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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 요약

한 번도 아내랑 같이 잔 적이 없다.

나는 아내가 있을 때는 아랫방에 내려가지 조차 않는다.

그저 아내의 방에는 내객이 밤늦게까지 있을 때가 많다는 것만 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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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공 = 경향신문&NAVER MEDIA AP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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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경제 일타쌍피 스토리노믹스

박제가 되어버린 천재, 이 실업은 누구의 책임인가

입력 2026.01.31 07:00

수정 2026.01.31 09: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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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박병률 기자
  • 기사를 재생 중이에요

※소설, 영화, 연극, 뮤지컬, 웹툰 등 재미있는 이야기가 넘쳐나는 시대입니다. 그런데 이야기만 소비하기에는 뭔가 부족함을 느낄 때가 없던가요? 이야기 속에 숨어있는 다양한 경제적, 사회적 읽을거리가 더해진다면 훨씬 더 재밌을 지 모릅니다. ‘일타쌍피 스토리노믹스’는 이야기에 플러스 알파를 더하는 콘텐츠입니다.

이상의 <날개>와 맬서스, 마르크스의 경제학 논쟁

‘박제가 되어버린 천재’를 아시오?

한국 문학사에서 최고의 첫문장을 꼽으라면 이 문장을 빼놓고 말하긴 힘들다. 이상의 <날개>는 이 문장으로 시작한다. 이상은 한국문학사상 가장 낯설고 위대한 천재라는 평가를 받는다. 그는 일제강점기 조선문단에 혜성같이 등장해 강렬한 족적을 남기고 고작 스물일곱의 나이에 세상을 떠났다.

출처=경향신문 자료사진

이상의 날개 본문

출처=경향신문 자료사진

그는 작품에 기하학 기호와 숫자를 즐겨 썼고, 건축과 의학 전문용어도 자주 썼다. 퇴폐적인 소재를 스스럼없이 끄집어냈으며 띄어쓰기는 종종 무시했다. 형식을 깨는 난해한 글은 그의 학력과 무관하다고 보기 어렵다. 그는 경성고등공업학교 건축과, 즉 지금의 서울대 공대의 건축과를 나왔다. 그에게 언어는 단순한 의미전달의 수단이 아닌 건축적 구조물이나 기하학적 도형과 같았다.

공학의 언어로 만든 그릇에 그는 식민지 지식인의 내면적 고뇌와 자의식을 담았다. 식민지 시대 무기력하고 병들어 아무것도 할 수 없었던 거세된 지식인의 모습을 그린 소설이 바로 <날개>다. ‘박제가 되어버린 천재’, 바로 그 사람 이야기다.

33번지, 18가구 중 딱 가운뎃 집

33번지라 불리는 곳. 이곳은 유곽이다. 18가구 중 딱 가운데 집에 나와 아내가 산다. 나는 윗방에, 아내는 아랫방에 머문다. 한 번도 아내랑 같이 잔 적이 없다. 나는 아내가 있을 때는 아랫방에 내려가지 조차 않는다.

나는 아내가 뭐하는지 모른다. 그저 아내의 방에는 내객이 밤늦게까지 있을 때가 많다는 것만 안다. 내객이 떠나면 아내는 내 방으로 와 50전짜리 은화를 준다. 그게 내 수입 전부다. 나는 돈을 벌고 싶은 생각도 없고, 심지어 쓰고 싶은 생각도 없다. 그저 내방에서 뒹굴며 축 쳐져 있을 수만 있으면 된다.

사실상 사육당하는 삶을 살던 나에게 큰 변화가 찾아오는 것은 그놈의 ‘호기심’ 때문이었다. 아내가 이유없이 내게 돈을 주는 것, 즉 타인에게 돈을 쓴다는 것의 쾌감이 어떤건지가 갑자기 궁금해진 것이다.

경향신문 자료사진

소설가 이상

경향신문 자료사진

아내가 외출한 밤, 몰래 밖에 나갔다. 하지만 오랫만에 나가본 거리는 금새 나를 피곤하게 만들었다. 은화를 5원짜리 지폐로 바꿨지만 돈은 한푼도 쓰지 못했다. 그렇게 터덜터덜 돌아오는 길 아내 방에서 낯선남자를 보게 된다.

아내는 이후에도 나에게 계속 돈을 준다. 그런 아내를 생각해 나는 늦게 집으로 돌아오는데, 그러다 어느날 비를 맞고 심한 감기에 걸린다. 아내는 내게 아스피린을 주는데, 이상하게도 자도자도 잠만 온다. 그런데 어느날 나는 아내의 화장대 밑에서 수면제 아달린을 발견하고는 까무러칠 뻔했다. 아내가 내게 준 것은 감기를 낫게하는 약이 아니라 잠만 재우는 수면제였을까. 충격을 받은 나의 머리 속에 번개처럼 이런 단어들이 떠오른다.

‘아스피린 아달린, 아스피린 아달린, 마르크스 맬서스, 마도로스, 아스피린 아달린’

나는 혼돈스런 와중에 왜 하필이면 마르크스와 맬서스를 떠올렸을까. 이유가 있다. 아스피린은 감기를 낫게하는 감기약이다. 아달린은 많이 먹으면 죽을 수도 있는 수면제다. 아스피린과 아달린은 대조적인 의약품이다. 경제학에서 마르크스와 맬서스도 대척점에 서 있는 인물이었다. 이들은 ‘빈부격차의 책임자가 누구냐’를 두고 심각하게 대립했다.

인구론과 자본론, 이 실업은 누구책임인가

맬서스는 <인구론>을 내세워 자본주의의 빈부격차는 ‘자연현상’의 결과라고 주장했다. 맬서스는 ‘인간의 본능상 인구가 증가하고, 인구가 증가하면 식량과 일자리가 부족해지고, 생존경쟁을 통해 균형이 맞춰지면, 다시 인구가 증가해서 빈곤이 악순환된다고 생각했다. 즉 자본주의에서 발생하는 빈부격차는 생산을 넘는 급격한 인구증가에 의한 자연현상이라는 것이다. 맬서스에 따른다면 빈민에 대한 구제는 해결책이 될 수 없다. 가난한 사람들을 도와봤자 인구가 증가하면 생활이 나아질 수가 없기 때문이다. 이같은 주장에 자본가들은 열광했다. 빈곤의 책임은 빈곤계층 자신에 있다는 의미가 될 수 있기 때문이었다. 맬서스의 아이디어는 영국정부에 직접 영향을 줬고, 인구조사와 산아제한 정책의 기초가 됐다.

하지만 마르크스는 <자본론>을 통해 맬서스의 주장을 반박했다. 그는 “기본적인 전제가 틀렸다”며 “인간은 동물이 아니다”고 주장했다. 마르크스는 인간의 생산 활동을 동물적 본능과 직접 대치할 수 없다고 봤다. 그는 ‘상대적 과잉인구’라는 개념을 제시했다. 상대적 과잉인구란 직장을 갖지 못하는 실업자를 말한다. 마르크스는 실업자가 생기는 원인을 자본의 축적 때문으로 봤다. 자본가들이 기계를 도입해 발생한 잉여가치를 독점하고, 자본가들이 가져간 만큼 노동자의 몫은 줄어든다는 것이다. 얼마남지 않은 몫을 두고 노동자들이 경쟁하고, 여기서 탈락한 사람들이 상대적 과잉인구로 남는다고 했다. 그는 상대적 과잉인구를 ‘산업예비군’이라고 불렀는데, 일만 주어지면 기꺼이 일할 수 있는 실업자라는 의미다.

요약하자면 맬서스는 인구가 많아서 실업자가 생긴다는 운명론적 세계관을 갖고 있고, 마르크스는 이윤을 자본가가 독차지 하면서 실업자가 발생한다는 사회구조적 세계관을 갖고 있었다. 맬서스는 실업의 해결책으로 금욕과 복지축소를, 마르크스는 생산수단의 공유화와 체제변혁을 제시했다.

일제 강점기엔 무기력한 지식인이 많았다

소설 ‘날개’의 주인공 나는 아내에 얹혀사는 무기력한 지식인이다. 아내가 준 용돈은 매춘을 해서 번 돈이다. 맬서스적 시각에서 본다면 나는 생산에 기여하는 바가 전혀 없는 잉여인간으로 도태되어야할 대상이다. 하지만 식민지 시대 지식인들 중에는 나와같은 사람들이 많았다. 많이 배워도 일본인 채용이 우선이라 좋은 일자리를 갖기 힘들었고, 일제에 부역하기 싫어서 좋은 일자리를 거부하기도 했다. 일제 강점기의 특수성을 생각한다면 나의 실업은 사회적 부와 권력을 특정 계층이 독점하면서 발생한 실업으로 볼 수 있다.

출처=애플북스, YES24

한국문학을 권하다 10 : 이상 소설전집

출처=애플북스, YES24

소설의 말미, 뚜우하는 정오 사이렌이 울리고, 불연듯 겨드랑이가 가려워질 때 나는 걷던 걸음을 멈추고 불연듯 이렇게 외치고 싶어진다.

‘날개야 다시 돋아라. 날자날자 한번만 더 날자꾸나’.

나는 무기력한 맬서스적 생존에서 벗어나 천재로서의 자신을 각성하고 주체성을 회복했을까, 아니면 다시 사육당하는 방으로 돌아갔을까. 소설은 답을 주지 않은 채 끝난다.

이상은 일본에서 ‘불령선인(불만많은 조선인)’혐의로 체포돼 구금됐다 1937년 4월 병사한다. 1936년 9월 소설 <날개>가 발표된지 고작 7개월 만이었다. 일제 강점기, 우리는 우리 문학사상 최고의 천재작가를 이렇게 잃었고, 소설의 끝도 영원한 미궁으로 남게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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