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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편전쟁까지 소환하는 ‘트럼프식 제국주의’

입력 2026.01.28 20:00

19세기 중국(청나라)과 영국의 아편전쟁은 영국의 대중 무역적자 때문에 촉발됐다. 중국의 차, 비단, 도자기 수입이 늘면서 막대한 양의 은화 유출에 시달리던 영국은 인도산 아편을 중국 남부 해안에 은밀하게 유통하기 시작했다. 무역불균형 해소책으로 사실상 마약 유통을 택한 것이었다. 백성들의 아편 중독으로 인한 사회적 혼란을 견디지 못한 중국은 아편 2만여상자를 몰수해 해안가에서 공개적으로 불태웠다. 그러자 이를 상업활동에 대한 침해로 규정한 영국은 증기선에 탑재한 장거리 함포로 중국을 굴복시켰다. 중국은 역사적으로 유례없는 불평등조약인 난징조약(1842년)을 통해 홍콩을 넘겨주고 상하이 등 5개 항구도시를 개항해야 했다. 오늘날 중국이 과학기술 굴기에 집착하는 이유는 아편전쟁 트라우마 때문이란 분석이 많다.

최근 영국 주간지 이코노미스트가 ‘함포 자본주의의 귀환’을 다뤘다. 19세기 제국주의 시대에는 강대국이 함포를 내세워 강제로 시장을 열었다면, 지금은 관세, 기술 차단 및 수출통제 등이 주요 수단이다. 패권국이 일방적 행동을 통해 자국에 유리한 질서를 만들려는 속성은 변치 않았다는 점에서 이 같은 표현을 쓴 것이다. 이코노미스트는 함포 자본주의가 장기적으로 세계 경제의 효율성을 떨어뜨려 세계를 더 가난하게 만들 것이라고 전망했다.

함포 자본주의의 부활에는 부동산과 자원에 대한 탐욕을 숨기지 않는 트럼프가 있다. 그는 다른 나라 주권을 무력으로 침해하는 행동까지 서슴지 않는다. 베네수엘라 대통령을 체포해 미국으로 압송한 것이나 그린란드 병합 야욕은 ‘트럼프식 제국주의’라 해도 이상하지 않을 정도다. 그의 최측근인 스티븐 밀러 백악관 부비서실장은 “힘과 무력, 권력이 지배하는 세상에 살고 있다. 그게 태초부터 변함없는 철칙”이라고 했다.

트럼프는 무차별 관세폭탄으로 오랜 세월 미국이 이끌어온 자유무역 질서도 와해시켰다. 미국은 그동안 중국이 화웨이 등의 거대 기업을 정부 보조금으로 키우는 것 아니냐며 비난해왔다. 수출 산업에 대한 국가 보조금은 시장을 왜곡하는 것으로 세계무역기구(WTO) 규칙 위반에 해당한다는 논리였다. 현 시점에서 돌아보면 미국의 이런 행보는 매우 신사적 행위였다.

이제 세계 경제는 자유무역 질서를 전제로 작동하던 이전의 국면과는 다른 단계에 접어들었다. 세계 각국이 자국 우선주의 기조하에 막대한 재정과 세제 지원을 자국 기업에 쏟아붓고 있다. 반도체, 인공지능(AI), 배터리, 방위산업, 에너지 분야에서 이 같은 흐름이 강하다. 이제는 아무도 국제 규범 위반 여부를 따지지 않는다. 혹자는 이를 두고 ‘국가자본주의 2.0 시대’라 부르기도 한다.

‘보이지 않는 손’으로 시장경제의 순기능을 강조했던 애덤 스미스는 국제 분업 이론으로 자유무역의 상호 이득도 설파했다. 오랜 세월 시장경제의 기본을 이루던 이런 개념들이 이젠 가물가물해지고 ‘보이는 주먹’만 난무하는 세상이 됐다.

지금 추세대로라면 글로벌 공급망은 앞으로 정치 블록별로 분리될 것이고 이는 기업들의 비용 상승으로 이어질 가능성이 높다. 기업들이 투자 결정 시 손익계산서보다 강대국의 눈치를 먼저 보게 되면 비효율이 발생하는 건 불문가지다. 언젠가 피해는 보통 시민에게 돌아간다. 지난 26일 트럼프가 한국산 자동차 등에 대한 관세를 기존 15%에서 25%로 인상하겠다고 밝힌 것은 기업들이 겪어야 할 어려움을 단적으로 보여준다. 수틀리면 뒤집어버리는 그의 말 한마디에 글로벌 기업들이 생산 라인과 공급망을 뜯어고쳐야 하는 상황으로 몰리고 있다. 정말로 “국제법은 필요없다”는 트럼프의 말은 괜히 나온 게 아니다.

위계적 국제질서 속에서 미국에 지렛대를 갖지 못한 나라들은 자칫 19세기 난징조약 못지않은 불평등 조약을 맺어야 할 판이다. 한국도 미국식 일방주의에 대응하면서 자강을 통한 생존 추구에 집중해야 하는 상황이다. 트럼프 통상 정책의 본질을 직시하고 다자무역 체제를 옹호하는 국가들과 협력에 나서야 한다. 글로벌 사우스까지 할 수 있는 다자협력을 최대한 늘리는 게 좋을 것이다. 전문가들은 무엇보다 AI가 만들어낼 미래 시장을 둘러싼 경쟁에 뒤처지지 않아야 한다고 조언하고 있다. 앞으로 기술주권이 국가의 생존과 위상을 결정하게 될 것으로 보기 때문이다. 미·중 한쪽으로부터 전략적 선택을 강요받는 상황으로 내몰리지 않으려면 대체 불가 파트너가 되는 수밖에 없다.

오관철 사회경제연구원장

오관철 사회경제연구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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