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란수괴 윤석열이 사형을 받느냐 징역형을 선고받느냐의 문제는 중요하지 않다. 지금 우리가 던져야 할 질문은 훨씬 더 본질적이다. 왜 한 나라의 대통령이 21세기에 위로부터의 내란이라는 극단적 선택에까지 이르렀는가. 개인의 일탈인지, 아니면 정치 엘리트 구조가 빚어낸 필연인지를 묻지 않는다면 어떤 처벌도 공허해진다.
아이러니는 분명하다. 피고인 윤석열은 46년 전 서울대 법대 재학 시절 모의재판에서 쿠데타 세력에게 사형을 구형한 당사자다. 그리고 30여년 전 전두환 전 대통령 역시 사형을 구형받았다. 역사는 반복되었지만, 반복의 방식은 더욱 초라해졌다. 권력의 종착지가 사법적 심판이라는 점은 같지만 그 과정에서 드러난 상상력의 빈곤은 과거보다 더 심각하다. 과거의 쿠데타가 권력만을 탐한 외부로부터의 군사반란이라면 윤석열의 내란은 친위쿠데타에 해당해 국민을 배신했다는 점까지 가중 처벌되는 것이 마땅하다.
불법계엄은 한국의 주류 엘리트들이 보여준 부정적 상상력의 극치였다. 동시에 상상력의 완전한 부재를 상징하기도 했다. 법조인, 군인, 경찰 등 국가기관 수장들이 머리를 맞대어 만들어낸 결과물이 고작 보여주기식 6시간 불법계엄이었다는 사실은 참담하다. 국가권력의 가장 폭력적인 수단을 동원해놓고 친위쿠데타를 인정하기는커녕 반성조차 하지 않았다. 이것이 오랫동안 한국 사회를 이끌어왔다고 자부하던 엘리트들의 실력이자 민낯이었다. 그들은 국가를 운영할 능력은 없으면서 국가를 장악하려는 욕망만 넘쳤다.
문제는 여기서 끝나지 않는다. 그 이후에 벌어진 정치 풍경은 더욱 피곤하다. 국민의힘은 윤 어게인을 외치는 지지층의 목소리가 당의 주류를 점령했고, 당원게시판을 둘러싼 소모적 논쟁 끝에 전직 대표에 대한 제명 처분이 내려졌다. 여기에 현재 당대표는 단식을 수단으로 삼아 극단의 정치를 연출하며, 결국 정치는 그들이 이용하는 도구가 되었을 뿐 국민의 삶은 인질로 잡혀 있는 상태이다. 이 모든 과정에서 국민을 설득하는 과정은 빠져 있고, 국민들은 아무짝에도 쓸모가 없는 현재의 정치를 혐오하며 우리의 삶 속에서 정치를 더 멀리 밖으로 밀어내는 악순환 구조에 빠져 있다. 정치가 국민의 삶을 위한 도구가 아니라 정치인들의 생존 수단으로 전락한 지 이미 오래다.
그러는 사이 세상은 완전히 다른 방향으로 움직이고 있다. 코스피는 이제 5100선을 넘어섰고, 지역 행정통합이라는 구조 개편 논의도 본격화되고 있다. 지방주도성장이 대한민국을 살릴 유일한 대안으로 이미 제안되고 있다. 대통령은 국무회의를 생중계하고 정례 브리핑을 통해 정치를 닫힌 권력의 공간이 아니라 공개된 토론의 장으로 전환시키고 있다. 불확실의 시대에 대한민국 대통령은 세계 속에서 달라진 대한민국의 위상을 대내외적으로 뽐내고 있다. 그런 점에서 성장은 구호가 아니라 실력으로, 발전은 선동이 아니라 결과로써 증명되고 있다. 국정장악력을 기반으로 투명성과 장벽 없는 소통이 새로운 리더십의 기준이 되고 있는 것이다. 명실상부 국민의 뜻과 동행하는 국민주권정부가 성과를 내는 시기가 도래한 것이다.
이 극명한 대비는 우리에게 중요한 시사점을 던진다. 2000년 이후 사반세기가 흐른 지금, 관습적 엘리트주의가 얼마나 쉽게 붕괴될 수 있는지, 그리고 비주류라 여겨졌던 영역에서 얼마나 많은 성과가 만들어질 수 있는지를 동시에 보여준다. 집단지성을 활용한 팔로형 리더십이 세상을 어떻게 변화시키는지 그 청사진은 점차 현실이 되고 있다. 리더십은 계엄령이나 선거 부정의 망상에서 나오지 않는다. 평범한 보통 시민들이 일상에서 체감하고 마음으로 공감할 수 있는 구체적이고 현실적인 성과에서 비롯된다. 진정한 리더십은 강제나 일방적 지시가 아니라 신뢰나 쌍방향 소통에서 나온다.
역사는 멈추지 않는다. 과거와 미래 사이에서 우리는 결단해야 한다. 한 시대의 종언을 고하지 않는 사회는 앞으로 나아갈 수 없다. 그 결단이 재판의 이름일 수도 있고, 선거라는 이벤트일 수도 있으며, 헌법에 따른 정당해산의 절차일 수도 있다. 그 방식은 중요하지 않다. 중요한 것은 지나간 과오를 철저히 단죄하고 반성 없는 권력이 다시는 재생산되지 않도록 하는 일이다.
상상력이 없는 정치는 결국 스스로를 파괴한다. 지금 한국 사회가 마주한 것은 특정 인물의 몰락이 아니라, 주류라 불리던 시대의 종말이다. 주류가 종말한 이후를 새로운 세력이 어떤 내용으로 채워낼 것인지에 우리의 운명이 달려 있다.
신인규 정당 바로 세우기 대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