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지털 옷장, 스타일링·가상 피팅 서비스
최근 인공지능의 시선은 거대한 흐름을 넘어 보다 개인적인 영역으로 이동하고 있다. 그 도착지는 하루에도 몇 번씩 반복되는 선택, ‘오늘 무엇을 입을지’ 결정하는 순간이다.
“오늘 뭐 입지?”
옷장에 수십 벌의 옷이 걸려 있어도 아침이면 어김없이 같은 질문이 떠오른다. 이 익숙한 고민은 국경을 가리지 않는다. 머지않아 이 선택의 상당 부분을 인공지능이 대신 맡게 될 가능성이 크다. 감각과 취향의 영역으로 여겨졌던 스타일링이 이제 데이터와 알고리즘의 영역으로 옮겨지고 있기 때문이다.
기록되는 취향, 학습되는 스타일
그동안 패션 업계에서 AI는 주로 미래를 읽는 도구로 활용돼 왔다. 소셜미디어 이미지와 런웨이 데이터를 분석해 다음 시즌의 트렌드를 예측하고, 소비자의 구매 패턴을 파악하는 역할이 중심이었다. 그러나 최근 인공지능의 시선은 거대한 흐름을 넘어 보다 개인적인 영역으로 이동하고 있다. 그 도착지는 하루에도 몇 번씩 반복되는 선택, ‘오늘 무엇을 입을지’ 결정하는 순간이다.
AI 스타일링 앱이 각자의 취향을 선명하게 드러내는 도구로 진화 중이다. 날씨에 맞는 코디를 제안하는 ‘에이클로젯’ 갈무리.
대표적인 사례가 국내 AI 디지털 옷장 서비스 ‘에이클로젯’이다. 해당 앱은 사용자가 자신의 옷을 사진으로 찍어 등록하면 AI가 아이템을 자동 분류하고 태그를 달아 옷장을 디지털화한다. 이렇게 축적된 데이터는 날씨와 일정에 맞춘 코디 추천으로 이어지고, 데일리 아웃핏 제안, 퍼스널 컬러·체형 분석, 착용 기록 관리까지 확장된다. 어떤 옷을 얼마나 자주 입는지까지 한눈에 파악할 수 있다.
AI 스타일링은 추천을 넘어 미리 입어보는 경험으로도 진화 중이다. 스타트업 메타뱅크가 선보인 AI 가상 피팅 기반 디지털 옷장 플랫폼 ‘보고핏’은 사진 기반 추천에서 나아가 사용자 체형과 포즈를 반영한 3D 가상 피팅을 제공한다. 화면 속 이미지가 아니라 실제 착용했을 때의 인상에 한발 더 가까운 예측이다.
이 흐름은 해외에서도 이어지고 있다. AI 옷장·스타일링 앱 ‘포켓 워드로브’는 사진만으로 옷을 자동 분류하고, 계절·색상·소재를 고려한 맞춤 코디를 제안한다. 추천된 스타일을 캘린더에 저장해 출근룩이나 약속용 코디를 미리 계획하는 기능도 포함됐다. ‘스타일북’ ‘웨어링’처럼 개인 옷장을 기반으로 코디를 추천하고 착용 빈도를 분석해주는 서비스들도 꾸준히 사용자가 늘고 있다.
글로벌 브랜드들 역시 이 흐름에 합류 중이다. 랄프 로렌은 자체 앱에 AI 스타일링 어시스턴트 ‘애스크 랄프(Ask Ralph)’을 도입해 고객의 구매 이력과 관심 아이템을 바탕으로, 옷을 ‘어떻게 활용할 수 있는지’를 안내한다. 여러 브랜드를 통합해 보여주는 서비스도 등장했다. AI 가상 피팅 앱 ‘패션랩스’는 구찌, 프라다, 루이비통, 디올 등 럭셔리 브랜드의 제품을 자신의 사진에 가상 착용해볼 수 있도록 하고 스타일 제안과 코디 추천 기능을 결합했다.
AI 스타일링이 빠르게 확산되는 배경에는 선택 피로가 있다. 옷장은 점점 불어나지만, ‘무엇을 입을지’를 결정하는 일은 오히려 더 어려워졌다. 여기에 새로 사기보다 이미 가진 옷을 효율적으로 활용하고 싶다는 합리적 소비 인식, 나에게 맞는 답을 원한다는 개인화 수요가 더해졌다.
AI 스타일링이 빠르게 확산되는 배경에는 선택 피로가 있다. 옷장은 점점 불어나지만, ‘무엇을 입을지’를 결정하는 일은 오히려 더 어려워졌다. 여기에 새로 사기보다 이미 가진 옷을 효율적으로 활용하고 싶다는 합리적 소비 인식, 나에게 맞는 답을 원한다는 개인화 수요가 더해졌다. AI 스타일링은 이 세 가지 욕구가 맞물리는 지점에 놓여 있다.
이 변화는 쇼핑의 기준을 재정의하기도 한다. 과거에는 패션 감각이 뛰어나거나 경험 많은 이의 선택을 참고해 쇼핑하는 방식이 일반적이었다면, 이제는 기록이 그 역할을 대신한다. 내가 어떤 옷을 자주 입는지, 어떤 추천을 저장했는지, 실제 착용으로 이어진 선택이 무엇인지는 데이터로 남고 이 축적된 기록은 다음 선택의 기준이 된다.
조이현 라이프스타일 트렌드 분석가는 “취향이나 스타일은 타고난 감각이 아니라 반복된 선택의 궤적이 만들어낸 결과로 바뀌고 있다”며 “AI는 개성을 지우는 존재가 아니라, 오히려 자신이 좋아하는 방향을 더 또렷하게 드러내는 도구가 될 것”이라고 내다봤다.