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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 요약

지난 1월 스위스 다보스에서 열린 세계경제포럼에서 가장 주목받은 발언은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미국 우선주의를 정면으로 겨냥한 마크 카니 캐나다 총리의 메시지였다.

이 대통령이 한·일 정상회담 전날인 지난 1월 12일 일본 NHK와의 인터뷰에서 "TPP 가입과 관련해 일본 수산물의 수입 문제가 중요한 의제가 될 가능성이 높다"며 "현재의 상태로는 한국 국민의 정서와 신뢰의 문제를 해결해야 하기 때문에 단기적으로는 어려울 것이지만, 일본과의 사이에서, TPP 가입에 대한 협력을 얻기 위해서는, 그것도 하나의 중요한 의제로서, 적극적으로 토론해 나가는 테마라고 생각한다"고 말한 건 이 때문이다.

무엇보다 한국이 CPTPP에 가입할 경우 국내 농업 피해는 불가피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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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공 = 경향신문&NAVER MEDIA AP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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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쿠시마 수산물부터 사과·배까지…CPTPP는 통상국가 한국의 대안이 될까

입력 2026.01.31 08:00

  • 이재덕 기자
  • 기사를 재생 중이에요

이 대통령 가입 추진 의사…‘규칙 기반 국제질서’의 복원 가능성

마크 카니 캐나다 총리가 2026년 1월 20일(현지시간) 스위스 다보스에서 열린 세계경제포럼(WEF) 연례회의에서 연설하고 있다. AFP연합뉴스

마크 카니 캐나다 총리가 2026년 1월 20일(현지시간) 스위스 다보스에서 열린 세계경제포럼(WEF) 연례회의에서 연설하고 있다. AFP연합뉴스

[주간경향] “중견국들은 반드시 함께 행동해야 한다. 우리가 협상 테이블에 앉아 있지 않다면, 결국 메뉴판에 오를 뿐이기 때문이다.”

지난 1월 스위스 다보스에서 열린 세계경제포럼(WEF)에서 가장 주목받은 발언은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미국 우선주의를 정면으로 겨냥한 마크 카니 캐나다 총리의 메시지였다. 세계무역기구(WTO)와 국제연합(UN) 등 중견국들이 의지해온 다자기구가 흔들리면서, ‘규칙 기반 국제질서’ 자체가 힘을 잃고 있다는 진단이 깔려 있었다. 카니 총리는 “공통된 기반을 충분히 공유하는 파트너들과 사안별로 효과적인 연합을 구축”하는 방식으로 미국 우선주의에 대응하려는 캐나다의 구상을 소개하기도 했다.

그가 새로운 통상질서의 한 축으로 거론한 연합은 일본, 캐나다 등 12개국이 참여한 포괄적·점진적 환태평양경제동반자협정(CPTPP)이었다. 한국에서도 문재인 정부 시절 가입을 추진키로 했지만, 농업계 반발과 한·일관계 악화로 추진 동력을 잃었던 바로 그 협정이다. 유럽연합(EU)은 지난해 CPTPP 회원국들과의 공식 대화 채널을 출범시키며 15억 인구 규모의 새로운 무역 블록을 만들겠다는 의지를 보이고 있는데, 카니 총리는 이 구상을 지지한다고도 했다.

수출로 먹고사는 한국도 이 흐름에서 비켜서 있기 어렵다. 통상 전문가들 사이에선 한국 역시 CPTPP 안으로 들어가야 한다는 주장이 꾸준히 제기돼왔다. 이재명 대통령이 최근 CPTPP 가입 추진 의사를 밝힌 것도 이런 움직임과 맞닿아 있다. 문제는 그다음이다. CPTPP는 규칙에 기반을 둔 통상질서를 복원할 수 있을까. 통상국가 한국의 현실적인 대안이 될 수 있을까.

가입비는 ‘후쿠시마 수산물 수입’

CPTPP는 아시아·태평양 지역 국가들이 모여 서로 간의 관세를 낮추고 역내 공급망을 강화하기 위해 2018년 출범한 ‘메가 FTA’이다. 처음에는 미국 주도로 ‘환태평양경제동반자협정(TPP)’이라는 이름으로 추진되다가, 2017년 트럼프 1기 때 미국이 탈퇴하면서 그다음으로 경제력이 큰 일본이 주도하는 모양새가 됐다. 일본, 호주, 캐나다, 멕시코, 싱가포르, 말레이시아, 뉴질랜드, 칠레, 페루, 브루나이, 베트남 등 11개국에 ‘브렉시트’로 EU에서 나온 영국이 경제적 고립을 해소하기 위해 2023년 CPTPP에 가입하면서 총 12개 회원국 체제가 됐다. 전 세계 국내총생산(GDP)의 약 15%에 해당하는 규모다. 중국과 대만도 2021년 CPTPP 가입 의사를 밝혔지만, 회원국 간의 정치적 이해관계가 얽힌 탓에 이들 나라의 가입 승인은 아직 이뤄지지 않았다.

이재명 대통령과 다카이치 사나에 일본 총리가 지난 1월 13일(현지시간) 일본 나라현에서 열린 정상회담장에서 공동발표를 마치고 악수를 하고 있다. 연합뉴스

이재명 대통령과 다카이치 사나에 일본 총리가 지난 1월 13일(현지시간) 일본 나라현에서 열린 정상회담장에서 공동발표를 마치고 악수를 하고 있다. 연합뉴스

규칙 기반의 국제질서 복원은 통상국가인 한국엔 절박한 과제이기도 하다. 특히 미국이 자국 우선주의를 앞세워 각국 상품에 상호관세를 부과하고, 지난 1월 26일(현지시간)에는 트럼프 대통령이 “한국 입법부가 한국과 미국의 합의를 지키지 않고 있다”며 “(한국에 대해) 상호관세를 15%에서 25%로 인상한다”고 압박한 일은 현재 통상질서의 민낯을 그대로 드러낸다. 예전 같으면 한국은 통상·법률 전문가 7명으로 구성된 WTO 상소기구를 통해 이 같은 분쟁을 해결할 수 있었다. 하지만 2019년 트럼프 1기 행정부가 당시 공석이 된 상소기구 위원에 대한 선임을 거부하면서 상소기구는 현재까지도 마비 상태다. 바이든 정부조차 이를 정상화하지 않았다. WTO 상소기구의 무력화는 미국 중심의 자국 우선주의가 ‘뉴노멀’이 된 냉혹한 현실을 단적으로 보여준다.

CPTPP 회원국들은 경제 규모가 큰 한국의 가입을 원하는 분위기다. 다만 가입을 위해서는 ‘후쿠시마산 수산물 수입’이라는 비용을 치러야 할 것으로 보인다. 영국은 CPTPP 가입 신청 이후인 2022년 5월 보리스 존슨 당시 영국 총리가 후쿠시마산 팝콘을 먹는 행보를 보였고, 대만 역시 2022년 초 후쿠시마산 수산물 수입 금지 조치를 풀었다. 이 대통령이 한·일 정상회담 전날인 지난 1월 12일 일본 NHK와의 인터뷰에서 “TPP 가입과 관련해 일본 수산물의 수입 문제가 중요한 의제가 될 가능성이 높다”며 “현재의 상태로는 한국 국민의 정서와 신뢰의 문제를 해결해야 하기 때문에 단기적으로는 어려울 것이지만, 일본과의 사이에서, TPP 가입에 대한 협력을 얻기 위해서는, 그것도 하나의 중요한 의제로서, 적극적으로 토론해 나가는 테마라고 생각한다”고 말한 건 이 때문이다.

‘검역 주권’ 제한…사과·배 수입도

무엇보다 한국이 CPTPP에 가입할 경우 국내 농업 피해는 불가피하다. 농산물에 한정시켜 보면, CPTPP의 평균 농산물 관세철폐율은 96%로, 한국이 맺은 기존 FTA의 평균 농산물 관세철폐율 79%를 크게 웃돈다. 다만 CPTPP 회원국이자 농산물 수입국인 일본의 경우 쌀, 쇠고기·돼지고기, 유제품 등 민감 품목을 보호하기 위해 농산물 관세철폐율을 다른 회원국보다 현저히 낮은 74% 수준으로 정했다. 한국도 향후 가입을 위한 협상 과정에서 일본의 방식을 준용할 가능성이 있다.

농민단체 회원들이 2022년 4월 8일 정부서울청사 앞에서 포괄적 점진적·환태평양경제동반자협정(CPTPP) 추진 규탄 기자회견을 열고 있다. 경향신문 자료사진

농민단체 회원들이 2022년 4월 8일 정부서울청사 앞에서 포괄적 점진적·환태평양경제동반자협정(CPTPP) 추진 규탄 기자회견을 열고 있다. 경향신문 자료사진

농업 전문가들은 ‘수입 농산물에 대한 관세 철폐’보다 ‘위생·검역 절차(SPS) 완화에 따른 신규 품목의 수입 확대’를 더 큰 문제로 지적한다. SPS는 병충해·가축 전염병 등의 피해를 막기 위해 수입국이 특정 국가의 농축산물 수입을 제한하는 조치로, WTO와 FTA에서는 SPS를 수입국의 ‘검역주권’으로 보장한다. 하지만 CPTPP는 수입국의 검역주권을 제한하는 조치가 다수 포함돼 있다.

국회 입법조사처가 2022년 5월 작성한 ‘CPTPP 가입 추진에 따른 위생 및 식물위생조치(SPS)상의 쟁점과 과제’ 보고서는 “한국은 병해충 등의 검역 이슈를 근거로 CPTPP 회원국들을 대상으로 사과, 배, 복숭아, 단감, 자두 등 신선농산물의 수입을 제한하는 비관세 조치를 시행 중”이라며 “특히 사과(뉴질랜드·일본 등), 배(일본 등) 같은 일부 품목은 상대국이 수입 허용을 요청한 시점으로부터 25년 이상 경과한 상태로, 만일 CPTPP 가입 후 이들 품목의 수입을 허용하게 된다면 이 두 작목의 생산 감소로 인한 직간접적 농업 GDP 피해액만 하더라도 각각 연평균 5980억원(사과), 2090억원(배)에 이를 것으로 추산된다는 연구가 있다”고 밝혔다. 이들 품목이 수입될 경우 국내의 상당수 농가가 사과나 배 농사를 접을 가능성이 높다는 얘기다.

한국종합농업단체협의회도 지난 1월 15일 성명을 내고 “CPTPP 가입은 단순한 통상 문제가 아니라 대한민국 농업과 국민 먹거리 체계를 근본적으로 위협하는 사안”이라며 “즉시 CPTPP 가입 논의를 멈추고, 농업과 국민 먹거리 안전을 최우선으로 신중하게 접근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재명 정부는 CPTPP 가입 추진에 반발하는 농업계를 설득할 수 있을까. 입법조사처 보고서는 “정부가 대내 협상에 진정성을 갖고 임해야 한다”며 이렇게 지적한다. “굵직한 통상 협상이 추진될 때마다 피해가 예상되는 계층의 극심한 저항과 ‘협상 전략상 더 이상의 공개적 논의는 어렵고 이후로는 정부 입장을 신뢰해달라’는 정부의 통보가 거듭돼온 현상은 지양될 필요가 있다. 이해관계 조정에 필수적인 ‘신뢰’라는 사회적 자본은 하루아침에 축적되지 않는다.” 국제 협상 테이블에 앉기 전에, 국내 협상 테이블부터 마련해야 한다는 얘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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