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영 정상회담 ‘관계 재설정’
키어 스타머 영국 총리(왼쪽)와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이 29일 베이징 인민대회당에서 열린 정상회담에 앞서 악수를 하고 있다. AP연합뉴스
영국 총리, 8년 만에 중국 방문…미·유럽 갈등 속 ‘전략적 행보’
노동당 스타머 취임 후 해빙기로 전환…양국 협력 노선 이어와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과 키어 스타머 영국 총리가 중국 베이징에서 정상회담을 열고 스파이 사건 등으로 냉랭했던 양국관계 재정립의 발판을 마련했다. 스타머 총리는 “영국의 대만 정책은 변하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으며 시 주석은 “영국과 지속적 동반자 관계를 맺을 준비가 됐다”고 밝혔다.
BBC 등에 따르면 시 주석과 스타머 총리는 29일 베이징 인민대회당에서 약 1시간35분 동안 회담했다. 스타머 총리는 모두발언에서 “중국은 세계 무대에서 매우 중요한 역할을 하는 국가”라며 “우리는 협력할 기회를 모색할 수 있을 뿐만 아니라 의견 차이가 있는 분야에서도 의미 있는 대화를 나눌 수 있도록 더욱 정교한 관계를 구축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말했다.
스타머 총리는 대만과 홍콩 문제도 언급했다. 그는 “영국의 대만 정책은 오랜 기간 유지돼왔으며 앞으로도 변하지 않을 것”이라면서 “중국과 고위급 교류를 유지하고 무역·투자·금융·환경 등 다양한 분야에서 협력을 강화해 양국 국민에게 실질적 혜택을 가져다주길 바란다”고 밝혔다. 영국은 대만을 중국 영토의 일부로 보는 ‘하나의 중국’ 원칙을 인정하고 있다. 홍콩 문제와 관련해서는 “홍콩의 번영과 안정은 양국의 공동 이익에 부합한다”며 “홍콩이 영국과 중국 간의 독특하고 중요한 다리가 되는 것을 기쁘게 생각한다”고 말했다.
시 주석은 “중·영관계는 그동안 양국의 이익에 부합하지 않는 우여곡절을 겪어왔다”며 “중국은 영국과 장기적이고 지속적인 전략적 동반자 관계를 발전시킬 준비가 돼 있다”고 화답했다. 또 “양국 협력을 큰 잠재력을 가진 데에서 나아가 큰 성과를 이룰 수 있도록 전환해 중국 관계의 새 국면을 열기를 바란다”고 말했다.
영국 총리가 중국을 방문한 것은 2018년 보수당 소속 테리사 메이 총리 이후 8년 만이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덴마크령 그린란드 병합을 주장해 유럽과 미국 간 긴장이 고조된 상황에서 스타머 총리의 방중이 이뤄졌다.
중·영관계는 보수당 정권이 들어서며 2018년부터 냉각기에 접어들었다. 특히 2019년 홍콩 반송환법 시위와 영국이 제기한 중국의 스파이 활동 문제 등을 계기로 냉랭해졌다. 영국은 호주·미국과의 핵잠수함 협정인 오커스 동맹을 구축하는 등 대중 견제에 앞장섰다. 하지만 노동당 소속인 스타머 총리는 2024년 취임 후 역대 보수당 총리의 기조에서 벗어나 중국과의 경제 협력을 중시하는 실용 노선을 주장해왔다. 스타머 총리는 이번 방중을 공식 발표할 때도 “수년간 우리의 대중 관계는 황금기에서 빙하기를 오가며 일관성이 부족했다. 좋든 싫든 중국은 중요한 문제”라고 말한 바 있다.
스타머 총리의 이번 방중에는 재무부·산업부 장관과 아스트라제네카, HSBC, 재규어랜드로버 경영진 등 기업인 60여명이 동행했다. 반면 외교장관은 동행하지 않아 껄끄러운 외교 문제는 쟁점화되지 않을 것으로 예상된다. 영국 정부는 이번 방중을 앞두고 보안 문제로 승인을 보류해왔던 런던 도심 한복판의 초대형 중국 대사관 건립 계획도 승인했다.
스타머 총리는 올해 들어 중국을 방문한 네 번째 서방 지도자이다. 미할 마틴 아일랜드 총리, 마크 카니 캐나다 총리, 페테르 오르포 핀란드 총리가 앞서 중국을 방문했다. 다음달 프리드리히 메르츠 독일 총리도 방중한다. 중국은 미·유럽 간 긴장 속에 서방 지도자가 연이어 방중하는 것을 두고 자국이 외교적으로 신뢰할 수 있는 파트너라는 점이 입증됐다고 주장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