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과 며칠 전 마이애미로 짧은 출장을 떠날 때만 해도, 미국 동부 지역의 눈 폭풍으로 발이 묶이리라고는 생각지도 못했다. 플로리다 대학에서 바쁜 일정을 겨우 마친 뒤 잠시 짬을 내어 따사로운 풍경을 거닐던 오후 갑자기 휴대폰 문자가 날아왔다. 경유지인 애틀랜타 사정으로 항공권이 취소, 연기되었다는 알림이었다. 일방적으로 통보된 돌발 상황에 적잖이 당황스러웠다.
일행 중에 단순한 실수로 서부 지역의 솔트레이크를 경유지로 발권한 분이 있었다. 상대적으로 조건이 더 안 좋아서 본래 실망했지만, 눈 폭풍에 영향받지 않고 귀국할 수 있게 되자 나머지 일행의 부러움을 샀다. 반면 귀국 일정이 부득이하게 지연된 덕분에 필자는 하루를 온전히 비워서 미국의 땅끝이라고 일컫는 키 웨스트를 방문할 수 있었다. 헤밍웨이의 흔적이 남아 있는 멋진 섬이다. 정상적으로 귀국하게 된 분이 오히려 우리를 부러워했음은 물론이다.
이 글을 쓰는 지금, 필자는 17시간째 마이애미공항에 있다. 소지인 불명의 가방이 발견되어 공항 전체가 정지되었고, 탑승 대기 중이던 모든 승객이 다 밖으로 나갔다가 상황 종료 후 다시 수속을 거쳐 들어와야 하는 상황이 발생한 탓이다. 다행히 해프닝으로 끝났지만, 이륙이 지연되어 경유 항공 시간을 맞출 수 없게 되었다. 키 웨스트의 추억은 어느새 잊혀 버리고, 귀국 후 일정에도 심각한 지장이 초래되고 말았다. 취소와 재발권을 거듭하는 불확실성 속에 그저 무사 귀국만을 바라는 마음이다.
나쁜 일이 꼭 나쁜 것만은 아니고, 좋은 일도 마냥 좋을 수만은 없다는 깨달음을 우리는 새옹지마라는 고사성어로 간명하게 표현할 수 있다. 어찌할 수 없는 일들에 일희일비하지 말라는 권면, 혹은 곤경에 처한 이에 대한 위로의 의미로 사용되곤 한다. 전화위복 역시 유사한 의미로 언급되기도 한다. 하지만 결과에 순응하는 자세를 강조하는 새옹지마와는 달리, 이는 나쁜 상황을 좋은 결실로 만들어내는 주도적인 능력을 이르는 용례에서 유래한다. 이국의 공항에서 밤을 지새우며, 기상 이변이나 공항 해프닝보다 어쩌면 더 큰 인적 재앙이 일어나고 있는 이 나라에 다시 민주주의가 전화위복의 꽃으로 피어나기를 염원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