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무 추워 패딩을 걸치고 돌아댕기는데 동네 할매가 전기장판을 대문 밖에 내다 놓으셔. “어디가 고장나부렀나요?” “아니 불이 나부렀당게라. 송장 치를 뻔 봐부렀소잉.” 수십 년도 더 된 장판이 과열됐나 봐. 여태 뜨신 아랫목 노릇을 하느라 고생이 참 많았겠다. 여긴 도시가스도 안 들어오고, 기름보일러 아낄 참 조금만 날 풀려도 달랑 전기장판만 쓰는데, 에고~ 불이 나야 바꾸시네. 뵌 친한 목사 형님이 전기장판 아니 전기방석에 오래 앉았다가 고문을 당한 듯 불그레 저온화상을 입었당마~. 또다시 에고~.
은근하게 살이 녹고 화상을 입는대. 운동권 목사에게 전기고문은 운명처럼 찾아오는 모양인갑다.
어릴 적 동네에 전기가 들어오고, 세상이 환히 변하는 순간을 목격했다. 송찬호 시인의 ‘옛날 옛적 우리 고향 마을에 처음 전기가 들어올 무렵’은 시공부 노트에다 적어놓아서 얼른 뒤적였지. “마당가 분꽃들은 노랑 다홍 빨강 색색의 전기가 들어온다고 좋아하였다. 울타리 오이 넝쿨은 5촉짜리 노란 오이꽃이나 많이 피웠으면 좋겠다. 닭장 밑 두꺼비는 찌르르르 푸른 전류가 흐르는 여치나 넙죽넙죽 받아먹었으면 좋겠다고 했다. 그리고 가난한 우리 식구들, 늦은 저녁 날벌레 달려드는 전구 아래 둘러앉아 양푼 가득 삶은 감자라도 배불리 먹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읽자니 가슴 찡해지며 배 고파진다.
로봇이 재주 넘고 전기차가 자동주행하는 시절이다만 전기장판에 몸 지지면서 30촉 전구 아래 눈알을 궁글리는 가난한 사람들이 동시대에 산다. 밤이면 골프장·썰매장에도 환한 전깃불, 여기는 고작 외등 몇 개, 밤하늘 별빛이 고작이야. 더듬거리며 사랑하고, 작별의 입맞춤을 나눈다. 나같이 무능하고 철없는 꿈쟁이는 죽어 지옥 갈 텐데, 다행히 염라대왕이 불가마 사우나와 전기장판을 깔아주어 대체로 뜨시다는 소문이다. 지옥에도 최소한 복지가 되어 있다는 썰. 적응하려면 지금부터 전기장판에 몸을 지져볼까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