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도체노동자의 건강과 인권지킴이 반올림 소속 활동가들과 유족이 27일 서울 서초구 삼성전자 사옥 앞에서 故 김치엽 연구원 죽음 관련 진상 규명을 촉구하는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한수빈 기자
삼성전자 신입연구원이 업무 스트레스와 수면장애 등으로 고통을 겪다 입사 1년만인 지난해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는 주장이 나왔다. 유가족과 시민단체는 진상규명을 촉구했다.
반도체노동자의건강과인권지킴이 반올림은 27일 서울 서초구 삼성전자 사옥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삼성은 노동자들이 더 이상 죽고 병들지 않도록 근본 대책을 마련하라”며 “(고인의 죽음은) 삼성의 성과주의가 가져온 비극”이라고 주장했다.
반올림과 유가족 측에 따르면 고 김치엽씨는 신소재공학과 대학원을 졸업하고 2024년 4월 삼성전자 메모리사업부 화성사업장에 입사했다. 당시 삼성은 고대역폭메모리(HBM) 반도체 실적 부진을 이유로 경영진이 이례적으로 사과문을 발표하며 위기감이 큰 시기였다. 김씨는 입사하자마자 HBM 관련 집중 업무, 경쟁력 확보 프로젝트 등에 참여하며 업무 스트레스가 심했던 것으로 전해졌다.
2025년 그의 SNS와 진료 의무기록 등에는 ‘잘해보려는데 일그러진다’ ‘파트장 기대에 미치지 못한다’ ‘입사 1년도 안 돼 정신건강휴직을 할 것 같다’ ‘다른 사람 만큼 해야 하는데, 실행 능력이 밑바닥이다’ 등의 내용이 있었다. 그는 지난해 2월 정신건강의학과에서 치료가 필요하단 우울증 소견을 받았고, 3월엔 회사 인사팀의 권유로 사내병원 마음건강클리닉에서 진료받았다.
그해 3월 팀프로젝트 발표가 끝난 후, 고인은 SNS에 ‘흔적도 없이 사라지고 싶다’고 남겼다. 그리고 3월26일 김씨는 본인의 오피스텔에서 숨진 상태로 발견됐다. 그가 출근하지 않자 회사 관계자들이 강제로 문을 열고 들어가 고인을 발견한 것으로 전해졌다. 유족들은 “회사에서 무슨 일이 있었나”라며 “강제 개문할 정도로 느꼈던 긴급한 상황이 무엇인가”라고 했다.
삼성전자에서는 2010년 평소 업무 압박감을 호소하던 삼성전자 부사장이 투신 자살했고, 2011년 삼성전자 LCD사업부 천안공장에서 26세 청년이 세상을 떠났다. 2013년엔 삼성전자서비스센터 직원이 자살했다. 삼성은 2011년 ‘임직원 정신건강 관리 대책’을 수립했고, 2012년 ‘노사전략 문건’에도 직원들의 정신건강 관리 관련 내용이 담겨 있었다.
반올림은 “더이상의 아픔과 죽음을 막아야 한다”며 “왜 그가 아프면서도 일을 멈출 수 없었는지, 성과주의 조직 속에서 노동자들의 정신건강이 무너져가는 동안 삼성은 무엇을 했는지, 묻지 않을 수 없다”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