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 대목을 앞두고 감 말리기에 한창인 곶감 농가에 다녀왔다. 이후 기사를 쓰려 몇 차례 곶감 관련 자료를 검색했더니 SNS에 온갖 곶감 광고가 줄을 잇는다. 평소라면 무심히 넘겼을 광고에 자꾸만 눈이 갔던 것은, 광고 속 곶감이 내가 알고 있던, 또 현장에서 보았던 그것과는 사뭇 달라서다.
우는 아이도 뚝 그치게 했다는, 호랑이 담배 피우던 시절의 설화가 남아 있을 만큼 곶감의 역사는 길고도 깊다. 본디 우리 토종 감은 ‘떫은’ 감이라 옛사람들은 생과로 먹을 수 없던 감을 하나하나 껍질 벗겨 볕을 쪼이고 바람 쐬어 말려 곶감으로 만들어 먹었다. 오늘날 우리가 생과로 즐기는 단감은 근대에 유입된 품종이다. 가을의 끝자락부터 겨우내 두어 달을 들여 완성하는 곶감은 단순히 입을 달래는 주전부리가 아니라, 먹거리가 넉넉지 않던 시절에 시간과 정성과 지혜로 맺었던 귀한 저장식품이었다.
요사이 곶감 농사 풍경이 많이 달라지긴 했다. 곶감은 감이 잘 익을수록 품질이 좋아지지만, 잘 익은 감은 쉽게 물러져 곧바로 껍질을 깎아야 한다. 그런데 저온저장고와 감 깎는 기계가 도입되면서 예전보다 작업에 여유가 생겼다. 출고 일정과 작업 편의를 고려해 감이 덜 익은 상태에서 수확하는 농가가 더러 생기기도 했지만, 여기까지는 농업기술 발달이 노동을 덜어준 면을 더 긍정적으로 바라볼 수 있다.
정말 큰 변화는 건조 방식에 있다. 처마 끝에 매달아 말리던 것과 같이 곶감은 오랜 세월 자연건조 방식으로 만들어왔다. 그런데 근래 기후 변동의 폭이 커지면서 기계건조를 병행하거나 우선하는 비중이 늘고 있다. 기계건조 자체엔 아무런 문제가 없다. 위생적인 환경에서 균일한 품질을 내고 가격경쟁력도 앞선다. 누군가에게는 자연건조 특유의 깊은 맛보다 기계건조의 깔끔함이 입에 더 맞을 수도 있다. 그럼에도 애써 떫은 감을 키우고, 위험부담을 안고서도 자연건조 방식의 곶감 전통을 이어가고 있는 농가들이 상당하다. 그 이유는 무얼까?
지난해에 방영된 넷플릭스 오리지널 드라마 <폭싹 속았수다>에 곶감에 담긴 의미와 정서가 잘 드러나는 장면이 나온다. 주인공 금명이가 집에 남자친구 충섭을 소개하는 날, 충섭의 엄마가 그날 보내온 선물이 곶감이다. 꾸러미 안에는 다음과 같은 손편지가 들어 있었다.
‘가을에 친정집에 가 제일 좋은 감을 따다가 드릴 생각하며 한 계절 내내 공을 들였습니다. 예쁜 금명이를 보듯 매일 보고 또 보며 만들었습니다. 저는 금명이가 그렇게도 예쁩니다.’
금명이는 자신을 마뜩잖아하던 예비 시어머니의 반대로 한 차례 파혼을 겪은 뒤에야 이 인연을 만났다. 그간 애를 끓였을 금명 엄마 애순은 그 편지를 품에 폭 안고 한참을 미소지었다. 곶감을 주고받는 마음은 이토록 귀한 것이었다.
대를 이어 곶감 농사를 짓는 농부 역시 같은 이야기를 했다. 예부터 곶감은 좋은 마음으로 선물하고, 명절이면 온 가족이 사이좋게 나누어 먹던 음식이지 않으냐고. 그 문화가 오늘날로 이어져 이제는 사시사철 먹을 수 있게 되었음에도 그 수요는 단연코 명절에 집중돼 있다. 그러니 정성 들여 만드는 것이 당연하다고 말이다. 기후 변화로 농사가 갈수록 어려워지지만 아직은 그 시련을 이겨낼 노하우가 있고, 그것이 곧 농부로서의 자부심이기도 하다고 했다.
최근 들어 단감을 말려 당도를 높이고, 홍시와 같은 부드러운 식감을 강조한 신제품도 곶감이라는 이름으로 유통되고 있다. 곶감의 모습과 쓰임이 달라지는 흐름 속에서, 전통 곶감을 맛볼 수 있는 시간은 그리 오래 남지 않았을지도 모른다는 농부의 말이 계속해서 마음에 남았다.
이번 설에는 좋은 곶감을 두루 나눠 먹어야지 마음먹고 여러 지역에서 자연 건조한 곶감을 조금씩 구매했다. 국가중요농업유산에도 지정된 상주 곶감 외에 산청 곶감, 함양 곶감, 영동 곶감이 지리적 표시품으로 등록돼 있다. 각 지역의 풍토가 빚어낸 미세한 맛의 차이를 살피고, 내 취향을 발견하는 즐거움을 지인들과 나눌 생각이다. 혹여 이 정도의 수고로움을 두고 “굳이?”라고 묻는 이가 있다면, 단 하나의 곶감도 나눠주지 않을 작정이다.
서진영 <로컬 씨, 어디에 사세요?> 저자
<서진영 <로컬 씨, 어디에 사세요?> 저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