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이치모터스 주가조작 혐의 등을 받는 김건희 여사의 1심 선고가 열린 28일 서울역에서 시민들이 판결 생중계를 지켜보고 있다. 권도현 기자
김건희 여사가 통일교 측으로부터 샤넬 가방과 그라프 목걸이 등을 받은 혐의에 대해 법원이 실형을 선고하면서 “청탁 관련 인식이 있었고, 알선 명목의 수수가 인정된다”고 밝혔다. 재판부는 “알선과 수수한 금품 사이에 포괄적 대가관계가 있으면 족하다”는 대법원 판례를 들며 “영부인의 지위를 영리 추구의 수단으로 오용했다”고 말했다.
서울중앙지법 형사합의27부(재판장 우인성)는 28일 김 여사의 특정범죄가중처벌법상 알선수재 혐의를 유죄로 인정하고 징역 1년8개월을 선고했다. 또 이미 압수된 6200만원 상당의 그라프 목걸이는 몰수하고, 김 여사가 통일교로부터 받았다가 반납한 샤넬 가방의 가액에 해당하는 1281만5000원을 추징한다고 했다.
앞서 민중기 특별검사팀(특검)은 김 여사 관련 의혹을 수사하면서 통일교가 윤석열 전 대통령 부부에게 ‘투 트랙’으로 접근했다고 봤다. ‘건진법사’ 전성배씨를 통해 김 여사에게 금품을 제공하고, 권성동 국민의힘 의원을 통해서는 윤 전 대통령에게 현안을 청탁했다는 것이다.
김 여사의 통일교 관련 알선수재 혐의에서는 청탁과 대가성이 인정되는지가 쟁점이었다. 법원은 대법원 판례를 들어 “알선수재죄는 공무원의 직무에 속한 사항을 알선한다는 명목으로 금품이나 이익을 수수·요구 또는 약속함으로써 성립하는 범죄로 실제 알선 행위를 했는지는 상관이 없다”는 법리를 재차 확인했다.
‘건진법사 청탁 의혹’ 핵심 인물인 윤영호 전 통일교 세계본부장이 지난해 7월30일 영장실질심사를 받기 위해 서울중앙지법으로 들어서고 있다. 성동훈 기자
김 여사 측은 윤영호 통일교 전 세계본부장으로부터 2022년 4월7일과 같은 해 7월5일 샤넬 가방과 천수산 농축차(인삼차) 등을 두 번 받은 사실은 인정하면서도 구체적인 청탁이 없었다고 주장했다. 또 같은 해 7월 그라프 목걸이는 받은 적이 없으며, 만일 받았더라도 가액이 6000만원에 불과해 수조원의 예산이 들어가야 하는 통일교 청탁을 받아들이기엔 어려운 수준이었다고 했다.
법원은 이를 받아들이지 않았다. 재판부는 2022년 7월에 받은 샤넬 가방과 그라프 목걸이 두 가지에 대해 유죄로 인정하며 “피고인은 (2022년) 4월부터 전성배 등을 통해 통일교에서 UN 제5사무국 유치를 원한다는 것과 이를 위해 정부를 통해 아프리카 국가들을 지지해야 한다는 것을 인식하고 있었다”고 봤다. 이어 “가방 수수 이후 피고인은 윤영호와 전화하며 ‘늘 그렇게 해 주셨던 것처럼 힘이 되어주시면, 저희가 지금 많이 작업을 하고 있다’ 등을 언급했다”며 “이는 통일교에서 추진하는 일과 관련해 정부 차원의 지원이 필요하고 이를 위해 피고인이 노력하고 있다는 취지”라고 했다.
그라프 목걸이를 받은 적 없다는 김 여사 측 주장도 배척했다. 재판부는 “윤영호는 전성배에게 피고인에게 전해달라면서 목걸이를 줬다고 하고, 전성배는 처남을 통해 목걸이를 줬다고 진술한다”며 “피고인은 전성배가 착복했다고 주장하나, 이는 받아들이기 어렵다”고 했다. 전씨가 굳이 목걸이를 가로채 2013년부터 쌓은 김 여사와의 신뢰를 깨뜨릴 이유가 없다는 것이다.
다만 2022년 4월에 받은 샤넬 가방에 대해서는 알선 명목이 인정되지 않는다고 했다. 재판부는 “피고인이 2022년 3월30일 윤영호에게 ‘대선을 도와줘서 고맙다’고 하고, 윤영호는 피고인에게 ‘대통령 당선을 축하한다’는 취지로 통화했다. 그러나 이는 의례적인 표현이고, 대화 중 청탁이라고 볼 만한 것이 없다”며 “이후 가방을 수수할 때까지도 청탁으로 볼 만한 것이 없다”고 했다.
이날 재판부는 김 여사에 대한 선고를 마친 뒤 실제 금품을 전달한 윤 전 본부장과 권 의원에 대한 선고 공판도 열고, 이들에 대해 각각 징역 1년2개월과 징역 2년을 선고했다.
윤 전 본부장 측은 재판 과정에서 특검이 위법수집증거로 기소했다고 주장했으나, 법원은 받아들이지 않았다. 재판부는 “피고인은 자신의 다이어리와 카카오톡 메시지, 현금 1억원 사진 등이 압수·수색영장 기재 혐의 사실과 관련성이 없다고 주장하나, 이 증거들은 영장 기재 혐의 사실과 객관적 관련성이 인정되므로 증거 능력이 인정된다”고 했다.
권 의원과 관련해서는 윤 전 본부장의 다이어리 내용 중 ‘권성동 의원 점심(63빌딩 ○○○), 큰 거 1장 서포트(support)’라고 적힌 부분을 유죄 증거로 인정했다. 윤 전 본부장이 권 의원에게 ‘오늘 드린 것은 작지만 후보님을 위해 요긴하게 써주시면 좋겠습니다’라고 보낸 카카오톡 메시지, 권 의원에게 제공된 현금 1억원을 상자 2개로 나누어 포장한 사진 등도 핵심 증거가 됐다.
재판부는 “피고인은 불법 정치자금을 수수해 국회의원의 헌법상 청렴의 의무를 저버렸다”며 “금권(金權)의 정치적 영향력을 배제하여 민주정치의 건전한 발전에 기여하려는 정치자금법의 입법 목적도 훼손시켰다”고 했다. 또 “금품 수수 이후 윤영호를 윤석열과 면담시켜 주고, 통일교 행사에 참석하기도 해서 통일교 영향력 확대를 도와줬다”며 “윤영호에게 통일교 수뇌부의 해외 원정 도박과 관련한 수사정보를 알려주기까지 했다”고 질책했다.
통일교 청탁과 금품 수수와 관련해선 한학자 통일교 총재와 정원주 전 총재 비서실장, 전성배씨 등이 모두 재판받고 있다. 전씨에 대한 선고는 다음달 11일 나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