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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출문제를 풀어야 할 이유

입력 2026.01.28 19:56

한국지엠 세종물류센터에서 일하는 노동자들은 작년 7월 노동조합을 세웠다. 158만원에서 멈춘 기본급, 강제로 요구되는 잔업, 연차휴가 사용 제한과 같은 부당한 처우를 바꿔보려고 했다. 노동조합은 자신들을 직접 고용한 업체와 단체교섭을 했다. 하지만 “원청의 허락”이 없어 교섭은 진전되지 않았고 노동조합은 파업을 준비했다. 그러던 중 한국지엠이 “진짜 사장”을 자처하며 물류센터를 찾아왔다. 노조법 개정의 성과인가?

한국지엠은 파업을 하지 말라며 다른 지역 조립공장에 정규직 채용 계획이 있다고 말했다. 일하던 직장에서, 하던 일을, 다만 기본적 권리는 누리면서 하고 싶어 만들었던 노동조합이다. 노동조합은 정규직 전환에 관해 직접 교섭하자고 했다. 한국지엠은 당황했을 것이다. 하지만 어디에서 일하는 어떤 정규직이냐보다 더 중요한 것이 있다. 사장이 일방적으로 정하느냐 노동자가 대등하게 협상하느냐. 이 차이를 가장 잘 아는 것은 자본이다.

‘진짜 사장’ 한국지엠은 책임을 자처한 것이 아니라 ‘노동조합 없는 물류센터’를 바랐다. 한국지엠은 그간 물류센터를 맡겨온 하청업체와의 계약을 종료했다. 새로운 업체와 계약을 했고 새 업체는 기존의 노동자들과 고용계약을 맺지 않았다. 물류센터 일에 이미 능숙한 노동자들을 굳이 고용하지 않는 것은 합리적이지 않다. 하지만 한국지엠은 매년 이루어지던 고용승계가 중단된 것이 새 업체의 판단일 뿐이라고 한다. 120명의 노동자가 순식간에 일자리를 잃었다.

그리 새로운 수법이 아니다. 하청업체 계약 해지로 노동조합에 가입한 노동자들을 해고하는 것이 부당하다는 판결은 이미 15년 전에 나왔다. 한국지엠이 이를 몰랐을 리가 없다. 하지만 무시하면 그만이다. 당연한 판결을 받기까지 기다려야 하는 시간은 노동자들에게 절대적으로 불리하기 때문이다. 고용노동부도 몰랐을 리가 없다. 그리고 무시하면 안 됐다. 이재명 정부가 치적으로 내세우는 노조법 개정의 취지가 이런 수법들로 무력화됐던 권리를 되살리는 것이었기 때문이다. 이것은 기출문제였다.

작년 8월 개정된 노조법은 새로운 권리를 만들어낸 것이 아니었다. 노동조합을 결성할 자유, 파업 등 단체행동을 벌일 권리, 사용자와 협상하고 단체협약을 맺을 권리는 이미 법에 새겨져 있었다. 게다가 그 중요성이 남달라 노동조합의 가입이나 활동에 부당한 영향을 미치는 사용자의 행위를 부당노동행위로 규정하고 처벌한다. 하지만 기업들은 법을 회피할 목적의 사업구조와 계약 형식을 만들며 책임을 부인해왔다.

새 출제 문제들을 노동자들은 투쟁으로 풀어왔다. 노동조합을 죽이는 킬러 문항도 풀고 ‘손배 폭탄’도 맞아가며 풀어온 문제들이다. 왜 그렇게 열심이었을까. 노동자에게 인신이 있고 인격이 있고 인생이 있어서다. 노동력이 되느냐 ‘노동자’가 되느냐의 문제이기 때문이다. 덕분에 답을 찾기는 수월해졌다. 노동력의 사용으로 이익을 보는 자가 노동자의 권리에 대한 책임을 진다는 것. 노조법 개정은 그걸 모두가 더 알아보기 쉽게 만드는 과정이었다.

그런데 정부는 기출문제도 대비하지 않았다. 게다가 시행령에 ‘교섭창구 단일화’ 절차를 넣어 새로운 문제까지 던졌다. 노조법 개정에 힘써온 노동조합과 단체들은 시행령 폐기를 요구하고 있지만 정부는 강행 의사를 밝히고 있다. 교섭단위가 합리적으로 분리될 수 있도록 하겠다는 말만 반복한다. 분리시킬 것을 일단 붙여놓는 이유를 알 수 없다. 하나만 질문하면 된다. 사용자가 더 책임을 지게 하는 시행령인가. 정부는 노조법 시행령을 폐기하고 기출문제에 대한 답을 서둘러 내야 한다.

노동자의 권리는 노동자 개개인의 처우를 개선하는 기준을 넘어선다. 노동시간, 휴식, 고용안정 등에 관한 기준은 ‘계약’으로 포장된 불평등을 폭로하는 노동자들의 집단적 투쟁 속에서 만들어져왔다. 노동조합은 ‘모든 사람이 존엄하고 평등하다’는 선언이 현실에서 구현되게 하는 조직이었다. 권리가 무너질 때 벌어지는 일을 잘 보여주는 사례 중 하나가 지엠이기도 하다. 2018년 군산공장 폐쇄로 한 도시를 파탄 낸 한국지엠은 산업은행으로부터 8100억원의 공적 자금을 지원받고도 계속해서 사업장들을 폐쇄하고 있다. 정부가 지엠을 사회적으로 지원하는 동안 지엠은 사회를 체계적으로 파괴하고 있다. 누가 막을 수 있나. 노동조합이다.

노동조합은 노동자의 권리를 지킴으로써 사회를 지킨다. 한국지엠이 해고한 노동자들은 세종물류센터를 점거해 농성을 이어가고 있다. 사회를 지키는 자리, 함께 지켜야 한다.

미류 인권운동사랑방 상임활동가

미류 인권운동사랑방 상임활동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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