첫 직장인 신문사에서 기자로 일하며 알게 된 사실이 있다. 부자일수록 공짜를 좋아한다는 것이다. 돈으로 살 수 있는 것도 돈 안 내고 누리기를 바란다. 백화점 VIP 룸에서 주는 커피 따위, 수천 잔도 일시불로 살 수 있지만 공짜로 줄 때 꼭 챙겨 마신다. 쇼핑할 때면 직원이 자신을 알아보고 특별 할인은 물론, 따로 빼놓은 스페셜 에디션까지 챙겨줘야 만족한다. 그뿐 아니다. 부자들은 갖은 방법으로, 온갖 인맥을 동원해 민원을 한다. 공항 입국장 빨리 지나가게 해달라고, 어디 조사받을 일 있으면 가볍게 해달라고, 공연 특석 자리 구해달라고 등등 부지런히도 민원을 한다. 절실하게 필요해서만 하는 것도 아니다. 자녀가 제 능력만으로 들어갈 만한 직장이어도 꼭 뽑아달라 청탁하고, 어차피 승진할 차례여도 잘 봐 달라고 한 번 더 부탁한다.
참으로 이해되지 않는 일이었다. 부자가 좋은 건 뭐든 자기 돈으로 살 수 있고, 남에게 아쉬운 소리 할 필요 없어서가 아닌가? 나중에 알았다. 그들이 원하는 것은 단지 경제적 능력만이 아니라 그 이상, 바로 ‘신분’이었다. 보통 사람들과의 사이에 확실히 선을 그어줄 차이를 원하고, 돈으로 못 사는 것들을 얻어내는 능력이 그 차이를 증명한다 믿는 것이다.
그런 능력을 가지려면 돈과 함께 꼭 필요한 것이 사회적 지위다. 대한민국은 헌법으로 신분제를 금지하므로 지위를 획득할 거의 유일한 통로는 직업이다. 독일 사회학자 막스 베버는 직업은 경제적 계층만이 아니라 사회적 지위와 연결된다고 했다. 한국어로는 신분과 구분하기 어렵지만, 베버가 말한 지위는 사회적으로 높이 평가되고 명예와 존경을 받을 수 있는 위치다. 베버는 자산 없는 계층은 생계를 위해 일해야 하지만 상층 사람들은 명예를 위해 일한다고 봤다. 그러나 한국에는 그와 다른 고유한 문화가 있다. 돈이 직업 지위를 만들고, 직업이 신분을 만들고, 신분이 다시 돈을 벌어들이는 순환구조다.
이혜훈 기획예산처 장관 후보자 지명은 철회되었지만 청문회에 나왔던 “원펜타스냐 장관직이냐”라는 질문은 우리 사회에 남았다. 이 질문에 “나라면 어떻게 할까?” 고민해 본 사람이 있을지 모르나, 사실 그 선택지는 ‘이미 번 돈이냐, 앞으로 벌 돈이냐’일 뿐이다. 어느 쪽 돈이 더 커 보이느냐는 질문인 것이다. 이 질문의 본래 의미에 대부분 관심이 없다는 것이 우리 사회의 문제다. 한국 사람들은 대체로 이혜훈 전 후보자처럼 살고 싶다. 시아버지가 장관을 지낸 공로로 아들을 명문대에 보내고, 국회의원 보좌관들이 온갖 궂은일을 맡아 해주고, 남들은 모르는 투자와 절세 정보들을 기가 막히게 알아서 실천하는 사람. 그러는 사이 점점 더 부자가 되는 사람. 내가 아니면 자식 손자 대에라도 이렇게 될까 해서 입시 경쟁에 뛰어들고, 주식과 코인에 몰입하고, 상급지 아파트를 선망하는 게 아닌가?
그래서 남은 질문은 이것이다. 다음 후보로 누구를 고를 것인가? 덜 노골적인 사람, 아니면 아예 다른 사람? 그런데 다른 가치관을 가진 사람이 현재 공직 후보자 중에 있기는 한가? 다음 세대들은 그렇게 가르치고 있나? 이 질문에 답하지 못하고 지나간다면 이번 논란은 그저 재미도 의미도 실패한 예능 한 토막이었다 해야 할 것이다.
황세원 일in연구소 대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