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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추위보다 살을 에는 ICE

입력 2026.01.26 19:53

연일 살을 에는 추위가 에워싼다. 그러나 지난 1월24일 보도된 미국발 ‘ICE’(미국 이민세관단속국)에 의한 또 다른 시민 사망 소식은 마음마저 베이게 한다. 1월7일 미네소타주 미니애폴리스에서 르네 굿이 연방 이민단속 과정 중 사망한 지 보름 만에 그곳에서 또다시 참혹한 죽음이 발생한 것이다.

사망 소식을 접하는 즉시 내 기억 속 한 외침이 떠올랐다. “ICE는 꺼져라!” 작년 11월 미국 뉴올리언스에서 열린 미국인류학회의 시작을 알린 제이슨 드 레온(UCLA 인류학 교수)의 일갈이었다. 놀라운 것은 거친 말 자체보다 곧바로 터져 나온 환호였다. 수백명의 인류학자가 ‘즉각적으로’ 반응했다. 그 환호는 단순한 정치적 구호가 아니라 강제이주와 추방정치가 일상의 윤리를 어떻게 파괴해왔는지에 대한 집단적 체감의 표출이었다. 그 외침은 ICE의 총성에 시민들이 쓰러지기 전부터 이미 예견된 비극에 대한 응답이었던 셈이다.

트럼프 2기 정부 출범을 앞둔 시점에서 미국인류학회의 풍경은 사뭇 달랐다. 발표 주제마다 이주민 강제이주 정책이 눈에 띄었다. 현장연구를 수행하는 인류학자들에게 이주민의 ‘살아 있는 경험’을 기록하는 것은 지상 과제였다. 학회장은 이주민을 불법이라는 한 문장으로 묶어버리는 현실이 얼마나 촘촘한 폭력의 결로 짜여 있는지 보여주는 증거들로 가득했다. 현상학적 인류학자로 잘 알려진 토마스 초르다스(캘리포니아대학교 샌디에이고 인류학 교수)는 청중에게 ‘즉각성’의 포착을 강조했다. 고통의 현장에서 당사자들이 몸으로 느끼는 그 세밀한 결을 포착하는 것이 인류학자의 소명이라는 의미다. 이제 미국에서 인류학을 수행하는 기준은 명확해 보였다. 학문적 기여를 넘어선 공적 참여와 윤리적 헌신이 요구되고 있었다.

학회에서 또 하나의 강렬한 장면은 의료인류학자 안젤라 가르시아(스탠퍼드대학교 인류학 교수)의 신간 <상실의 시대, 우리를 인도하는 길(The Way That Leads Among the Lost)>에 대한 찬사와 공감이었다. 뉴멕시코 출신인 그녀가 이주민과 소외계층이 겪는 상실, 폭력, 중독의 일상을 담아낸 이 작업은 일상 그 자체가 위기인 미국 현실에서 학술적 성취를 넘어 하나의 윤리적 사건이었다. 책의 부제는 ‘멕시코시티 아넥소에서의 삶, 죽음, 그리고 희망’이다.

이 책에는 드 레온이 목격한 멕시코 시민들의 목숨을 건 이주의 배경이 생생하게 담겨 있다. 특히 멕시코시티 내 마약 제조와 밀매의 폭증이 미국의 마약 수요 증가와 맞물려 있다는 지점은 뼈아프다.

제도가 붕괴되고 폭력이 일상이 된 멕시코에서 부모들은 자녀의 생존을 위해 ‘아넥소(Anexo)’라는 사설 시설에 기댄다. 아이가 길거리에서 살해당하거나 실종되는 최악의 비극을 막기 위해 부모 스스로 자녀에게 또 다른 종류의 폭력을 가해야만 하는 이 처참한 선택은 국가가 사라진 자리에 남겨진 이들의 유일한 생존 전략이다. 가르시아는 자녀를 살리기 위해 폭력에 기대야만 하는 부모의 윤리적 모순이 어떻게 일상적 현실로 굳어지는지 처절하게 보여준다.

우리가 외신으로 듣는 이야기는 단지 폭군 트럼프의 변덕이나 국제정치의 계산으로만 읽혀서는 안 된다. 미국의 마약 수요가 멕시코의 일상을 무너뜨리고, 그 무너진 삶에서 탈출하려는 이들을 다시 미국의 ICE가 총구로 맞이하는 잔혹한 순환의 고리를 직시해야 한다. 아넥소로 향하는 길은 한 가족이 감당해야 하는 처절한 공포의 행로이며, 그 길을 건너게 만드는 것은 개인의 결함이 아니라 국가의 부재와 초국가적인 자본의 논리다. 미국의 추방정치 또한 단순히 국경을 관리하는 행정기술이 아니라 삶의 의미를 구성하는 관계망을 절단하고 재배열하는 장치로 읽혀야 한다. 단속은 공공의 안전이라는 언어로 정당화되지만, 정작 그 현장에서 안전과 폭력은 결코 분리되지 않는다.

강추위는 계절이 지나면 물러간다. 그러나 제도화된 단속과 추방이 남기는 냉기는 사람의 몸과 관계를 훨씬 더 오래 얼린다. ‘강추위보다 살을 에는 ICE’란 단순히 차가운 기후가 아니다. 그것은 차가움을 질서로 포장하는 언어와 이미지들, 그리고 그것들이 삶을 찢어발기는 방식에 대한 이름이다. 우리가 목격하고 기억해야 할 것은 바로 그 찢긴 자리에서 사람들이 어떻게 버티고 서로를 돌보는지, 상처가 어떻게 일상이 되는가 하는 문제다. 드 레온이 ‘생존’을, 가르시아가 ‘희망’을 책의 부제로 내건 이유도 바로 여기에 있을 것이다. 이 혹한의 시대 우리에게 인류학적 시선이 그 어느 때보다 절실한 이유다.

김관욱 덕성여대 문화인류학과 교수

김관욱 덕성여대 문화인류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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