떤 과정을 보여주느냐에 따라 검찰개혁의 다음 장은 전혀 다른 평가를 받는다. 공은 이제 분명히 경찰에게 넘어가 있다. 남은 것은 그 공을 어떻게 처리하느냐다. 영화 <베테랑>에서 주인공 서도철 형사의 명대사를 기억하자. “우리가 돈이 없지, 가오(자존심)가 없냐.”

홍진수 사회부장

홍진수 사회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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