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용노동부가 노동조합법 시행령안을 재입법예고했던 지난 20일, 보수언론과 경제지는 “대기업들, 하청 노조와 일일이 ‘무한교섭’”(조선일보), “‘노란봉투법’ 3월 시행…‘하청노조 수백 곳과 교섭’ 현실로”(동아일보), “하청노조 ‘원청교섭’ 손쉽게…勞로 더 기울어지나”(서울경제), “포문 연 금속노조 ‘23일까지 원청에 교섭 요구하라’”(한국경제)와 같은 제목의 기사를 쏟아냈다. 이들은 “하청노조의 ‘쪼개기 교섭’을 부추길 것이라는 우려도 나온다”며 “기업 경영 마비”를 걱정했다.
하청업체 난립은 바로 대기업 탓
이런 언론들의 주장을 들으면, 괜히 노동조합법을 개정해서 산업현장만 더 시끄럽게 만들었고, 노동부가 시행령안을 만들면서 노동조합 편으로 기울었다고 비난하는 것처럼 보인다. 이런 언론기사만 보면, 마치 대기업들이 평소에 하청노조와 단체교섭에 성실히 임해온 것과 같은 착각을 불러일으킨다. 또 하청 노동조합들이 수없이 파업을 비롯한 쟁의행위를 해왔고, 노란봉투법이 시행되는 3월10일 이후로는 하청노조들의 교섭 요구가 빗발칠 것처럼 보이게 한다.
그런데 현실은 이들 언론의 주장과는 달라도 너무 다르다. 만약 ‘쪼개기 교섭’이 현실화한다면, 그건 재벌을 비롯한 대기업들이 자초한 측면이 강하다. 한 사업장 안에서도 공정별로, 작업 단위로 쪼개고 쪼개서 하청업체들이 난립하게 한 책임은 재벌을 비롯한 대기업들에 있다. 그래서 한 사업장 안에 수백, 수천의 하청업체가 명목상의 사용자가 되어 하청 노동자들을 고용하고 있다. 이런 하청업체들에 하청 노동자의 임금부터 근로조건, 심지어는 노동조합 설립 시 계약 해지까지 압박해왔던 것은 다른 아닌 재벌을 비롯한 대기업들이다.
노동자들의 단결권과 단체교섭권, 단체행동권을 무력화하기 위한 이들의 수법은 결국 법원이 실질적 지배력을 행사하는 원청 사용자라는 판결을 내리게끔 했다. 불법파견이므로 직고용하라고 법원이 판결을 내려도 이를 무시하고, 자회사를 만들어 관리해온 관행은 이미 업계에서는 일반화된 일이다. 거기에 더해서 현대제철, 한화오션, CJ대한통운 등에서는 사람이 죽고 다치는 일이 반복되는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산업안전 의제로 교섭을 하라는 법원 판결과 노동위원회의 명령이 있어도 원청 사용주들이 교섭을 거부하고 있지 않은가.
원·하청 자율교섭이 최선의 시행령
그리고 당장 쟁의행위에 나설 수 있는 하청 노동조합이 얼마나 있을까? 한국경제는 “업계에 따르면 현대차를 상대로 교섭을 요구할 수 있는 협력사 노동조합만 8500개에 달한다”고 보도하지만, 이들 노동조합 중에는 회사가 만든 이른바 ‘기업노조’도 상당수 있고, 전체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노조 가입률은 2~3%밖에 안 된다는 현실도 호도하고 있다. 하청 노동자들을 비롯한 비정규직 노동자들은 교섭을 하고 싶어도 할 수 없는 게 현실이다. 노란봉투법이 하청 노동자들을 비롯한 비정규직, 특수고용노동자들의 노조 가입률을 높일 수 있다면 오히려 다행이다.
필자가 대표로 있는 ‘손잡고’에서는 지난 20일 “노란봉투법은 교섭을 하라고 만든 법이다”란 제목의 성명을 냈다.
이 성명에서 “책임을 회피한 사용자들이 노동자들에게 ‘기본권’조차 행사하지 못하게 해온 부당한 권리 박탈을 노란봉투법 개정으로 조금이나마 바로잡고자 한 것”이라고 지적했다. 저임금과 장시간 노동, 고용불안에 시달리다 일회용 소모품처럼 버려지는 노동자들에게 헌법이 보장하는 단결권과 단체교섭권, 단체행동권을 주자는 게 노란봉투법의 취지다.
노동조합법 제1조는 이 법의 목적을 “근로자의 단결권·단체교섭권 및 단체행동권을 보장해 근로조건의 유지·개선과 근로자의 경제적·사회적 지위의 향상을 도모하고, 노동관계를 공정하게 조정해 노동쟁의를 예방·해결함으로써 산업 평화의 유지와 국민경제의 발전에 이바지함”이라고 밝히고 있다. 언론들이 헌법 제33조와 노동조합법 목적에 맞게 사용자에게 너무 기울어진 운동장을 바로잡자고 나서야 할 때가 아닌가.
아울러 노동부에도 바란다. 노동조합법 시행령 재입법예고를 하면서 밝힌 것처럼 “원·하청 교섭 촉진 및 하청노조의 실질적 교섭권 보장을 강화하는” 시행령 인가를 재고해야 한다. 최선의 시행령은 원·하청 노사 간 자율교섭을 촉진시키는 방향이어야 한다.
박래군 인권재단 사람 이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