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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혐중’에 대처하는 ‘강한 객관성’

입력 2026.01.27 20:05

[정희진의 낯선 사이]‘혐중’에 대처하는 ‘강한 객관성’

‘강한 객관성’은 주체와 대상 간의 관계를 알고,
충분히 인지하고, 의식하고, 쓰고, 연구하는 것이다.
더 나아가 ‘강한 객관성’은 ‘강한 성찰성’을 동반하는데,
자기가 하는 말의 의미를 끊임없이 되돌아보는 것이다.
“중국개입, 선거부정”을 외치는 이들과 ‘우리’가 인식해야 할 것은,
표현의 자유가 아니라 표현의 내용과 표현의 책임이다.

몇달 전부터 전국의 거리에 갖가지 민망한 문구를 적은 플래카드가 펄럭이고 있다. ‘내일로미래로당(黨)’이 내건 “중국개입, 선거부정”도 그중 하나다.

사실 혐중 사태는 20년 전부터 진행 중이었다. 2000년대 초반 나는 자주국방 담론을 주제로 글을 쓰기 위해 군과 우익 시민단체 관련자들을 인터뷰했는데, 그때도 그들은 “미국을 이용해 한반도 안보는 미국에 맡기고 우리는 남아도는 역량으로 중국을 타격하고 옛 광개토대왕 영토를 찾아야 한다”는 주장을 ‘자주국방’이라며 나를 설득했다.

선거부정도 불가능하지만, 왜 하필 중국이 등장하는 것일까. 무슨 객관적 근거가 있는지 나는 이에 대한 설명을 들은 적이 없다. 이런 주장을 망상이라고 생각하는 사람도 있고, 반대로 객관적이라고 믿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객관성(客觀性)은 객(客)의 위치, 즉 어떤 상황에도 개입하지 않은 제3자의 입장에서 본다는 뜻이다. 이 단어의 어원은 오랫동안 서구 철학을 지배해왔던 인식 주체와 대상의 분리에서 나왔다. 즉 객관성(objectivity)은 대상(object)에서 유래했다. 인식 대상은 움직이지 않고 고정되어 있다는 것이다. 주체는 이동하지만 대상은 항상 그 자리에 있기에 객관성을 확보할 수 있다는 논리다. 정물화(靜物畵)를 그릴 때 사과나 꽃처럼 고정되어 있는 것이 대상이다.

물론 이러한 논리는 근대 ‘이후’ 거센 반론에 휩싸였고, 지금은 객관성이 가능하다고 믿는 사람이 드물다. 객관성은 경합의 장이다. 객관성은 개인의 주관성일 뿐이다. 사회는 힘 있는 사람의 주관성을 객관성이라고 여기고, 약자의 주관성은 자의적이라고 생각한다. 이처럼 객관성은 힘의 원리에 의해 구성된다. 객관성 개념이 경합의 산물이라면, 사회적 약자나 소수자는 어떻게 이 논쟁에 참여해야 할까.

객관성은 진리, 사실, 중립, 과학, 불편부당, 자연의 섭리 등의 개념과 연관되어 있어서 “그 사람은 객관적이다”라는 평가는 대체로 좋은 평판이 된다. 그래서 사람들은 자기 생각이 객관적이라고(옳다고) 믿는다. 자기주장을 편견이라고 생각하는 사람은 드물다. “중국개입, 선거부정”을 외치는 이들의 주장에 나는 어떻게 개입할 것인가. “당신들 생각에 근거가 있는가”라고 묻고 반론을 펼친다? 물론 나는 그렇게 하지 않을 것이다. 이는 소모전이고 시간 낭비다.

주변인의 ‘강한 객관성’

객관성 논쟁에 대한 가장 치열한 사유는 페미니즘과 마르크스주의일 것이다. 이들 사상은 상황에 연루되지 않는 제3자의 입장이란 가능하지 않으며 사회적 약자의 시각이 객관성에 가깝다고 생각한다. 특히 페미니즘들(feminism/s)은 하나가 아니라 다양한 사조가 있다. 자유주의 페미니즘, 마르크스주의 페미니즘, 탈식민주의 페미니즘은 각각 전제 자체가 다르다. 이처럼 페미니즘 ‘내부’는 균질적이지 않고 상호 대립적인 내용이 많다. 자유주의 페미니즘과 에코 페미니즘은 정반대의 주장을 한다. 페미니즘에는 정체성의 정치도 있고 이를 신랄하게 비판하는 페미니즘도 있다.

페미니즘 내부가 이처럼 다양하기 때문에 페미니즘은 객관성을 둘러싼 사유에 많은 이론적 축적과 역사를 가지고 있다. 또한 여성들 간의 계급, 인종, 성 정체성, 장애, 지역, 나이, 국적 등에 따른 차이는 객관성을 다르게 구성하는 자원이 된다. 페미니즘의 ‘일관성 없음’, 모순, 계속적인 가치 충돌은 우리에게 사유를 요구한다. 페미니즘이 원칙이 아니라 맥락의 사상인 이유다.

미국의 페미니스트 과학철학자 샌드라 하딩(1935~1925)은 ‘강한 객관성(strong objectivity)’이라는 개념으로 이 논쟁에 개입하였다. 그는 과학 전반(공부, 인식, 학문, 지식, 언어, 기술…)에 대한 근본적 질문을 던졌다. 과학자들은 누구인가, 과학의 전제는 무엇인가, 과학은 무엇을 다루는가, 과학의 이익은 누구에게 돌아가는가, 과학은 왜 필요한가 등이 그것이다.

이제까지의 과학은 글을(글만!) 쓸 수 있도록 선택된, 훈련된, 일상적 노동으로부터 면제받은 서구의 지배 계급 남성들의 이야기였다. 그래서 그들의 과학은 구체적이기보다 추상적이고 현실 초월적이다. 아마도 경제학이나 국제정치학 등에 자주 등장하는 게임 이론이 대표적일 것이다. 자신의 경험이나 현실에 근거하지 않고 메타포로 상황을 설명하는 방식이 게임 이론이다.

우리는 과학의 신화에 익숙하다. 과학은 객관적이고 가치 중립이며 사심 없는 공평한 중재자라는 것이다. 그러나 관찰자와 관찰 대상은 같은 과학 장(場) 안에 놓여 있다는 점에서 불가능한 설정이다. 젠더, 계급, 장애, 연령, 지역, 국적 등에 의해 철저히 위계화된 사회에서 ‘사심 없는 지식’은 있을 수 없다. 논쟁의 핵심은 ‘과학과 사회’ 혹은 ‘과학 대(對) 사회’가 아니라 자연과학도 사회의 일부라는 점이다(대학을 중심으로 구분된 분과 학문 체계에서 ‘자연과학’과 ‘사회과학’의 위계를 의미하는 것은 아니다).

사회적 약자, 주변인의 경험이라고 해서 저절로 객관성을 확보하는 것은 아니다. 주변인의 경험과 삶으로부터 문제의식을 가지고 시작하되, 그들의 경험 자체가 객관적인 것이 아니라 그 경험은 특정한 위치(position)에서 해석되어야 한다.

대표적 타자인 여성들은 사회 체제에서 귀중한 ‘이방인’이지만, 이들은 지식 생산의 디자인과 방향에서 체계적으로 배제되어왔다. 페미니즘은 여성과 남성에게 이방인의 관점으로 사회 제도를 보는 법을 가르쳐준다. 여성의 삶에서 본 시각은 더 쉽고 새롭게 비판적인 해석을 만들어낼 수 있다. 여성의 관점은 남성과 여성이 매일매일 참여하는 양성 간의 전쟁을 다른 쪽에서 바라본 것이다.

여성의 관점은 일상생활에서 나온다. 여성의 일상적 삶에서 본 관점은 지배 집단 남성들의 ‘통치’ 활동만을 중심으로 한 관점보다 과학적으로 더 바람직하다. 여성들은 지배 집단의 남성들이 하기 싫어하는 일을 배정받았고, 이로 인해 남성들은 관념의 세계에 빠져들 수 있었다. 예를 들어 여성의 삶에서 보면 가족과 지역 네트워크가 노동조합보다 중요하다. 여성의 관점은 자연 대 문화라는 이원론(二元論)을 중재하는 데서 생겨났다. 여성은 공사 영역에 걸친 이중 노동을 한다. 여성의 노동은 남성의 노동보다 더 정신과 육체의 통일을 요구한다.

하딩의 ‘강한 객관성’ 개념은 성별로 위계화된 사회에서 여성의 삶의 관점에서 생각을 시작하는 낯섦이, 객관성 구성에 중요한 요소라고 본다. 낯섦은 모든 과학적 탐구의 시작이기 때문이다. 또한 성별 차이는 과학적 자원이 된다. 그것은 우리로 하여금 자연과 사회관계들에 대해 평가절하되고 방치된 삶들의 관점에서 질문하게 만들기 때문이다. 공사 영역이 분리된 사회에서 여성들의 생활 세계에서의 노동은 안과 밖 그리고 주변과 중심의 관계를 좀 더 쉽게 간파할 수 있는 ‘내부에 있는 외부인들’의 삶이다. 이러한 상황이 사유를 촉발시키는 첫 번째 원리이다.

브레히트에 의하면 새로운 인식은 시비, 찬반, 누구를 먼저 챙기냐 마냐, 나는 거기 속하냐 아니냐를 다투기에 앞서, 주어진 옷들이 전부 내 몸에는 맞지 않는다는 걸 깨닫는 것으로부터 시작한다. ‘좋은 옛날 것’ 위에 건설하지 말고, ‘나쁜 새로운 것’ 위에 건설하라는 것이다.

‘강한 성찰성’과 표현의 책임

‘강한 객관성’을 운용한다는 것은 타자의 관점을 존중하고 타자를 만드는 사회적 조건을 염두에 둔다는 뜻이다. 그러나 그것은 주체(one)가 타자(others)와 같은 생활을 하거나 타자와 합쳐지기 위해서가 아니라 주체를 좀 더 멀리서 비판적이고 객관적으로 조망해 볼 수 있는 위치에서 주체를 되돌아보기 위해서이다. 이처럼 ‘강한 객관성’은 주체와 대상 간의 관계를 알고, 충분히 인지하고, 의식하고, 쓰고, 연구하는 것이다.

더 나아가 ‘강한 객관성’은 ‘강한 성찰성’을 동반하는데, 자기 자신에게로 회귀를 반복하는 것이다. 자기가 하는 말의 의미를 끊임없이 되돌아보는 것이다. 말하기의 위치성을 인식하고 자기 말의 책임에 대해 생각하는 것이다. “중국개입, 선거부정”을 외치는 이들 그리고 ‘우리’가 인식해야 할 것은, 표현의 자유가 아니라 표현의 내용과 표현의 책임이다. 표현 이전에 자신이 누구인가를 알고 자기 위치를 표명해야 한다.

정희진 월간 오디오매거진‘정희진의 공부’편집장

정희진 월간 오디오매거진‘정희진의 공부’편집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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